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특강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다. 올해는 카프카 전집이 완간된 해인 만큼 카프카의 한국 수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연도로 기억될 텐데, 작품뿐 아니라 관련서들의 작황도 나쁘지 않다. 연초에 나온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교유서가)를 필두로 하여 최근에 나온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에디투스)까지.

개인적으론 지난 9월에 카프카 문학기행도 다녀왔으니 나로선 카프카에 대해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끝이 아니다. 내년 봄에도 카프카 강의를 진행하고 카프카에 대한 책도 낼 예정이라 한동안은 카프카에 묻혀 지낼 형편이다. 카프카와의 관계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결말도 열려 있다고 할까.

카프카뿐 아니라 내년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새로 번역돼 나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다시 강의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 카프카와 카뮈에 대해서도 강의해볼 수 있겠다(도스토예프스키와 카뮈도 가능한 주제이고 이미 강의하기도 했다). 국내에 전집이 나와 있는 작가들인 만큼 그 정도의 대우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내년도 한 해가 흘러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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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나온 <100세까지의 독서술>(북바이북)의 부제다. 저자는 일본의 평론가 쓰노 가이타로. 처음 소개되는 저자의 독서 에세이다. 초점이 ‘노년의 독서‘라는 게 여느 책과의 차이점.

˝‘책과컴퓨터‘ 편집장 출신의 평론가 쓰노 가이타로의 노년 독서 이야기. 70대 이후의 삶과 독서에 대해 리얼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장서 처분, 책 구입 절제하기, 도서관 사용법 등 노년에 책과 사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저자가 편집자로 일하며 인연을 맺은 친구, 동료들의 책에 얽힌 사연과 유명 저자들의 말년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추천사를 청탁 받아서 미리 읽어보았는데 (칙칙하지 않고) 매우 유쾌하게 읽힌다. 고령화시대를 앞서가고 있어서인지 일본 노인들은 꽤 활기 차 보인다. 책동네에서만 그런가? 내가 적은 추천사를 옮겨놓는다.

˝글을 깨친 이후에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노년의 독서, 70대 이후의 독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100세까지의 독서술>이라는 제목을 보고서도 독서에 대한 맹렬한 권고를 담은 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 쓰노 가이타로가 말하는 100세는 진짜 100세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섰으니 100세 시대도 공상만은 아니다. 저자의 구분법에 따르면 우리의 인생은 10대에서 30대까지의 청춘기, 40대에서 60대까지의 장년기, 그리고 70대에서 90대까지의 노년기로 나뉜다. 20대 초반에 서른 이후의 삶을 꿈꾸지 않은 나는 장년기에 들어서도 노년의 삶은 그려보지 않았다. 무엇을 기대하더라도 그 기대에 대한 좌절과 함께 노년이 시작될 거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100세까지의 독서라니? 

‘70세부터의 독서’을 뜻하는 ‘100세까지의 독서’, 곧 노년의 독서는 가장 어려우면서 비장한 독서다. 노안은 기본이고 쇠약해져 가는 신체를 이끌고서 책과 마주하기에 노년의 독서는 어렵고 난감하다. 또한 손에 든 책을 이제 다시 읽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비장하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일지 몰라’를 되뇌는 독서! 

어렵고 비장하기에 노년의 독서는 과격하다. 극강의 독서다. 저자는 이 강력한 독서의 실제를 실감 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비록 청춘기의 독자들에게는 와닿지 않을 테지만, 예비 노년, 곧 장년기 독자부터는 한 수 배울 만하다. 진정 노인을 위한 독서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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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내년 1월에도 경향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서평강좌를 진행한다(http://www.edukhan.co.kr/writing/). '로쟈처럼 서평쓰기'. 1월 9일부터 2월 6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이며 장소는 후마니타스연구소 강의실(경향신문사 12층)이다. 서평과 독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처럼 서평쓰기

 

1강 1월 09일_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려운 책을 읽는 기술>

 

 

2강 1월 16일_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 <직업으로서의 문학>

 

 

3강 1월 23일_ 열린 공동체의 상상: <이상한 정상가족>

 

 

4강 1월 30일_ 복잡한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 <전체를 보는 방법>

 

 

5강 2월 06일_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1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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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100주년 관련서도 이제 거의 다 나온 듯한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책이 이번주에 나왔다. 한국러시아문학회에서 엮은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한길사)이다. 국내 전공학자들의 책으로는 지난달에 나온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2>(문학과지성사)와 세트로 묶을 만하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러시아문학회 소속 학자 20인이 쓴 책으로, 러시아혁명기를 산 작가와 시인, 건축가와 화가, 음악가 등의 삶과 창작세계를 풀어냈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발레 등 러시아혁명이 낳은 여러 이론과 유산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 이후 각 예술가나 예술사조, 이론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현대에는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까지 소개해 연속적인 맥락에서 러시아혁명기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학회에 가본 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권으로 갈무리해주어서(분량이 꽤 되는군) 아주 요긴하다 싶다. 어찌되었든 전공자들도 할 만큼 했고 독자로서도 안심이 된다. 겨울밤 독서용으로 장만해두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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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이 약한 팀이 전반은 포기하고 후반에 승부를 건다는 것처럼 요즘에 휴일이면 오전은 포기하고(아침을 먹고 다시 잔다) 오후에 승부를 건다. 승부랄 것도 없다. 밀린 일을 해치운다는 거니까. 밀린 독서까지는 카바하지 못해서 오늘도 패전에서 벗어나지 못할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의책 두 권을 찾지 못해서(매주 10여 권씩 필요하다) 일 없이도 기운을 빼는 중이다.

그러다 어제 쓰다 만 페이퍼가 떠올라서 적는다. 문학동네 시인선 ‘티저 시집‘(이런 건 처음 아닌가?)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에서 읽은 대목을 옮겨 적으려 했었다. 가나다순에서 맨마지막에 실린(옛날 같으면 황지우 시인의 자리) 황유원의 ‘초자연적 3D 프린팅‘. 아마도 이 시집에서 가장 긴 시일 텐데, 중요한 게 바로 그 길이다. 한국시에서 읽을 만한 장시(내지 서사시)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는 게 황유원이 내게 갖는 의의다(시도가 당연히 없지 않았지만 재미가 적었다).

너무 길어서(?) 앞부분은 담에 읽기로 하고 말미만 읽었는데 시가 된다는 건 적당한 부력에 의해 언어들이 떠 있다는 뜻이다. 황유원은 일상적인 말과 흔한 표현에 그런 부력을 불어넣을 줄 안다.

네가 내 혈관 속에 흐를 수 있게 해줄게
내가 네 혈관 속세 흐를 수 있게 해줄래?

(오죽하면 내가 이럴까)

그런다고 죽는 일은 없겠지만
목숨을 다해서, 라는 기분으로
그래봤자 우리가 어제의 인간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 가능성 따윈, 아무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
마침내 난 내 모든 걸 다 바쳤다! 라는 기분이 들 때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시 잔뜩 들어찬 글자들로 붐비는 아침은 올 것이고

너는 이윽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말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고, 어쨌거나 오늘은

너의 엄청난 힘이 내 위에서 쓰러지는 게 나는 좋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결말이 마음에 든다. 덧붙인 ‘시인의 말‘에서 예의 황유원은 ‘최대화‘를 말한다.

˝존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내 앞에는 두 가지 시의 길이 주어져 있다.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켜보는 길과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잠재워보는 길. 나는 이 두 길 모두를 가보기로 한다.˝

두 가지 길 어느 쪽이건 그는 최대화를 약속했다. 그의 두번째 시집을 꽤 고대하는 독자 명단에 내 이름도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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