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침묵, 즉 ‘콘템플라치오contemplatic‘(관상)는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의 핵심에 있고 가장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 작가이며 토머스 머튼의 제자인 제임스 핀리는 그것을 ‘미묘한 무無‘라고 했고, 영국 도미니크회의 허버트 맥케이브는 사랑스럽게도 그것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낭비‘라고 했다. 존 크리사브기스는 <광야의 마음Heart of theDesert>에서 관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기다리는 법, 보는 법, 듣는 법이다. .... 일종의 내면성이고, 멈춘 후 마음의 지하실과 삶의 핵심을 탐구하는 법이다. ....
침묵은 결코단순히 말이 중단된 상태가 아니다. ....
침묵은 말한 말과 말하지 않은 말을 모두 멈춘 것이다. 침묵은 우리의 태도와 행위들을 연결하는 접착제다.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충만함이고, 부재가 아니라 현존의 알아차림이다. - P59

카시아누스는 말한다.
기도 안에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요청도 없고, 명예를 원한다거나권력과 힘을 달라는 요구도 없고, 몸의 건강이나 현세의 실존에 대한언급도 없습니다. (담화집」 9.24)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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