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노동이 어떤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가치를 만들어내며 노동이 없으면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노동의 소비‘라는 사태가 의미하는것은 소비의 이론이 노동마저 뒤덮어버리고 말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갤브레이스가 태연하게 장려했던 ‘새로운 계급‘의 문제점이 한층 더 잘 와 닿는다. 갤브레이스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발견하는계급의 탄생을 환영했다. 그러나 이는 소비의 논리를 노동에 적용한 데불과하다. 그들이 노동하는 이유는 ‘삶의 보람‘이라는 관념을 소비하기위해서다.
여기에서 또다시 흥미로운 사태가 발생한다. 노동이 소비되면 이번에는 노동 이외의 시간, 즉 여가도 소비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여기에도 정당한 의미와 관념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생산적인 노동에 구속되는 일 따위는 없어", "여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라고, 누구나 증거를 제시하게끔 재촉한다."
이렇게 보면 여가란 더 이상 노동이 정지하는 시간이 아니라 비생산적활동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이제 여기는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어"
라고 온 힘을 다해 주위에 과시해야 하는 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여가에 무엇인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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