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깨진 술잔이라 불리는 전직 교사출신의 주당에게 ‘어림없지’의 술집주인이 공책 한권을 주며 글을 써보라고 하면서 이 작품은 시작된다. 시작되자마자 ‘어림없지’의 탄생비화를 풀어내는데 이렇게 기막히게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재치가 번뜩이는 작품은 처음 본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가지고 콩고의 정치 현실을 그렇게 쉽게 이해시키는데 정말 감탄하고 말았다. 농업부 장관의 그 명언이 유행하자 대통령이 자기의 대필가들에게 그와 같은 명언을 지어 바치라고 한다. 그리고 탄생한 말이 ‘여러분을 이해합니다.’다. 가히 정치인들이 할 만한 쇼라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깨진 술잔은 ‘어림없지’에 드나드는 주당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는데 그들이 왜 술독에 빠지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 속에서 변화하는 콩고의 모습과 여전히 콩고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인들의 허울 좋은 말 속에 감추어진 가면과 그들 스스로 흑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흑인이 해야 하는 행동 사이의 갈등, 가치관의 혼란과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살아감에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콩고, 나아가서는 아프리카인들이 겪는 일상의 단면을 조금은 알아가게 된다.


또한 깨진 술잔의 말 속에 들어 있는 뼈도 느낄 수 있다. 어느 그리스의 한가한 노인이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고 나온 것이, 심심해서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아침 먹으면 점심 끼니가 아니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 인류에 대한 업적이라는 나부랭이들이 무에 중요하며 그것을 안다고 지금의 현실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그 한가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발견할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절망 속에 사라져갔을까. 그러니 깨진 술잔에게 천국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가 술에 절어 산 것이 죄가 되어 그렇다면 옆의 깨진 창문이라도 넘어 들어가게 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비단 아프리카 콩고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깨진 술잔에게서 넘치는 블랙 유머는 우리의 선술집의 질펀한 삶의 얘기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작품 속에 다른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삽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 흐르듯 그 작품들은 이 작품 안에서 녹아 이 작품을 빛내고 있다. 그런 뛰어난 언어적 유희와 재치가 작품을 읽는데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책이 단순히 한 권의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가와 작품, 독자를 엮어주는 다리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다른 작품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자연스러움을 주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책에 기대는 감마저 주었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작품과 확실한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와 글장난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고 할까...

 

아무튼 내 짧은 소견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라면 이렇게 다양한 문화의 책을 골고루 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더 좋은 여러 나라의 접하지 못했던 책들이 출판되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자. 정확하게 말하면 콩고 술집이다. 콩고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나라도 두 나라가 있다고 하는 걸 이 작품을 읽고 처음 알았다. 콩고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중국인이냐, 일본이냐를 들으면 기분이 안 좋듯이 아프리카인들도, 아니 어느 나라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부가 까만 사람은 모두 아프리카인으로 뭉뚱그려 말하면 안 된다. 이들도 각기 나라와 부족에 대한 차이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인이라고 모두 미국인은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적어도 ‘콩고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로 제목을 정했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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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4-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아프리카 문학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 만땅이었는데 서평단에 똑 떨어졌어요. ㅠ.ㅠ 일단 님들의 리뷰 올라오면 보자 했는데 지름신이 슬슬 오느것 같은것이... ^^

물만두 2007-04-27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ave25님 재미있습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바람돌이님 그죠. 지르세요~^^
dave25님 그분이 오심 지르셔야합니다^^

짱꿀라 2007-04-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고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 너무 재미있게 리뷰 읽었어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물만두 2007-04-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저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프레이야 2007-04-3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 보여요. 님의 뽐뿌질 리뷰에 한표!

물만두 2007-04-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제 리뷰는 늘 호객 리뷰라는 생각이 드네요^^::;

비로그인 2007-05-0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웃음)

물만두 2007-05-0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7-05-1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제목도 멋지잖아요, 글쎄. :)

물만두 2007-05-1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가시도치 회고록도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