전출처 : kimji >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 다음
뭔가 예쁜 것을
뭔가 단순한 것을
뭔가 쓸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 위에 걸어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산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지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년이라도 기다려야해요
새가 빨리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해요

새가 새장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 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모습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의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날 뜨거운 풀숲벌레 소리를 그리세요
이젠 새가 마음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만약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예요
그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징조죠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예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계절 인사 대신, 나의 건재함 대신, 당신의 건재함에 대한 기원대신.

 



그림 : Pablo Picasso, Face - Dove
작시 : 자끄 프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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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 2004-04-1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새의 낡은 초상화

심연 깊이 떠다니는 텅빈 새장
헝클어진 깃털들이 뒹굴고
채 지우지 못한 창살엔
검은빛 핏자욱

그리고 구겨진 그림
한구석에 나의 이름
아직도 떨리는 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