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화 된 악의 구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하는 삶은 동시에 보이지 않는 악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면화, 일상화 되어 익숙해진 악을 알아채기가 어렵다. 오히려 자기 속에 뿌리 내린 악의 구조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잉태하기 쉽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역행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채.
중학교 1학년 첫 수업을 잊을 수 없다. 물리를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원산포격을 온 몸으로 겪었다. 의자에 발을 딛고 두 손은 뒷짐, 머리를 책상에 박았다. 우리 반 모두 받은 단체기합이다. 떠들었던가? 이유는 잊었지만 그 선생님은 그것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원사포격은 예고편이자 서막이었다. 중학교 시절 추억은 선생님들의 전설적인 매로 가득하다.
다른 여자 선생님은 당구 큐대를 사용했다. 책상 위에 무릎을 꿇게 하고 허벅지를 때렸다. 지면에서 시작해 등 뒤를 지나 허공에서 허벅지로 순식간에 내리 꽂히는 소리, 선생님 몸의 반동은 춤에 가까웠다. 수많은 학생을 매 시간 때리느라 다듬어진 기예가 아니었을까. 기술을 가르친 남자 선생님은 쪽지 시험 점수를 적은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오늘은 날씨가 너무 흐리다, 몇 번 나와... 퍽,퍽,퍽.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몇 번 나와... 목표점수에 모자른 숫자가 매 맞을 숫자다. 시계를 풀고 손과 발로 한 아이를 무차별 폭행했던 어느 선생님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한 학년 18개 반, 한 반이 70명에 가까웠던 남자 중학교에서 매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친구들과 옛 이야기를 하면, 더 전설적인 매질을 경쟁하듯 자랑한다. 그러나 웃으며 곱씹는 추억일 뿐 그 폭력적 사회화의 과정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던가.
남중, 남고에서 익숙해진 사랑(?)의 매는 군대에서 더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진화한다. 너무나 창의적인 강력한 얼차려의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사전의 정의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에 고통을 주는 방법이라지만, 비폭력과 폭력의 경계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 요즘은 달라졌다지만, 8,90년대에 학교와 군대를 겪은 이에게는 익숙한 추억이리라.
공포영화를 많이 보면, 잔혹한 장면에 익숙해지듯, 위계 구조의 폭력에 적응하다 보면, 폭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의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발견했다. 자신 안에 내면화된 폭력의 구조가 얼마나 깊고 은밀하게 스며있는지,강압적 조직문화의 위계 폭력에 얼마나 둔감해져 있는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동아마이스터고에 입학한 김동준 군, 그는 2014년 CJ그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강압적 조직 문화의 희생양으로 사내 폭력을 겪다 자살을 하고 말았다.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 걸, 나는 왜 시발, 살아 있어서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하죠? 회식 자리에 이끌려와 강제로 술을 마시면서 노래 부르고 다른 사람 있는데도 춤춰야 하고 도대체 내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이곳에서.... 1분 1초라도 여기서 더 살려면 강한 게 필요해요.
내가 뭘 잘못해서 엎드려 뻗치고, 신발로 머리 밟히고 까이고 당해야 하나요. ...
아직도 일하다 보면 그 형님이 회식 자리에서 저를 때리면서 ‘내가 왜 너희들 때문에 맞아야 하는데!‘라고 소리치던 얼굴이 떠올라요. 미칠 것 같아요. ... 선생님..., 저 무서워요....˝
_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40~43.
이 부분을 읽으며 코끝이 시려오다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까.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면에서 뜻밖의 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준이가 너무 유약했던 거 아닐까? 동준이 어머니 말처럼 특성화고교 실습에서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경우잖아. 운 없이 질 나쁜 선배와 동료 형을 만난 때문이지, 회사 입장에서도 재수가 없었던 거 아닐까? 단순폭행 사건을 너무 과장하는 건 아닐까?‘
이 목소리를 잠재우는데 시간이 걸렸다. 노력이 필요했다. 김동준 군과 부모와 관계가 돈독했고 긍정적이고 착한 아이였음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또한 내면의 목소리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조직 문화를 너무 쉽게 지나치는 측면에 주목해야 했다. 3년 선배가 신입직원을 폭력적으로 다그쳐도 그게 자연스러운 사내문화, 그것이 왜 당연해야 하는가. 왜 그 정도는 참고 견뎌야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 받고, 또 그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장악하는 사람이 리더십 있는 사람인가?
표면에 드러나는 몇 가지 사실만 보면, 단순히 개인적인 폭력사건으로 보이기 쉽다. 찬찬히 살펴볼수록 김동준 군의 자살은 사회적 사건이며 구조적 타살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 구조적 폭력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맥락을 찬찬히 살펴야만 보이지 않던 잔혹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한 폭력적 사회화 과정에 익숙해진 무감각에서 벗어나야 보이기 시작한다. 중고교시절, 군대시절에 적응하면서 내재화 되고 익숙해진 폭력적 구조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했다.
김동준 군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이란 어디 가나 다 힘드니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아파도 학교 가서, 회사 가서 아픈 게 성실한 삶이라 여겼다. ˝애 아빠도 그 전날 아이를 잡지 못한 죄책감에 빠져서 나오질 못하는 거야. 안 보냈으면, 동준이가 가기 싫다고 했으니까 안 보냈으면 됐을 텐데.... 내가 애한테 가르쳤어야 하는데 못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직장이 싫으니 좋으니 그러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그래도 또 가는 게 인생이다, 그렇게 살았던 것에 대해 우리가 엄청 많이 후회했거든요. 싫으면 회사에 안 가야 되는데 우리가 잘못 가르쳤다. 그 생각을 한동안 참 많이 했지요.˝(58쪽)
김동준 군 부모의 뒤늦은 깨달음이 죽비가 된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고 근로계약서에도 없지만 꼭 명심하라고 다른 동준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붙잡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21쪽)
구조적 폭력, 폭력적 사회화는 교회 밖 일일 뿐인가? 신학을 전공한다는 학과에서 복학한 선배가 신입생 불러다가 얼차려를 주고,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부사역자 조인트를 까는 기형적인 행태는 과거의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 주신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며 폭력적 구조에 면죄부를 주고, 인내심과 용서의 마음이 부족한 건 아닌지 잔혹한 자기 검열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그저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희생양으로 길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신앙인을 자학적 방관자이자 공범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려면, 영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찬양집회, 부흥회, 예배에서만 하나님을 느껴서는 일상이 배제되고 만다.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알아보고 동행하는 눈을 떠야 한다. 그 영적 감수성은 동시에 악에 대한 감각이어야 한다. 사회화, 구조화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악을 반드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조적 폭력이 더 이상 자행 되지 않도록.
#알지못하는아이의죽음 #고김동준군을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