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든 가정들 중 아주 얄팍하리만치 불합리하고 미숙하고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사람이 우리의감정적 실존의 중심일 뿐 아니라 그 결과로서, 또한 대단히 이상하고 객관적으로 비상식적이고 아주 부당한 방식으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그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의기이하고 병적인 특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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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번번이 우리에게 혼란과 실망, 좌절과 상처를 안긴다. 세상은 우리를 지체시키고, 창의적인 시도에 퇴짜를 놓고, 우리를 승진에서 제외시키고, 얼간이들에게 보상을 주고, 우리의 포부는 그 암울하고 무자비함에 산산이 부서진다. 그래도 우리는 거의 언제나 불평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책임 있는 사람을 알아내기가 너무 어렵고, 누구 책임인지를 확실히 알 때에도 항의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해고를 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 P123
사랑하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개념은 건방지고 부적합하고 몹시 해롭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또는 그녀가 변화하기 바란다는 말은 꺼낼 수 없다. 낭만주의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진실한 사랑은 파트너의존재를 온전히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애롭고자 하는 이러한 근본적인헌신이 있기에 사랑의 처음 몇 달은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갓 시작한관계 안에서 우리의 취약성은 관대하게 다뤄진다. 수줍음, 서투름, 혼란은 빈정거림
이나 불평을 낳기보다는 (우리가 어렸을 때 그랬듯이)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까다로운 면들도 오로지 측은지심이란 필터를 통해 해석된다. 이런 순간들로부터 아름답지만 험난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신념이 발생한다.
제대로 사랑받으면 반드시 나의 모든 면을 승인받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