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틀렸었다
짐 베커 지음, 김재일 옮김 / 지혜의일곱기둥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메일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안내글을 읽었을 때, 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기복주의 신앙, 성공복음에 기대어 대형화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문제들을, 치부들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겨도 그런 내용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내용을 만나지 못해 실망스러울 때마다 목차를 뒤적였다. '내가 틀렸었다'는 장은 한 참 뒤에 짧게 담겨 있었다. 오히려 짐 베커 목사가 45년 형을 받았지만 그것이 부당한 것임을 변증하고 부당한 피해자임을 밝히려는 책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서평이 당첨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이젠 읽지 않을 수도 없고 서평도 써야하니 어쩔 수 없이 읽어나갔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짐 베커 목사의 실패와 절망 위에 나의 얼굴이 점점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장을 덮으며 결정적인 반전과 마주쳤다. 짐 베커 목사의 잘못을 목격하려던 난 뜻밖에 내 안에 감춰진 거짓된 욕망의 알몸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 책의 서평 이벤트를 신청했던 댓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전히 성공을 복음의 유일한 최고의 열매로 보는 신앙이 그득한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목회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나 역시 어느새 성공적인 목회에 길들어 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 내 욕망과 두려움의 자화상을 비춰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난 이 댓글에 감춰진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난 나의 욕망과 두려움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바람의 뒤에는 더 큰 다른 욕망이 숨어있었다. 자신이 틀렸었다고 고백하는 유명한 목사의 추락을 통해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씹어대고 싶은 욕망. 타자의 잘못과 틀린 점들을 씹어대면서 나는 잘못되지 않았고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처음에는 짐 베커 목사의 틀린 점들을 보며 그래 맞아 그게 틀린 것이지 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 것은 그가 틀리고 나는 맞다고 믿는 나의 신념 역시 또 다른 우상이라는 진실이었다.
역자 후기에 있는 번역자 김재일의 고백이 그 진실을 정나라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짐 베커와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삶의 자리와 추구하는 가치관과 설파하는 메시지는 정반대였을지 몰라도 짐 배커의 "내가 틀렸었다"는 고백은 나의 고백이 되기 시작했다. 그가 성공복음, 기복신앙이라는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좇았다면, 나는 이데올로기와 인본주의 신학이라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좇았다"(499)
짐 베커 목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집착한 신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그 성공복음은 우상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일한 패턴의 늪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성공복음, 기복신앙을 비판하면서 고난에 동참하는 십자가 신앙이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 역시 하나의 신념체계를 절대화하는 동일한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하나의 신념체계를 절대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나는 나도 모르게 선악과를 따먹고 있었던 것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의 열매로, 짐 베커의 틀린 점, 그 악을 알면서 나는 선하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집착, 그 근원적 죄를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정죄하고 지적하는 손에는 오히려 자신을 향한 세 개의 손가락이 있다고 했던가? 짐 베커의 진실한 고백에 바로 나 자신을 향한 나의 세 손가락이 투명하게 비춰져 있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는 그의 틀린 점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의 위선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만을 오롯이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믿음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굳게 붙든 신앙의 뒤에 감춰진 욕망과 두려움은 무엇인가? 내가 틀린 그곳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책이 내게 준 귀한 선물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엑카르트의 기도를 되새기게 된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게 하소서" 내가 그려낸 하나님과 그분의 뜻이 내 욕망과 두려움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소서. 언제나 내 앎의 지평을 넘어서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해 나를 열어두게 하소서,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