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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라디오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그레그 베어 지음, 최필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사스가 발생했을 때 전 세계가 어떻게 반응했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억한다. 그 사스보다 더 대단하고 무서운 진화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아마 그때의 반응에 백 만 배쯤, 아니 정확하게 이 작품 속에서의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게 되리라 생각되니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고 밝혀질 증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가 어느 날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라면, 점차적으로 서서히 변화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에 우리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신인류가 생겨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이 작품은 그런 가정 하에 모든 상황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세 사람의 관점에서 각기 다른 생각과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관점은 고고학자이면서 박물관과 학계에서 유골을 훔친 죄로 쫓겨나 사기꾼 취급을 받는 미치의 관점이다. 미치는 알프스 산 동굴에서 세 명의 고대인들의 미이라를 발견하는데 그것이 그를 고대의 꿈을 꾸게 만든다. 그리고 그 꿈에서처럼 그는 본능적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만 애를 쓴다. 두 번째 관점은 생물학자이며 미리 논문에서 이런 인간 속 바이러스가 내재되어 있다가 활동하게 되면 인간이 새롭게 변할 수 있음을 예견한 케이의 관점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자신의 가설을. 세 번째 관점은 크리스토퍼 디킨이라는 CDC에서 정부 관료로 일하는 바이러스 전문가의 관점이다. 그는 약간 캐시와 같은 의견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치명적인 병을 옮긴다는 점으로 돌아가 정부 방침에 따른다. 그의 선택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구인류가 택할 수밖에 없는 생존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냐 하면 여자들이 SHERA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임신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기형아를 출산하게 되고 다시 얼마 안 되어 다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남자와의 접촉 없이 하는 임신이라는 것이다. 처음 인간은 이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혼란만 가중되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불신하게 되고 남자들은 여자들을 의심하게 되고 정부의 정책을 믿지 못하게 되고 정부는 시민을 강제 진압하려 한다. 이 SHERA는 여자의 몸속에서 스스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려고 변화를 계속하고 결국 새로운 기존의 인류와 다른 인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 새로운 아이들을 감염체로 여겨서 격리 수용하려 하고 케이와 미치는 자신들이 낳은 딸을 데리고 도망의 여정을 계속한다.
거의 700쪽에 가까운 분량임에도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한번 읽게 되면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어려운 생물학적인 용어들은 논외로 하고 나는 인간이 원시 시대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너무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와서 놀랐다. 인간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대단히 문화인이라 자부하지만 결국 한 껍질만 벗겨지면 마치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처럼 옛날 했던 행동을 되풀이하기만 한다.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마녀 사냥하고 화형식을 하고 창으로 찌르는 대신 총으로 쏘는 원시인들... 거기에 정부는 민주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여차하면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독재의 칼을 휘두르고... 어쩜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고 이것 때문에라도 인간은 진화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 이런 일을 겪어 지금의 인류가 된 것이라면 신인류가 탄생된 시점에서 구인류의 몰락은 받아들여야 하는 구인류로써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자 재앙임에는 틀림없다. 생존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지독하게 사실적인 작품이다. 인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지금 지구 어디에선가 있을 것 같고 내 몸 안에 그런 바이러스가 있을 것만 같고... 악몽인데 대단히 현실적 악몽이라 차마 그 놀라움을 뭐라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대단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