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 라는 안도감뿐이다. 주유소의 수도를 빌려서 온몸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몸에 달라붙은 소금을 씻어낸다. 인간 염전이랄까. 온몸이 소금투성이다. 사정을 들은 주유소의 아저씨가 화분의 꽃을 꺾어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준다. "수고했어요. 축하합니다!" 이국 사람들의 그런 작은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하다. 마라톤은 작고 친절한 마을이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런곳에서 수천 년 전에 그리스 군이 처절한 전쟁 끝에 페르시아의원정군을 배수진을 치고 물리쳤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3

35킬로 지점을 통과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에게 있어 미지의땅 terra incognita‘ 이다. 나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35킬로 이상의 거리를 달린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다. - P101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햇수와 거의 같은횟수의 풀 마라톤을 완주한 지금도, 42킬로를 달리고 나서 내가느끼는 것은, 처음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달려갔던 그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하고 있다.
30킬로까지는 ‘이번에는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 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를 지나면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 같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
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아, 힘들다. - P107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의 소요 시간은 3시간 51분 좋은 기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혼자서 마라톤 코스를 주파한 것이다. 교통지옥과 상상을초월하는 더위와 격렬한 갈증을 극복하고 이만하면 나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을듯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 이 순간 아무래도 좋다. 아무튼더 이상 한 발짝도달릴필요가 없다―뭐라고 해도 그것이 가장기쁘다.
아아,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 - P106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하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 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