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내가 신경 쓰고 있던 대상은 루스가 아니었다. 내 가슴은 약간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게 맞장구치며 터뜨린 그 웃음으로 모든 세월을 뛰어넘어 토미와 내가 다시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들었던 것이다.
- P305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기증자들에게서 흔히 본 적이있는 그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싶은 듯했다. 그럼으로써 자기 몸속에 별도로 자리 잡고 있는 고통의 영역을 더 잘 살펴보고 정돈하려는 것이었다. 마치 사려 깊은간병사가 전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서너 명의 병약한 기증자들을 바삐 왔나 갔다 하며 돌보는 것처럼. 엄밀하게 말해서 그녀는 아직 의식을 잃지 않은 상태였지만 철제 침대 옆에 서 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의자를 끌어와 그 옆에 앉은 다음 두 손으로 루스의 한 손을 쥐고, 그녀가 고통의 파도에 휩쓸려 손을 비틀어 빼내려 할 때마다 잡은 손에 힘을 주곤 했다.
- P324

시간이 그런 식으로 서서히 녹아들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그렇게 편안해지는 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웠다.
- P327

했지만 나는 그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이윽고 그의 비명이 잦아들고 분심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나는 그 역시 나를두 팔로 얼싸안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바람이 휘몰아쳐 우리옷을 잡아당기는 그 들판 꼭대기에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말없이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서 있었다. 마치 그렇게 서로 안고 있는 것이 우리가 어둠 속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라도 한 듯.
- P376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캐시. 너는 정말이지 좋은 간병사야. 만약네가 나한테 이런 존재가 아니었다면, 나한테도 완벽했을 거야."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내 몸에 팔을 둘렀다. 우리는 나란히 앉은 채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 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바로 그런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야, 캐시, 우린 평생 서로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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