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프는 단순히 실패한 자기의 작품을 찢은 다음 그것을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조각들의 우연한 배열 속에서 예술가의 섬세하고 숙련된 시각에 의한 판단력이나 솜씨가 배제된, 더욱 자유롭고 암시적인방법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만일 다다이즘이 반예술 운동이라고여겨진다면, 이 방법은 가장 순수하고도 도발적인 반예술 행위였다. 심지어그 결과가 굉장히 형식적이고 미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이라는 것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개입시키게 되자, 놀랍게도 운명이 인간의계획 결정권까지도 빼앗아버린 그런 단계로까지 예술가의 역할이 격하되었다. 그리하여 서구사회의 합리주의는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 대안으로아르프는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방법은 미래의 일을 점치기위해 대나무 줄기들을 던졌던 도교의 예언서 『역경』의 경우에 비견될 만한 것으로, 우연한 배열이 우주적인 질서를 반영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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