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츠 드바 라지
두 번은 없다
쉼보르스카의 유명한 시
어제 쓰려다 만 시
두 번은 없다
두 번 올 것 같지 않은
폴란드 크라쿠프
오늘은 쉼보르스카의 날
체코에서 볼 수 없었던 맑은 날
(날씨에는 국경이 있단 말이지)
오늘은 온전히 크라쿠프의 날
평생 다시 올 것 같지 않기에
오늘은 크라쿠프의 생일날이어도 좋지
1945년 1월 18일은
크라쿠프가 나치독일로부터 해방된 날
그러니 생일이어도 좋은 날이지
오늘은 2026년 1월 18일
크라쿠프의 해방 81주년을 축하해
마침 눈앞에 크라쿠프 중앙역이 보여
나는 시를 쓰기로 했지
어제 쓰다 만 시는 버리고
(어제는 17일이었으니)
오늘을 기억하는 시
오늘은 어제와 다른 날
중앙역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아직은 이른 아침이야)
나는 폴란드 사람들이라고 알아맞힌다
해방된 사람들이 있었지
아직 전쟁중이어도
독일군이 도망가고 크라쿠프는 해방됐지
폴란드문학의 임시정부가 됐지
크루프니차 22번지에 문인식당이 열리고
묽은 양배추 수프와 검은 빵을 먹으러
시인들이 모여들었네
젊은 거장 체스와프 미워시가 있었고
쉼보르스카도 있었지
대학 신입생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문학소녀
˝비스와바, 너는 담배를 너무 피워.
나처럼 보드카를 마셔야 오래 살아.˝
체스와프가 말했네
오랜 세월이 지나 알게 되지
미워시는 69세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93세에 타계하지
쉼보르스카는 73세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89세에 타계했네
체스와프가 옳았네
하지만 쉼보르스카가 틀린 건 아냐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쉼보르스카에게는 충분한 시간
비스와바는 크라쿠프를
쉼보르스카의 도시로 만들었지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크라쿠프가 해방되고
쉼보르스카는 곧 시인이 되었지
쉼보르스카 시의 역사가 시작되었지
우리가 크라쿠프를 찾게 만들었지
이 아침에 내가
크라쿠프의 역사를 기억하게 했지
축하의 인사를 전하게 했지
모두가 쉼보르스카가 해낸 일
한번의 인생으로 쉼보르스카가 해낸 일
두 번은 없어도 충분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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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5일차. 이제 후반부로 넘어간다. 브르노(체코)에서 크라쿠프(폴란드)까지는 4시간반 정도 소요될 예정. 어제 적은 대로 체코에서 아침 먹고 폴란드에서 점심먹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겸하여 야셀스카 거리에 다녀왔다. 어젯밤에 주소와 동선을 알아두고 실행한 일인데, 카렐 차페크와 로베르트 무질이 살았던 집이 야셀스카 거리에 있고 숙소에서는 15분쯤의 거리. 심지어 두 집은(물론 두 작가가 살았던 시기가 다르지만) 같은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차페크는 1905년-1907년에 신혼의 누나집에 얹혀서 브르노의 명문 김나지움을 다녔다(앞세대의 알폰스 무하와 레오시 야나체크, 다음 세대의 쿤데라가 동문이다). 1907년 전학을 가서 김나지움 졸업은 프라하에서. 쿤데라는 같은 김나지움을 1940년대 후반에 다녔고 1948년에 졸업했다.

시차를 둔 차페크의 이웃 무질(차페크보다 10살 위다)은 가까운 곳의 브륀(지금의 브르노) 공대에 다녔다(그 공대 건물은 현재 마사릭대학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벽의 현판에 따르면 1898-1901년 사이의 일이다(그의 아버지가 공대 교수였다. 작년 오스트리아 문학기행 때 클라겐푸르트의 무질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기치않게도 브루노에서(물론 무질 시기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도시 브륀이었지만) 무질을 만나다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르노와 곧 작별하며 멋진 선물을 챙겨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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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브르노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진행한 일정을 적는다. 이번 문학기행에 브르노를 포함한 건 순전히 쿤데라를 고려해서다. 한국에서 체코문학의 존재는 전적으로 쿤데라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프라하 혹은 체코 작가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라면 단연 카프카에 이어서 쿤데라를 꼽게 된다(차페크가 뒤를 잇는다. 물론 체코 내부에서라면 순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쿤데라와 체코의 관계는 복잡하다. 8년전에(2017년 가을) 프라하를 찾았을 때만 해도 쿤데라는 체코 국적을 여전히 박탈당한 상태였다(서점에서 쿤데라의 책을 보지 못했다).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는 1979년 <웃음과 망각의 책>이 시비거리가 되면서 체코국적을 박탈당했었다. 화해가 이루어지는 건 2019년에 와서 체코정부가 적극적으로 관계회복을 시도하면서부터다. 다시 체코 국적을 회복하게 되었고 2023년 타계한 뒤에는 유해도 고향 브르노로 옮겨진다(작년 1월). 한번 적은 대로 올 7월에 묘지에 안치된다.

모라비아지방의 중심도시여서 브르노에는 모라비아주립도서관이 있는데(체코에서 두번째로 큰 도서관이라고), 도서관 1층(우리에겐 2층)에 쿤데라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일행이 브르노를 찾은 이유다. 점심식사 후에 곧바로 찾아간 곳도 바로 쿤데라도서관. 나중에 쿤데라박물관이 생길 지 모르겠지만(그의 생가도 브르노에 있다) 당분간은 쿤데라 아카이브 노릇을 하게 될 장소이다. 실제로 한국어판 전집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나온 쿤데라 책 3000종 이상을 모아놓고 있었다.

