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만 보고 저자는 몰라도 역자는 맞힐 수 있었다. 음악과 과학 분야의 전담번역자 장호연 씨다. 앞서 번역한 책들 가운데 두 권 이상은 읽어본 것 같다. 저자는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뮤진트리)을 통해 소개된 존 파월. 작곡과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이력이 특이하다. 곧 음악가이자 물리학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인지도.

˝전작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이 음향학, 음악물리학에 초점을 맞춰 음악의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설명한 입문서였다면, 이 책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음악미학의 주제들을 더 집중적으로 다룬다. 물리학자이자 음악가인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분명한 설명뿐 아니라 재치 있고 유쾌한 존 파웰만의 표현 방식이 돋보이는 책이다.˝

음악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음악의 진화나 음악심리학(‘치유의 음악‘ 같은 주제에는 관심이 있다) 등에는 관심이 있다. 시의 기원이나 효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다. 전문적일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쉽게 풀어낸 저자의 공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미리 본 저자의 결론.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여러분이 다양한 질병을 이겨내고, 지루함을 견디고, 편안하게 쉬도록 돕고, 과제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하고, 그리움에서 기쁨에 이르는 감정들로 여러분 삶을 채워준다. 그러니 음악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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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로 미뤄놓은 일이 늘 있지만 요즘은 아랑곳하지 않고 쉬는 편이다. 오전에는 잠을 보충하고 오후에는 머리를 식히고(오늘은 실제로 머리도 잘랐다. 우리말 ‘머리를 자르다‘는 중의적이어서 오역하기 싶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쉬면서 비우지 않으면 다시 채우지 못할 것이다.

어제 대구는 영상 11도까지 올라갔기에 봄날씨라고 여겼는데 오늘 서울경기는 다시 영하로 내려갔다. 저녁무렵 기온이 영하 4도였다. 동계올림픽 기간이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겨울일 듯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대로, 아직 겨울인 김에 ‘어느 겨울의 어두운 창문‘을 제목으로 내건다. 기형도의 시다. 마지막 연.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나만 좋아하는 시는 아니어서 나희덕 시인의 ‘현대시 강의‘, <한 접시의 시>(창비)에도 이 시가 ‘은유‘의 좋은 사례로 꼽혔다. 내내 어느 영혼으로 호명되다가 시의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고드름‘이란 사실을 밝힌다는 게 시의 묘미라고 지적한다. 책은 나희덕 시인의 시집들과 함께 어제 주문해서 받은 것이다. 또 갑작스레 주문한 것은 그제 기형도문학관에 갔다가 영상자료에서 선후배 지인들의 회고 가운데 나 시인의 발언도 포함돼 있어서였다. 연대 문학회 후배였던 듯하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1989년, 신춘문예로 나희덕 시인은 등단했다. 기형도는 1985년 신춘문예로 등단.

나 시인은 기형도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의 선율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그런 감상은 다 비슷하구나 싶다. 실제로 기형도 시인은 릴케와 예이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 마디 더 보탠다. 기형도를 읽을 때 염두에 둘 만하다(내가 이 시에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시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계보를 그려봐도 좋겠다. 얼른 생각나는 시인은 윤동주와 김춘수 등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가 있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는데 문득 ˝기쁨을 숨긴 공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을 보고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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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신작 시집을 사러 지역서점(동네서점보다는 크고 대형서점보다는 작기에 지역서점이라 부르겠다)에 들렀지만 허탕이었다. 그래도 뜻밖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민음사)의 새 번역본.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가 새 영역본(피터 빈 역)에 근거해 옮긴 번역판이다. 그렇지만 피터 빈판은 이미 이종인 번역으로 나왔기에 처음은 아니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는(이 또한 예고는 돼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윤기본(열린책들)과 이종인본(연암서가)과 함께 김욱동본(민음사) 간의 3파전이 될 모양새다. 그 전망에 대해 적으려고 했더니 민음사판은 아직 알라딘에 입고돼 있지 않다. 특이한 일이지만 그렇다. 그래서 일단은 지역서점에 구입. 나중에 번역본들 간의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면 페이퍼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강의에서 다뤘고 그 대략은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에 정리해놓은 바 있다. 90분 강의분량을 간추린 것이라 개략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정도만을 원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더 자세한 카잔차키스론은 언젠가 다른 기회가 마련되면 시도해볼 참이다(카잔차키스 문학기행이라도 떠나게 된다면!).

