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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론
FR.슐라이어마허 지음, 최신한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교의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의 재해석;
-신비의 일상화, 스스로 서는 자유인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이자 그 근원을 상대적인 존재를 넘어서는 무한자에 대한 근원적 감각이자 맛으로 정의한다. 종교에 대한 이런 새로운 보편적 규정은 교회의 전통적 관점에서 신앙에 대해 표현한 교의개념에도 새롭게 적용된다. 특히, 슐라이어마허는 기적, 계시, 영감, 예언, 은총에 대해 이 개념들이 종교가 소유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첫 번째 개념이라고 판단하고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그는 이들 개념이 "종교를 소유한 인간의 의식을 가장 특징적인 방식으로 표현"(p. 110)한다고 봤다.
[기적]
그는 기적이 "오로지 사건에 대한 종교적인 이름"이고, "사건에 대한 종교적 견해가 곧 지배적인 견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곧바로 부합하게 되는 모든 사건과 가장 자연적인 사건"(p. 108)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기적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형태의 사건으로만 보는 전통적 관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기적은 종교적 시선에 의해, 초월자의 손길이 내재한 것으로 드러나는 일상의 모든 사건이다. 이는 빈무덤이 누구에게는 부활의 기적으로, 누구에게는 시체의 도난으로 보인 차이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는 기적을 어떤 특별한 사건으로 한정기키려는 태도가 옹색하고 고통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 내부에 일어나는 자유로운 확신을 상실하고, 외적 권위에 굴복하려는 종속적 태도일 뿐이다.
[계시]
계시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이며 새로운 직관"(p. 109)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기적과 연관해 볼 때 일상의 모든 사건에서 드러난 초월자의 손길과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것 역시 기이한 사건을 통해 자아를 질식시키고 압도하는 방식을 부정한다.
[영감]
영감은 "오로지 자유에 붙이는 종교적 이름"일 뿐이고, "실제로 전달됨으로써 우주에 대한 직관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행되는 종교적 감정의 모든 표현"(p.109)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영감이 정경으로서의 성경에만 제한된 것과 차이를 보여준다. 그에서 영감은 종교적 감정에 대한 모든 자유로운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절대자에 대한 인상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언]
예언은 "종교적 사건의 반이 주어져 있을 때 다른 반을 희망하는 모든 것"(p.109)이다. 이것은 예언이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이라는 관점과 다르다. 이런 관점은 예언을 단순한 점술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예언은 현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영원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것을 미래적인 것으로 연결시키는 가능성이다. 또한 이는 종교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은총]
은총은 모든 종교적 감정이 우주를 통해 직접적으로 작용되는 초자연적인 것임을 말한다. 즉, 능동적 성취의 산물이 아니라 수동적 반응인 고유한 체험에서 '은총'을 느끼는 경건한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슐라이어마허의 재해석은 종교의 본질을 근원자에 대한 근원적 직관과 감정으로 본 관점이 일관되게 적용된 것이다. 종교의 본질로 작용하는 근원적 체험에 대한 2차적 반성의 산물이 교의와 종교적 개념이고, 이는 수동적 체험에 대한 능동적 접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교에 대한 표현을 그 자체를 절대시하거나 신성시하는 일체의 행위를 부정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기이한 경험과 사건에만 종교적 체험을 환원시킨 것을 부정하고, 오히려 근원적 체험을 평범한 일상의 자리로 되살려내고 있다. 또한 종교를 어떤 절대적 권위에 대해 자아를 상실한채 복종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이미 가득했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신성이 샘솟아 스스로 살아있는 것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행한 것과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다시 생각하고 이것을 따라 느껴보려고 하는 것은 고되고도 무가치한 헌신이다. 여러분은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서려고 하며 여러분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고귀한 의지는 종교를 행하는 여러분을 방해하지 않는다. 종교는 노예의 봉사와 감금이 아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기서 여러분 스스로 에게 속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종교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