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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생각의창 1
한국종교학회 엮음 / 창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승, 이승의 투사물로서의 공간'이라는 글은 큰굿의 시왕맞이제에 나타난 저승의 모습을 통해서 무교의 죽음관을 살펴보고, 특히 그것의 고유성을 논증하려 한다. 그런데 이 글에는 무교의 죽음관보다는 저승관이 나타나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저승을 어떻게 묘사했나를 근거로 무교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저자 이수자는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유성이라는 것도 상당히 느슨한 논리로 전개된다. 예를 든다면 불교에 시왕이 열명인데, 시왕맞이제에는 열 네명과 한 명의 판관이 있기 때문이라거나 시왕맞이제가 보다 체계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고유의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오히려 단순한 것에서 보다 복잡한 체계로 자리잡혀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불교의 단순한 구조가 반영되면서 복잡한 체계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설화 등에 나타난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도 고유성보다는 오히려 불교적인 것과의 혼합과 습합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시왕맞이제의 모든 것이 고유한 것이니까 우리 고유문화의 죽음관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불교적인 것과의 차이를 통해서 그 고유성을 탐구하는 것이 더 타당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무교의 사후세계는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승과는 분리되고 단절된 저승으로 이승의 삶에 윤리적 교훈과 그 당위성을 설득하는 도구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 때 분리와 단절이라는 표현은 그가 이원론적 세계관이라고 표현한 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런 저승은 이승을 살아갈 때 왜 옳고 착하게 살아야하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런 윤리적인 관점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무교가 개인적인 복에만 집착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 보여준대로 벌을 받을 죄의 내용에 오히려 타인과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 내용의 체계성과 복잡성도 미신이라고 보면서 폄하하는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른 부분으로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승의 삶의 단 한 번뿐이라는 강조점에서 저승의 안락보다는 한 번 뿐인 이승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함을 강조한다는 것도 주목할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무교에서 죽음은 이승의 삶에 대한 경종의 역할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교 역시 죽음을 하나의 완결된 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봤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수자가 무교의 세계관을 이원론적으로 본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원론은 두 가지의 단절된 세계를 전제하는 체계다. 그러나 무교에서 이승과 저승의 위치적 관계는 단절이라기 보다는 연속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무교에서 저승은 하늘 위 어디나 땅 속 어디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일상의 곁인 수평 연장상의 공간이다. 먼 길을 걸어 연못 건너에 위치해있는 곳이다. 게다가 무교에서 수직적 위치에 놓인, 신들의 세계인 천상계가 있다는 것과 대조해 볼 때, 더더욱 이승과 저승의 수평적 연속성은 분명해 진다.
무교의 넋굿은 죽은 자와 산자의 맺힌 한을 풀어주고 오히려 살아있는 가족과 그 마을 주민의 새로운 삶을 위한 맺힘의 풀이인데, 이 경우에도 다른 차원의 어떤 세상이 아니라 바로 살아남은 이들의 삶, 그 모퉁이에 함께 하는 죽은 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된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존재인 혼이 다시 이승의 동물이나 곤충으로 환생한다는 관점도 일상의 자리가 죽음과 서로 깊은 연관 속에서 상호 침투적인 관계 속에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무에 있어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은 "이승의 모퉁이만 돌면 바로 저승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서구적인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다른, 단일 선상에 놓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무교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함께 맺힘없이 죽음과 조화를 이루려 했다고 볼 수 있다(차옥숭,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77), p. 201∼277 참고).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고 방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무교를 통해 바라본 죽음은 이처럼 우리 일상의 모퉁이에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관문이고, 이승의 삶 속에서 이웃과 가족을 위한 희생과 도움의 손길을 강조하는 마음의 결을 일깨워주는 삶의 경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