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된 걸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동지가 됐구나. 장애인임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장애는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야. 이 사회가 장애를 불행하게 만든 거지."
- P187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나를 싫어했다. 부모의 잘못된 사랑으로 태어난 내가 싫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뛰쳐나간내가 싫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미싱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싫었고,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내가 싫었고, 에이즈란 병을 가진 내가싫었고, 장애인이 된 내가 싫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을 싫어한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그 모든 일들을 싫어한 것이라는 걸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싫어한 그 모든 일들을 피하고 싶었고, 없어지기를 바랐지만 그 일들은 피할 수도, 없어질 수도 없는 것이라는걸 깨달았다. 그 일들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간에 중요한 건 그 모든 일들은 고통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내 태생도, 미싱일도, 성 정체성도, 에이즈도, 장애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희망을 놓지 않는 나를 나는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열다섯 나이에 세상으로 나와 항상 난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꺼낸 기억 속에는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 P16

내 삶의 이야기를 쓰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것이 있다. 그건 과거의 아프고 힘들었던 고통들을 뜨거운 눈물로 다흘려보내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이었다. 항상 내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 돌아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따뜻하게 바라보며 나에게 등 두드려주는 내가 된 것이다. 아프고 힘들었던 그 모든일들이 고통만 준 건 아니었다. 그 고통 속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았고, 어떤 일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함도 주었기에 이제 나는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 P17

가족들에게도 받아보지 못한따뜻함을 그 누나들에게 받아보았다. 그때, 나에게는 지하공장처럼어둡고 추운 세상에 따뜻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P53

"왜 우리는 쉽게 만나 하룻밤으로 끝나는 관계가 많을까?" 물었닺 그는 씁씁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억압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욕구를참고 살다 동지를 만나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그런 거 말이야. 우리도 이성애자들처럼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 수 있으면 지금의 우리 모습과는 많이 다를 거야.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가진 변태쯤으로 취급하잖아. 그래서 우리는 나방 같은 존재지. 낮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가로등 밑에 모여들고, 사람들은 손을 저어 우리를 내쫓지." - P100

"보건소에서 내가 에이즈에 걸렸대."
선영이의 놀라움에 커진 눈과 마치 정지된 것처럼 일순간 경직된모습을 보니 괜히 얘기했나보다 후회가 되었다. 선영이의 커진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선영이는 이내 꺼이꺼이 소리를 내가며 울기 시작했다. 선영이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내 앞에서 운 적이 꽤 있었지만 이렇게 크게 우는 건 처음이었다. 울면서 "어떡해, 너 어떡해" 를연발하는 선영이에게 "울지 마 괜찮아, 보건소에서 그러는데 이제는죽을 병 아니래. 요새는 약이 나와 있어 약 먹고 치료하면 괜찮아질수 있대" 오히려 그녀를 달랬다. 난 왜 몹쓸 병에 걸려 이 좋은 친구를 이렇게 마음 아프게 만드는 걸까, 조심하지 못한 내 자신을 원망했다. 통곡을 하다시피 우는 선영이를 달래기 위해 "그만해, 무슨 장례식장에라도 왔냐. 괜찮아질 수 있대잖아. 큰 병원에 얼른 가볼게"
애써 덤덤한 척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면서 나도 그만 울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 참을 울었다. 선영이는 병원비가 많이 들 거라며 돈까지 빌려주었다.
- P116

가톨릭 사화복지과를 찾아가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던 오준수를아는 사람들은 그를 다정다감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말기의 아픈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약 부작용 때문에 뭔가가 많이 돋아난 자신의 얼굴이 괴물로 변해간다고 괴로워하면서도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열심히 살았다. 그는 교도소 독방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동료 감염인에게 스웨터를 사서 보내주고, 약값 없는 감염인을 도와주기 위해 신문배달한 돈을 모았다고한다. 그는 자신에 의해 생겨난 쉼터에서 일 년여를 살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의 부회장이었던 그의 임종에 14남매나 되는 가족들은 오지도 않아 ‘친구사이‘ 회원들이 그의임종을 지켰다. ‘친구사이‘ 회원들이 치른 장례식에는 그가 좋아한나나 무스꾸리의 음악을 틀어놓고 영정 앞에 놓을 국화꽃도 일일이포장한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 P123

"장애인이 된 걸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동지가 됐구나. 장애인임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장애는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야. 이 사회가 장애를 불행하게 만든 거지."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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