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개강한 강의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봄학기다. 봄기운이 완연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곧 앞다투어 봄꽃들이 피리라. 새봄에 읽을 만한 책들을 고르기로 한다. 날수로는 특별하지 않지만, 뭔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하긴 2월보다는 날수가 많다).



1. 문학예술


먼저 문학쪽으로는 새로 시작된 시집 시리즈를 고른다. '현대문학 판 시리즈 시인선'의 첫 여섯 권이 한꺼번에 나왔기에. 박상순의 <밤이, 밤이, 밤이>부터 양안다의 <작은 미래의 책>까지다. 박상순, 이장욱처럼 구면의 시인부터 유계영, 양안다처럼 초면의 시인까지 망라돼 있다. 1955년에 창간된 잡지 '현대문학'이 펴내는 최초의 시인선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데, 얼마나 이어질지가 성패를 말해줄 것이다. 



소설로는 <운명과 분노>(문학동네, 2017)의 작가 로런 그로프의 또다른 대표작 <아르카디아>(문학동네, 2018)과 이미 다룬 바 있는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의 <언어의 7번째 기능>(영림카디널, 2018)을 고른다. 분량이 좀 되는군.



2. 인문학  


역사 쪽으로는 루스 디프리스의 <문명과 식량>(눌와, 2018), 조엘 모키르의 <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2018)를 고른다.<성장의 문화>는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이 부제인데, "서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서유럽과 아시아(특히 중국)의 경제가 17~18세기 이후 어떻게 그렇게 크게 벌어졌을까 하는 물음에 답하는 또 하나의 연구서"다. 뤼차오의 <동방제국의 수도>(글항아리, 2018)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서양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어왔는지 살펴본 책이다. 



더불어,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와 관련한 책들도 고른다. 한상원의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디투스, 2018)이 나온 게 계기인데,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이 부제다. 지난봄에 나온 브루노 아르파이아의 <역사의 천사>(오월의봄, 2017), 미카엘 뢰비의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난장, 2013) 두 권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3. 사회과학  


한겨레신문 정의길 기자의 <지정학의 포로들>(한겨레출판, 2018)은 "국내 저서로는 최초로 '지정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큰 흐름을 담대하게 조망한다." 국내 저서로는 처음이라는데, 그간에 번역서는 지정학 관련서가 드물지 않게 나왔었다. 최근에 나온 다카하시 요이치의 <전쟁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지정학>(시그마북스,2018)도 그런 부류의 책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2012년작 <지리의 복수>(미지북스, 2017)도 "지리는 세계 각국에 어떤 운명을 부여하는가?"가 부제인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의 신작 <유엔을 말하다>(갈라파고스, 2018)는 무기려한 유엔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고, 인도 출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의 <세상은 여전히 불평등하다>(21세기북스, 2018)는 대표 에세이 모음이다(제목은 역시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떠올리게 한다). 우석훈의 신작 <국가의 사기>(김영사, 2018)는 제목 그대로다. "광고, 주식, 다단계, 신용등급, 공무원, 이념과 클랜, 모피아, 토건족, 물 브라더스, 원전 마피아, 박사들의 클랜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자원외교, 4대강, 분양제, 버스 준공영제, 도시재생… 국가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친다."



4. 과학


과학 분야에서는 먼저 이론 쪽의 책으로 스티븐 이얼리의 <과학학이란 무엇인가>(그린비, 2018)를 고른다. "저자는 사회의 온갖 부문을 타깃으로 삼는 사회학이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기술에 응당 돌아가야 할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과학을 사회학의 주요 주제로 적극 도입하고자 한다." 의도를 고려하면 '과학사회학 입문'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겨우 존재하는 것들'로서 입자와 원소 이야기. 캐빈 헤스케스의 <입자 동물원>(반니, 2017)과 에릭 셰리의 <일곱 원소 이야기>(궁리, 2018)가 업데이트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따로 흥미를 끄는 주제로 지식과 알고리즘의 문제를 다룬 책들. 스티븐 슬로먼 등의 <지식의 착각>(세종서적, 2018)은 가령 이런 주장을 펼친다. "저자들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뇌의 독립적인 작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뇌는 몸과 세계가 연결되어 지적인 활동을 할 때 함께 움직이는 인지 체계의 일부일 뿐이다. 한마디로 마음은 뇌에 없다. 마음은 뇌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정보를 처리한다. 마음은 몸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깃든 지식에 의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가진 정보에 기대어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영국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 톰 스탠디지의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바다출판사, 2018)은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짧고 굵은 글로벌 이슈를 다뤘다." '세상의 온갖 (연결된) 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브라이언 크리스천과 톱 그리피스의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청림출판, 2018)는 ‘컴퓨터과학의 알고리즘’을 우리의 선택 문제에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다. '일상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생각의 혁명'이 부제다.