카잔차키스에 대해서는 피터 빈의 두 권짜리 전기도 오래 전에 구해놓았다. 현재까지는 결정판 전기가 아닌가 싶다. 전집도 나와 있는 마당이니 이 정도 전기도 소개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적은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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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내리는비 2018-02-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서점에서 구입하신 책이 맨 아래 사진에 보이는 파란 책인가요? 그 책은 민음사 북클럽 회원(유료회원 가입시에 출간 예정책들 중에 몇 권 선택)들에게 책이 정식 출간되기 전에 제공되는 가제본(북클럽에디션) 책이에요. 옆에 있는 마르케스 책(조만간에 정식 출간예정이라고 하네요)도 그렇구요. 원래 판매가 안되는 책일텐데 신기하네요^^;;;;

로쟈 2018-02-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안 떠서 대신 가져온 거구요. 겉표지가 있습니다.~

시월에내리는비 2018-02-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민음사 홈페이지에도 새 책으로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서 착각했습니다.
민음사 블로그에는 조금 전에 신간 안내 글이 올라왔네요
세계문학전집 판형이 아닌게 조금 아쉽긴하네요~
바쁘실텐데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방에 강의를 떠나면서 가방에 앏은 책 하나를 강의책 외에 더 챙겨넣었는데 백상현의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에디투스)이다. 꺼내볼 시간이 없다가 저녁까지 먹고 귀가길 전철에서 펴든다. 막간 독서용.

저자는 라캉(저자는 ‘라깡‘이라고 표기한다) 정신분석 전공으로 최근 들어 가장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는 악령의...>도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데, 이번에 다룬 주제는 철학의 기원으로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 철학적 욕망의 기원에 관하여‘가 부제. 주된 분석 텍스트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그쯤 되면 제목 ‘악령‘이 ‘다이몬‘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이라는 정신병에 관하여‘는 프롤로그의 제목인데, 얼핏 철학을 단죄하려는 듯이 보이지만 의도는 그렇지 않다. ˝철학은 하나의 욕망이고, 그것은 변화하려는 욕망이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의 권력에 대항하는 고함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게 저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다. 이렇게 다시 요약한다.

˝철학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반항하는 욕망이고, 기성세대의 권력에 테크니컬한 방식으로 침을 뱉는 행동이고, 꼰대들의 담론에 욕설을 퍼붓는 일종의 하드코어 랩에 다름 아니라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배자들에게 했던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고, 그래서 사형당한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적고 전철에서 내렸다. 과연 저자의‘ 소크라테스 구하기‘ 내지 ‘철학 구제하기‘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그게 아니면 세번 죽이기?)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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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루의 지방 강의를 남겨놓고 있어서 이주의 일정도 마무리 단계다. 내주에는 설연휴가 있어서(연휴의 일거리가 따로 있지만) 강의는 평소의 절반만 진행하면 된다. 한숨 돌리는 셈이어서 마치 주말을 맞은 듯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잠시 뒤적여본다.

시리즈의 책들은 완간이 되어야 개운한데 이번주에는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쉬즈위안의 국가 3부작‘이 <한 유랑자의 세계>(이봄)가 나옴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저자 쉬즈위안은 1976년생으로 ˝사회비평가 겸 작가이자 인문책방 운영자˝라고 소개된다. 국내에는 ‘국가 3부작‘ 외에 <독재의 유혹>과 <저항자> 등이 더 출간돼 있다. 짧은 기간에 여러 권의 책을 나온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꽤 ‘핫한‘ 저자가 아닌가 싶다.

<유랑자의 세계>는 제목이 일러주듯 저자의 여행기다. 동남아와 인도를 포함해 러시아와 유럽까지 많은 곳은 주유한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는데 나로선 먼저 눈길이 가는 장이 러시아 기행이다(‘레닌의 그림자‘가 제목이다). 아무래도 가장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기 때문인데 저자가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에서 읽었다는 문구를 동행하는 기분으로 찾아보았다. 이런 대목이다.

˝쿠르스카야 지하철역의 아치형 천장에서 나는 새롭게 등장한 스탈린에 대한 찬사를 발견했다. ˝스탈린은 우리에게 사람에 대한 충성을 가르쳤고 노동정신과 영웅주의를 고취시켰다.˝ 찬사는 부조 형식으로 역사 입구 홀의 천장에 돌출되게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아래 사진의 문구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벌것 아니지만 문득 모스크바의 지하철 역사가 그리워졌다. 특별한 사연은 없지만 모스크바에 체류하던 시절에 자주 이용하면서 친숙하게 된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때묻은 모든 것이 향수의 대상이 되곤 하잖은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타고서 모스크바강의 철교를 다시 건너가보고 싶다. 객차가 다리를 건널 때 울리는 소리를 다시금 들어보고 싶다. 그런 사소한 기계음도 기억의 시간 속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여차하면 모스크바에 다시 가볼까도 싶다. ‘유랑자의 세계‘에 전염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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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2-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사진이 지하철 역의 모습이라는게 놀랍네요.

로쟈 2018-02-09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이 그런 건 아니지만 화려하고 과시적인 역사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