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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 그랜드북스 51
헤르만 헤세 지음 / 일신서적 / 1992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문득, 내가 던져져있는 삶의 자리를 발견하곤 스스로 갑자기 낯설어진 그 곳의 지형을 힘겹게 익혀갔던 사춘기 시절. 그 때 나를 비춰보고 고민하게 했던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였다. 그 역시 스스로 선택했다기 보다는 이미 그 속으로 던져져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동양, 그것도 한국이라는 땅과 하늘을 호흡하며 자란 내 몸이 자라면서 서양 종교의 옷은 점점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때는 그 어색함이 내 몸의 외소함과 부족함이자 급기야 죄라고 자책했었다. 당연히 맞지 않을 수밖에 없는 옷이었음은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서양 기독교의 틀을 자유롭게 벗어나 너무나 편안한 동양 종교의 품에서 자유로운 춤사위에 어깨 들썩이는 삶을 꿈꾼다. 이런 변화와 성장은 오랜 시간동안의 고민과 방황, 삶의 체험 속에서 내 안에 스스로 자라난 이 땅의 혼이 자라나는 것이었다.
이런 동양인의 혼이 서양 종교의 틀을 벗어나려는 여정에서 이 책 <싯타르타>는 서곡이었다. 첫 걸음을 떼던 그 때에 아름답고 신비롭게 들리던 동양의 가락이었다. 이 책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깊이가 담겨있었기에 더더욱 나의 영혼이 그 신비에 매력을 느꼈었고, 서양인이 이해한 동양의 가락이었기에 기독교인인 내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기독교(물론 동양의 혼으로 바라본 기독교도 이젠 다른 깊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와는 다른 불교의 매력이 그 속에서 풍겨났다. 싯다르타가 다양한 전통의 수련과 지식을 세련되게 완성하고 어떤 경지를 소유하는 것으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계속 다른 공부를 위해 떠나던 모습, 오히려 삶의 질곡과 땀, 욕정과 증오, 애증을 다 맛보고 그 척박한 삶의 땀과 눈물의 냄새를 한 껏 들이킨 후에야 깨달음에 이르는 모습.
지식이나 경지 따위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온 몸으로 삶을 살아내고 그 삶 속에서 온 몸을 통해서 깨닫는 자유한 영혼, 싯다르타의 그런 모습은 교회를 오가고 몸이 터져라고 기도하던 내 신앙을 비춰보게 한 동양의 깊고 검은 거울이었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은 그런 깊이의 차원과 넓은 평지를 온몸으로 걷는 넓이의 차원에 공명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지식을 높이 쌓아올려 그 웅장함에 압도되려는 새디즘적 종교의식으로 왜곡되어 있던 당시의 기독교신앙은 그렇게 조금씩 금이 가고있었다.
그렇게 삶의 현장, 그 먼지 날리는 땅으로 스며 녹아내리는 깨달음을 동경하게 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를 먹고 생존의 장에서 숨가쁜 달음질로 살아가는 지금도 참된 생명과 자유의 깨달음을 깊이 사랑했던 싯다르타의 영혼은 단단해진 내 혼을 두드려 깨운다. 일상과 생존의 장이 바로 삶의 진리를 연단하고 깨달아가는 바로 그 보리수나무 아래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