사생활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수한 작가답게 쿤데라도서관에는 쿤데라 개인과 관련한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프라하의 카프카>처럼 <브르노의 쿤데라> 같은 책자도 나오면 좋겠다). 다만 그의 책들만 있었다(그가 애정했던 라블레의 책 정도가 예외로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1988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그땐 송동준 교수의 독어판 번역본)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고향, 그가 묻히게 될 도시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으니 감회가 없지 않았다(문학기행을 진행하는 이유다).

쿤데라도서관 방문으로 4일차 문학일정은 마무리되었고 일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브르노 구시가를 둘러보았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야간투어의 느낌이었다. 날이 밝으면 크라쿠프로 떠나기 전에 다시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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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아침 프라하의 숙소를 떠나 이동한 곳은 비셰흐라드 묘지였다. 카렐 차페크의 무덤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는데 버스로 이동한 다음 10여분 걸어들어가서 묘지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묘지앞까지.

이동중에도 살얼음이 깔린 길들이 있어서 주의해야 했는데 묘지도 안전을 이유로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묘지를 찾는 노인들이 있다면 그럴 만하다). AI는 해가 퍼진 다음에는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무덤의 위치만 확인하고 걸음을 돌렸다. 이 묘지에는 프라하가 자랑하는 많은 명사들이 묻혀 있는데 차페크 외에도 알폰스 무하, 스메타나, 드보르작 등의 무덤이 묘지의 이웃들이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 문학예술기행으로 프라하를 찾는 이가 있다면 필히 들러야 하는 곳.

문학기행 4일차였던 어제는 차페크와 쿤데라의 날이었다. 비셰흐라드 묘지에 이어서 찾은 곳이 프라하 외곽(1시간 거리) 스타라 후티(별칭은 스트르지)의 카렐 차페크 기념관(카렐 차페크 메모리얼)이었다. 차페크의 별장이었다는 곳인데 차페크와 배우 아내 올가 샤인플루고바, 지인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3층건물 전체가 전시공간이어서 예상보다 규모가 컸고 자료도 많았다. 프라하 도심에 있는 카프카박물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다만 외국인(관광객)이 드물어서인지(가이드에 따르면 주로 내국인과 수학여행 학생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은 더구나 더 드물지 않을까 싶었다) 연보를 제외하면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의 안내가 없어서 내용을 다 둘러보기는 어려웠다(단체방문을 예약해둔 덕분인지 기념관 직원 한글안내자료를 복사해서 나눠주었다). 카프카박물관의 꽤 규모가 있는 뮤지엄샵과도 비교되었는데 장난감 로봇을 비롯한 몇종의 기념품과 체코어 책자들만 비치돼 있었다.

그럼에도 예상보다는 훨씬 잘 꾸며진 기념관이어서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기념관 기는 길에는 겨울이라 얼어붙은 큰 연못(호수처럼도 보였는데 체코어로 연못이라고 한다)도 있고 경관이 좋았다. 다른 계절에 찾더라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기념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차페크 일정을 마무리하고 일행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제 오후 일정을 위해 브르노로 이도할 시간. 브르노끼지는 2시간4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차량 정체로 3시간쯤 걸렸다. 이동중에는 20, 30분이 더 걸릴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보통보다 늦은 점심이기도 했지만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브르노에서의 일정은 따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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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체코는 한밤중이다(한국 기준으로는 그렇다). 문학기행 4일차가 마무리된 시점이다. 어제까지 프라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브르노, 밀란 쿤데라의 고향 브르노에 와있다. 내일은 조식 이후 바로 브르노를 떠나서 점심은 폴란드의 제2도시이자, 역사도시 크라쿠프에서 먹을 예정이다. 문학기행 5일차이면서, 폴란드문학기행 1일차가 되는 셈.

오늘의 일정을 따로 정리하기에 앞서서 여기까지 들고온 쿤데라 책을 펼쳤다(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첫 장편소설인 <농담>을 들고 왔다. 배경이 모라비아 지방이어서 낙점된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함께, 쿤데라 소설들 가운데서 가장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흔히 제목의 ‘농담‘이 작품 초반에 나오는 얀 루브빅의 농담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지만, 나는 더 중요한 농담은 후반부에 나오는 ‘역사의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제마넥에 대한 루드빅의 복수 시도가 어이없게 좌절되는 게 작품의 줄거리라면, 그 좌절의 원인은 시간의 경과, 곧 역사에 대한 무시다. 시간의 경과를 과소평가한 이들에게 역사는 철퇴를 내려친다(역사의 복수인가?)

인용한 대목은 루드빅이 뒤늦게 자신의 과오(복수라는 환상을 품은 것)를 깨닫는 대목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을 비틀자면, 지연된 복수는 복수가 아니라 짓궂은 농담으로 전락한다(비슷한 내용을 강의책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에도 적었다).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만 브르노에서 쿤데라를 읽고 있다는 기분을 내려 다시 적었다...

과거에 최면이 걸린 나는 어떤 끈으로 거기에 자신을 묶어놓으려 하고 있다. 복수라는 끈. 그러나 이 복수라는 것은 요며칠 사이에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듯이, 움직이는 자동 보도 위를 달리는 나의 그 질주만큼이나 똑같이 헛될 뿐이다. 그렇다. 내가 제마넥 앞으로 나아가 그의 따귀를 때렸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대학 강당에서, 제마넥이 <교수대 아래에서 쓴 르포>를 낭독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때였고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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