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의존적‘이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는가? 사실은 의존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인 것이 아닐까? 왜 특정 의존은 ‘정상‘ (심지어 ‘성취‘)으로 여겨지고 다른 의존은 모욕당하는가? 생계부양자인 남편은 아내의 돌봄노동에 ‘의존‘ 하지만, 통계상으로는 아내가 일방적으로 ‘의존‘ 한다고 여겨진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전 지구적 노동 분업에 인류 전체가 의존하고 있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옷을 만들어 입지 않는다고 해서 ‘의존적‘ 이라고 비난받는 사람은 없다. 지배집단의 의존은 ‘의존‘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의존의 구조 속에 연결되어 있지만 ‘의존적‘ 이라는 낙인은 그 구조의 하층부를떠받치고 있는 이들에게만 전가된다. 간단히 말해서, 독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배체제를지속시키는 허구적 프레임인 것이다.
- P56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돌봄을 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권리는 의무와 무관하다. 즉, 권리는 ‘쓸모‘를 입증하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고, 각자가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등가교환도 아니다. 권리는 인권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고, 의무는 어떻게 공유되고 분배될 때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 P63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아서 프랭크 (2017),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역), 봄날의책, 202쪽,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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