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인간

 

어느 백제왕의 혁대는

비단벌레 껍질로 장식돼 있다고 한다

그 앞에 머리 조아린 문무백관과

궁녀들과 백성들이 있었을 것이나

사라져버렸고

백제왕도 사라져버렸다

 

모래인간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래가 된 인간은 많지만 모래로 된 인간은

없다. 모래는 잘 뭉쳐지지 않는다. 모래는 흩어진다.

모래는 흘러다닌다. 모래들이 물어뜯은 것 같은 움푹

한 미라는 있지만 모래로 빚은 태아는 없다. 사막에

사는 모래쥐도 그렇다. 모래가 되는 모래쥐는 많지만

모래로 빚은 모래쥐는 없다. 모래에서 끝나는 육체,

모래에서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모래로 흘러다니는

육체, 더 쪼갤 수 없이 잘게 쪼개져서 사막을 흘러다

니고 바람에 불려다니는,  더 이상 육체라고 부를 수 없

는 육체, 방황하는 모래들, 표류하는 모래들, 폭풍에

들려 빈 하늘에서 빈 하늘로 떼지어 날아가는 모래들,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누구의 뼈도, 그 누구의 살도

아닌,

 

남은 것은 혁대와

비단벌레 껍질에 흐르는 은하수,

4월의 황사는

고비사막에서 날아와

비단벌레 껍질과 속삭인다.

 

(최승호, 모래인간, 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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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 2004-04-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잠들어

잠시 맺힌 모래인간

한 생의 침묵, 그 무게만으로도

영원을 향해 튕겨 나갈

흩날리고 바람의 춤사위에 휘감길.....

 

내 눈물이 마르고 마르고 또 말라

바닥이 갈라지면

깨어나 속삭이려나

날려가 속삭이려나



2004-04-07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4-10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가 그려 보여주는 세계가 제 안에 비친 모습을
새겨보는 어설픈 무늬일 뿐이니까요.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래로 흩어진 그 전체 속에도 인간이 있고
인간 속에도 모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잠시 갖혀있어도...

모래-인간, 흩어지고 방황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는,
구심력은 사라지고 원심력만 남은 듯 하지만
아니 원심력조차 사라지고 무질서하게 휘날리는 듯하지만
실은 더큰 구심력, 지구의 구심력을 따라
더 큰 중심을 따라 모여 있는 모래.

모래인간이 있다면
예수가 흩어져 우주적 중심을 향해 휘날리는
그리스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4-04-08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4-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부끄러움, 어색함....걱정스러운 마음이 스칩니다. 앞으로 편한 누나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혹시 노란색 신호등이 켜진 것은 아닌지...^^::
김계호 교수님께 드렸던 반문에 놀라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면 제가 그 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었는지....^^::
어둠과 빛의 명상 성만찬 모임에 가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아!가고 싶어라....님의 체험기 기대해도 될까요....제가 못가는 대신 님께서 이렇게 가끔이라도 다녀오셔서 말씀해주시면 정말 기쁠 겁니다. 전 불교 참선(위빠싸나)이나 단전호습은 조금 체험해 봤지만 정작 기독교 전통의 관상을 직접 해본 적은 없어서.....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수업, 오늘 휴강했어요. 참석자들 중에 연회에 참석해야하는 분이 많았나봐요. 그 책이 정말 어렵더군요. 그렇게 어려운 책은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그나마 종교론은 그 책을 번역하신 철학과 교수님께 한 학기 동안 배워서 그런대로 쫓아갈 수 있었는데....이책은....오기 충천입니다...^^
다음 주는 투표라 또 쉴 것 같아요....참 어둠과 빛의 명상 다음 주 목요일에도 하나요? 그럼 가볼 수 있을텐데...
제가 얼마나 님께 감사하는 지 모르시죠^^
님께서도 아늑한 쉼으로 충만하게 채우시는 주일되세요. 다음 주에 뵐께요...

2004-04-09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무늬 2004-04-1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의미였군요. 다시 읽어보니 제가 님의 의문을 오해하고 엉뚱한 대답을 했더군요. "왜 없을까?"에 대한 의문을 "정말 없나?"라는 뜻으로 오해해서 그만! 동문서답을...^^::
오히려 저의 모습에 대해서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 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INTP이거든요. 격한 감정이나 예민한 감수성, 혹은 다혈질적인 모습이 숨어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성으로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수업 시간에 새롭게 보신 모습이 오해일지도 모르죠. 또 얼마 지나서 실은 처음에 판단하신 모습이 맞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저도 저를 잘 모르겠거든요.
벚꽃이라...제가 제일 좋아하는 벚꽃의 풍경은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벚꽃의 모습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시체처럼 교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쳐다본 창밖의 풍경...벚꽃잎이 쏟아지는데 그 장면이 뭔가 신비한 빛깔로 제 뇌리에 각인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영향인 모르겠네요...
네 화요일날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