 


5. 페미니즘


이달에는 책읽기/글쓰기 카테고리 대신에 페미니즘 관련서를 고른다(워낙 많이 나오고 있어서다. 어쩌면 매달 고정 카테고리로 삼아야 할는지도).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오월의봄, 2018)는 "강간의 역사와 우리 시대의 강간 문화를 대서특필하며 출간 직후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페미니즘 고전"이다. 캐롤 페이트먼의 <여자들의 무질서>(도서출판b, 2018)는 반어적인 제목을 통해서 정치이론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검토한다.여성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의 저자 록산 게이의 <헝거>(사이행성, 2018)는 자전적 에세이다."어린 시절 겪은 끔찍한 폭력과, 그로 인해 몸에 새겨진 상처의 기록들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18. 03.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고른다. 현재는 민음사판 선집이 이 가장 많이 읽히는 듯한데, 소설전집이었던 <우울과 몽상>(하늘연못)은 절판된 상태다. 강의차 전집을 구하려 하니(비록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우울과 몽상>은 갖고 있는 책이어서 다시 구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코너스톤판(전5권)이 유일한 듯싶다. 물론 포 전집을 구성하려면 시전집과 비평에세이전집이 추가되어야 할 테지만. 


 

포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다 보니, 전집을 읽기에는 부담스럽고 선집만 읽기에는 뭔가 찜찜한 면이 있다(영어판도 선집과 전집을 따로 구한 까닭이다). 고딕 전통과의 관계가 이번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인데, 이달에는 포 소설의 문학사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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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주말마다 반복하는 일은 필요한 책을 찾다가 포기하는 것이다(가끔 찾을 때도 있다). 내주 강의할 모리 오가이의 책을 찾다가(<아베 일족>도 방에서 못 찾아서 어제 다시 구입했건만 다른 책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서 들고온 책이 박정대의 시집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다. 재작년 가을에 나왔군.

잠시 펼쳐보았다가 덮어둔 기억이 있는데, 다시 펼쳐보아도 마찬가지다. 이 시인의 시집은 <단편들>(세계사)이 가장 좋았다. 1997년에 펴낸 첫 시집. 1990년에 등단했으니 첫 시집이 더디 나온 셈이었다. 32살 때의 첫 시집이면 많이 늦은 건 아니지만. 첫 시집에 대한 긍정적 인상 때문에 이후에 나온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아무르 기타> 등의 시집도 구해본 기억이 있다. 아마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 건 음악에 대한 취향 때문인 듯.

프로필에서 시인은 ˝현재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중˝이라고 적는다. 그럼 많은 게 이해가 된다. 이 시집의 온갖 자기도취적 말들이. 횡설수설이. 흥얼거림이. ‘전직 천사‘라는 자기소개가. 그리고 이런 고백이.

˝사실 나는 시를 쓸 때 어떤 구절을 쓰는지 신경쓰지 않을 때가 많다, 계속 음악만 듣는다, 가령 내가 좋은 시인이라면 분명히 괜찮은 구절들을 제대로 써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시를 그 음악에 매치시키는 데 더 집중한다.˝

인용한 대목을 포함한 50여 쪽의 기분기술(‘자동기술‘에 견주어)에 ‘의기양양‘이란 제목을 붙인 건 정확해 보인다. 그의 시는(시라고 한다면) 의기양양한 자기도취의 시이다(해설도 자신이 쓴다).

