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체코폴란드) 문학기행 전야에 마지막으로 읽은 건 필립 로스와 밀란 쿤데라의 대화다. 대화라고는 하지만 필립 로스가 인터뷰어로 질문을 던지고 쿤데라가 답하는 형식이다(로스는 영어권에 쿤데라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로스의 가계 자체가 동유럽(갈리시아) 유대인 이민자이므로 동유럽(쿤데라의 개념으론 중유럽 내지 ‘납치된 서유럽‘)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다. 두 작가는 주로 <웃음과 망각의 책>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쿤데라가 소설의 지혜를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고 느껴진다).

로스: 그러면 이것이 선생님의 비관주의에서 가장 멀리 나아간 지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쿤데라: 나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라는 말을 경계합니다. 소설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아요. 소설은 문제를 탐색하고 제기합니다. 나는 내 나라가 망할지 아닐지 모르고 내 인물 가운데 누가 옳은지 모릅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서로 맞서게 하고 이런 수단으로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모든 것에 답을 가지는 것에서 옵니다. 소설의 지혜는 모든 것에 질문을 가진 데서 오죠. 돈키호테가 세상 안으로 나섰을 때 그 세상은 그의 눈앞에서 수수께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첫 유럽 소설이 그이후 소설 역사 전체에 준 유산입니다. 소설가는 독자에게 세상을 문제로 파악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태도에는 지혜와 관용이 있죠. 신성불가침의 확실성에 기초한 세계에서 소설은 죽습니다. 전체주의 세계는 마르크스를 기초로 하든 이슬람을 기초로 하든다른 어떤 것을 기초로 하든 질문이라기보다는 답의 세계입니다. 그곳에 소설의 자리는 없습니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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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2026)이란 시집의 마지막 시다. 뒤에 5행이 더 붙어 있지만, 잘라먹어도 요지는 전달되는 듯싶다. 내란 재판이 아직 진행중이고 내란 수괴에 대한 구형조차 내일(13일)로 미뤄진 상태다(결과는 내일 자정을 넘겨 바르샤바 공항이나 프라하공항에서 알게 될 듯싶다). 그러니 아직도 ‘비상시국‘은 진행형이다.

<소설책>은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교유서가에서 시집이 나오는 줄은 이번에 알았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이었던 첫시집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기립박수>(2014)은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서점에서 넘겨봤던 듯싶다(구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소피아 로렌의 시간>(2018)이 사이에 있었는데 모르고 지나쳤다. 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2022)도 시집이군. 정정하면 <소설책>은 네번째 시집이다. 평론가로도 등단한 이력을 보아, ‘평론집‘도 시집 목록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허수경 시인이 진주 출신이었지...

꽃이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다면
웃음만을 지으시라 향기를 출동시켰을 것이다.
바람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면
눈보라를 내몰고 샛바람의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림자가 반역을 꾀할 수 있다면
햇살의 뒤편에서 웅크리지 않았을 것이다.
백두대간 거친 협곡이 불복종한다면
인위적인 모든 쇠붙이를 거부했을 것이다.
봄을 기다리던 소년의 눈동자가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
꽃과 바람과 그림자와 백두대간의 수괴가 되어
이 땅의 유일무이한 권력자들에게
완성된 혁명의 풍경을 되돌려주었을 것이다.
보이는가? 우리 모두는 비상시국이었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민주주의의 함성을 지키기 위해
한 번도 느슨한 풍경을 보인 적이 없다.
봄이 되돌아올 때마다 어떤 풍경에선 피가 흐르고
기쁨과 눈물이 겹쳐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결코 계엄을 푼 적이 없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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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역사보다 더 철학적인 것은 없다"

18년 전 페이퍼다. 그사이 테러 시대에서 무법자 시대로 넘어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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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삶에 대해 들뢰즈의 요약으로 다시 읽는다. 오늘은 <신학정치론>에서 계속 멈춘다. 스피노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16세기 프랑스의 청년 라 보에시가 <자발적 복종>에서 다루는 질문들과 같다. 인민들은 왜 그토록 비합리적인가? 인민은 왜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까지 수백년이 소요되었다.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따라서 1665년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잠시 중단하고 <신학정치론>을 기획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주요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인민은 왜 그토록 비합리적인가? 인민은 왜 자신의 예속을 영예로 여기는가? 왜 인간은, 예속이 자신들의 자유가 되기라도 하듯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가? 자유를 얻는 것뿐만아니라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왜 그토록 어려운가? 왜 종교는 사랑과 기쁨을 내세우면서 전쟁, 편협, 악의, 증오, 슬픔, 양심의 가책 등을 불러일으키는가? 1670년에 <신학 정치론>은 가상의 독일출판사 이름으로 저자의 이름도 없이 출간된다. 그러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곧바로 드러났다. 그렇게 많은 반박과 비난, 경멸과 저주를 불러일으킨 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태인들, 가톨릭 교도들, 칼뱅파, 루터파 등 사상계 전체가, 심지어는 데카르트주의자들까지도 다투어서 이 책을 고발하고 나섰다. ‘스피노자주의‘와 ‘스피노자주의자‘라는 말이 모욕과 위협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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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잃어버린 표지를 찾아서

10년 전 페이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본 두 종이(하나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이지만) 경합하며 나오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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