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아무것도 모르면서 ‘손 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 P124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한때 남성들이 자신이 여성혐오의 잠재적 가해자임을 선언하는 장면에 나를 대입하면 식은땀이 난다. 나는 장애인차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확실한 가해자이며, 이 시스템의 분명한 수혜자이다. 비장애인인 내가 이 지면에 장애에 관한글을 쓰는 것이 그 증거다.
- P124

박경석 대표가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터미널까지 오는 데 17년이 걸렸는데, 대구까지 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까요.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탑시다‘라는 말을 하는 데 그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습니다. 고작, 버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그가 싸워온 건 평생 자신을 옥죄던 굴레였고, 그 싸움이 그를 살게 했으므로, 저는 이 문장이 어쩐지 숭고하게느껴집니다. 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 P128

30년 전 아들을 잃은 팔순 여인의 메마른 목소리가 4년전 딸을 잃은 중년 남자의 젖은 목소리를 감싼다.
"그쪽은 나보다 젊어 당했으니 더 오래 힘들겠구먼."
이것은 그녀가 30년 전 젊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바로 저 스튜디오 안에 있을 것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악의적 왜곡이나 게으른 편견 같은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두 사람 사이의 공간, 당신의 긴 이야기를 함부로 요약하지 않을 것이며, 맥락을 삭제한 채 인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공간.그 절대적 안전함 위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떨림, 머뭇거림, 한숨, 침묵, ‘말할 수 없음‘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이. 진실은 잘 정리된 핵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배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깨달으며 4월 16일에 닿고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듣기를 바란다. (2018. 3.5)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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