개인적인 유감은 젊은 시절의 빛나는 시들을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점. ˝시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씌어졌고 그것도 영원히 씌어졌으며 나는 그저 시를 발견할 뿐이다˝라는 진술에 기대면 나는 그가 ‘물질적 황홀‘들(<단편들>)을 발견하던 때가 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황홀 말이다(시집을 지금 갖고 있지 않아서 정확한 인용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간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 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시선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위장처럼 나부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만이 죽음을 피해갔다, 음습한
관에서 부활하듯 나는 외출한다, 가로수들이 읽고 있는 거리
거리는 간판들의 무표정과 행인들의 그림자를 안고
도시의 페이지 속에 서표처럼 꽂혀 있다, 피가 마르는 것 같다
봄볕에 불탄다, 유곽과 성당을 지나온 나의 긴 그림자
나는 읽혀지지 않는 한 권의 책과 싸우듯
그렇게 걸으며, 이 거리가 나에게 전해주는 불임의 페이지를
피가 마르듯 그렇게 외로운 가슴의 강들을 스쳐지나며
씨팔, 모든 강들 흘러가 아우성치며 만날
바다를 생각하였다 죽음보다도 깊을
바다의 사랑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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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에 수원평생학습관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서평 강의를 진행한다. 3월 16일과 4월 20일 저녁 7시에 진행하며 주제는 각각 ‘서평이란 무엇인가‘와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다. 서평 백일장도 동시에 진행하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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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문예출판사)는 제목이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다. 원제 ‘오늘날의 문제들에 답하는 인류학‘이 번역본의 부제가 되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에 대해 인류학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1986년 일본에서 현대 인류학의 거장 레비-스트로스가 했던 세 차례의 강연을 담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는 이 간단하지만 거대한 질문 앞에 제출한 답변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인터집도 나와 있고 그게 입문서로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강의록 역시 입문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 무엇을 위한 입문인가? 아무래도 그의 주저들에 대한 입문서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는 불만이 없지 않다.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이 국내에 많이 소개된 편임에도 몇 개의 이가 빠져 있기 때문.

간추리면 세 종이다. 먼저 박사학위논문이면서 구조인류학을 시연해보인 <친족의 기본구조>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그리고 핵심논문들을 묶은 <구조인류학>(전2권)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 1권만이 종로서적에서 나왔다가 오래 전에 절판된 상태다. 그리고 전4권으로 이루어진 대저 <신화학>의 절반이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1,2권만 나온 상태다). 예고는 되어 있지만 기약은 아직 없다.

이런 책들이 마저 소개되어야 한국어 레비스트로스도 버젓한 규모를 갖게 될 터이다. 그런 날이 조만간 올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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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봄학기를 앞두고 망중한 같은 (강의)휴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막상 내주의 강의자료들을 만들려고 하니 이삼일의 여유도 짧게 느껴진다. 해야 할 일의 최소한이건만. 무겁거나 복잡한 책(‘복닥한 책‘이라고 타이핑했다)을 잠시 제쳐놓고 손이 닿는 대로 집은 책이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스윙밴드)다.

중앙일보 이영희 기자의 에세이집. 이름이 낯익어서 확인해보니 연락처에 이름이 있고 안면은 없지만 몇번 통화한 적이 있다. 문화부에서 출판담당 기자였을 때였나 보다. 책의 서두에서 출판담당 기자의 하루 얘기가 나오니 친숙하게 잘 읽힌다. 지난 2015년 알라딘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된 <어쩌다 어른>이 저자의 첫 책이었다는 걸 프로필을 보고서야 알았다. 어쩌다 지나친 것인지.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싶다‘는 첫 장의 제목이다. 베스트셀러 저자는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라고 한 수 배운다. 그렇게 몇장 넘기다가 적는 페이퍼다. 뒷북으로 알게 된 저자이니 널리 알린다는 건 말이 안 되고, 편안한 금요일 저녁시간에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을 뿐이다. 추천사를 쓴 MBC 김민식 PD는 ˝자고로 사람을 웃기는 데 자학개그만한 게 없다˝고 했다. 아마 이 책의 갈래가 (자학)개그집인 모양이다.

한데 저자의 일상을 자발적 생중계로 들여다보게 하는 터라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이런 게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로군. 지금 저자가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를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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