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체코는 한밤중이다(한국 기준으로는 그렇다). 문학기행 4일차가 마무리된 시점이다. 어제까지 프라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브르노, 밀란 쿤데라의 고향 브르노에 와있다. 내일은 조식 이후 바로 브르노를 떠나서 점심은 폴란드의 제2도시이자, 역사도시 크라쿠프에서 먹을 예정이다. 문학기행 5일차이면서, 폴란드문학기행 1일차가 되는 셈.
오늘의 일정을 따로 정리하기에 앞서서 여기까지 들고온 쿤데라 책을 펼쳤다(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첫 장편소설인 <농담>을 들고 왔다. 배경이 모라비아 지방이어서 낙점된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함께, 쿤데라 소설들 가운데서 가장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흔히 제목의 ‘농담‘이 작품 초반에 나오는 얀 루브빅의 농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지만, 나는 더 중요한 농담은 후반부에 나오는 ‘역사의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제마넥에 대한 루드빅의 복수 시도가 어이없게 좌절되는 게 작품의 줄거리라면, 그 좌절의 원인은 시간의 경과, 곧 역사에 대한 무시다. 시간의 경과를 과소평가한 이들에게 역사는 철퇴를 내려친다(역사의 복수인가?)
인용한 대목은 루드빅이 뒤늦게 자신의 과오(복수라는 환상을 품은 것)를 깨닫는 대목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비틀자면, 지연된 복수는 복수가 아니라 짓궂은 농담으로 전락한다(비슷한 내용을 강의책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에도 적었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만 브르노에서 쿤데라를 읽고 있다는 기분을 내려 다시 적었다...

과거에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넥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넥이 <교수대 아래에서 쓴 르포>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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