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3층; 코기토? |
근대 철학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위 코기토 명제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바로 그 명제를 해체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13층은 가상현실 속에 인간의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놓고, 그곳에 접속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가상현실의 특이한 점은 특별히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나 접속자가 있어야 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세계는 독립적으로 스스로 돌아가고, 그 속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상현실의 존재라는 모른채 스스로 판단하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곳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가 단순히 전기신호로 만들어진 가상세계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 세계를 만들어낸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도 실은 가상세계라는 것이 밝혀진다. 가상세계 속의 가상세계였던 것이다. 그 가상세계 내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판단하며 사랑하고 증오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존재하는가? 바로 이 영화는 이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허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여인이 가상세계 속의 주인공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 모호한 경계를 허물어 간다. 물론 영화는 가상세계의 주인공이 결국 현실세계로 옮겨감으로써 현실세계의 중요성을 해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꼼꼼히 생각해보면 가상세계 속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또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는 자아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전자신호 내에서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있고 정신은 전기신호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그것이 맞는가? 등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고 생각하기만 하면, 바로 우리가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이 실은 가상현실 속을 살아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반문을 가능하게 한다. 기독교의 관점으로 이 세계는 피조된 세계이고, 불교의 관점에서 이 세계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상세계 속의 가상인물이 스스로가 가상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겪은 혼란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바로 그 질문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주는가를 물어야 한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곳에서 우리의 착각이 드러나고 보다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생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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