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초기작의 하나인 <갱부>(1908)를 강의에서 읽었다. 1907년 아사히 신문의 전속작가가 되어 연재한 작품들 가운데 두번째 장편소설로 같은 해 연재한 <산시로>의 전작이다. 전기 3부작의 첫 작품으로 <산시로>가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보여준다면 <갱부>는 그 전단계의 마지막 리허설 같은 작품이다. 더불어 정조는 다르지만 <도련님>(1906)과 묶을 수 있는 또다른 ‘도련님 소설‘이기도 하다.

<갱부>의 여러 흥미점 가운데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미친 영향이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세키 소설이 <갱부>인데 이는 작가 하루키의 선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가출한 10대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나이 차이는 나지만) 공통적이고 하루키도 그 점을 고려했을 거라고 보이지만 나로선 더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갱부>가 <해변의 카프카>뿐 아니라 하루키 문학 전체의 모델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갱부>의 서사는 곧장 하루키 문학을 이해하는 코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영어판 <갱부>에 붙인 하루키의 서문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더 자세한 건 따로 다뤄야 하지만, 두 작가를 비교한 시바타 쇼지의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봄)에도 <갱부>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어서 단서만 적어놓는다. 소세키에 관한 평전이나 기본 연구서(에토 준과 가라타니 고진 등의 책을 염두에 두고 있다)도 번역돼 나오면 좋겠는데 언제나 가능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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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한국현대시사 관련서들을 읽다가(주로 1920년대 시에 대한 장들을 읽었다) 공초 오상순의 시집을 주문했다. 김소월과 한용운 사이에 수주 변영로와 공초 오상순이라는 ‘기인‘이 있었다는 것인데 오상순의 시로 기억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골초여서(공초라는 호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꽁초‘라고 불렸다는 오상순의 대표작이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이다.

1920년대 초는 한국시사에서 동인지의 시대이고 낭만주의가 풍미하던 시대다. 김억과 황석우, 그리고 이상화와 오상순 등이 소월과 만해의 주변으로 떠올릴 수 있는 시인들이다(널리 공인된 대로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이 1920년대 시의 최대 성과다).

나이를 먹을수록 독서 범위가 갈수록 넓어져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더 미룰 수 없다는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청춘의 독서와 달리 중년의 독서는 ‘다음에 읽어보지‘라고 쉽게 기약할 수 잆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중년의 태도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독서할 시간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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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목의 책이 부제와 표지가 바뀌어 재출간되었다.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의 <엄마됨을 후회함>(반니)이다. 2016년에는 ‘모성애 논란과 출산 결정권에 대한 논쟁의 문을 열다‘가 부제였는데(논란과 논쟁을 제목에 넣은 게 패착?) 이번에는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가 부제다. 더 많은 독자층을 겨냥한 재설정이라고 봐야겠다. 제목과 부제가 대충 내용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엄마가 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엄마들은 분명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엄마가 된 것은 후회한다’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조사대상에 포함된 25~75세의 이스라엘 여성 23명은 “만일 지금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엄마가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 “아니요”라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엄마로서의 삶에 후회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규칙과 주변의 압박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만한 언어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을 뿐이다. 내면 깊숙이에서는 심지어 엄마가 된 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엄마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이스라엘 여성 23명의 설문조사에 근거하고 있어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결론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당장 같은 조사를 동시대 한국 여성들에게 한다면 ‘엄마가 된 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상당이 줄지 않을까(내가 속내를 모르는 것일까?). 짐작에 엄마가 되는 일도 가치가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선택도 해보고 싶다 정도이지 않을까.

평균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됨을 후회함‘에 공감할 독자도 꽤 될지 모른다. 책에 대학 반응이 궁금한데, 책을 미리 읽은 <엄마의 독서>의 저자 정아은 씨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된 이후 내가 느꼈던 답답함의 이유를, 아이들과 있을 때 숨이 막히고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아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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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레닌 전집1‘이라는 품번이다. 60번대 전후의 책들이 먼저 나와서 전집이 거꾸로 나오는 건가, 대체 완간은 되는 건가 궁금했는데 1권이 출간돼 의문이 풀렸다. 이제 한 60권 나오면 된다?! <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는 처음 들어보는데, 소개를 보니 국내 초역이다. 게다가 레닌이 23살 때 썼다니 풋풋하기까지 하다.

˝레닌 전집 1권.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저작 중 가장 일찍 씌어진 것으로, 국내에는 처음 번역 소개되는 책이다. 23세의 청년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으로, 레닌은 이 책을 통해 나로디즘(인민주의/민중주의)과 단절하고 혁명가로서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농촌의 변화와 농민 문제를 경제적 측면에서 살핀 「농민 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과 러시아의 초기 자본주의 발전에 대해 고찰한 「이른바 시장 문제에 관하여」가 수록되어 있다.˝

아무려나 첫단추에 해당하는 책도 나왔으니 ‘레닌 전집‘이라는 ‘무(모)한도전‘이 언젠가 종착지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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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먼저,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칼럼집이 나왔다. <위대한 봄을 만났다>(교유서가, 2018). <민란의 시대>(한겨레출판, 2017)에 뒤이은 책으로 제목만 연결해도 한국의 근현대사가 된다.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항거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경찰들은 이들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았다. 시위대에 있었던 한 문학청년은 민족운동과 민중항쟁을 연구하고 이를 쉽게 풀어 대중에게 알리는 재야사학자가 되었고, 나이 쉰이 넘은 87년 6월에도 거리에 나와 전경들에게 "할아버지는 빨리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경무대 앞 총알을 빗겨 맞았던 이 문학청년은 어느덧 여든이 넘었고,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 책은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거리에서 느낀 역사학자 이이화의 가슴 벅찬 감격과 감회의 기록이자, 민중의 변혁운동 및 인권운동의 역사, 그리고 겨레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역사기행 보고서다."

 

1960년의 봄에서 2017년의 봄까지, 아직 갈길이 멀지만 위대한 봄으로의 여정으로 이제 기록해도 좋겠다. 당장은 MB구속과 적폐청산.

 

 

 

올 한해 실험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월간 정여울'이 어느새 셋째 권에 이르렀다. 제목은 의성어 시리즈인데, <똑똑>과 <콜록콜록>에 이어서 <까르륵까르륵>(천년의상상, 2018). 부제는 '가장 순수한 것들의 찬란한 웃음소리'다.

 

"<까르륵까르륵>에서 정여울은 처음에는 '까르륵까르륵'이라는 사랑스럽고 명랑한 의성어로 한 권의 책을 써내는 일이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사는 게 매일매일 기쁘고 행복하다"는 조카의 말에서, 본능적으로 놀이의 대상을 찾고 즐거움에 빠져드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도 어른이 되며 억눌러왔던 해맑은 순수가 내재해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동안 드러낼 수 없던 외로움과 고통에 공감하며 사람들을 위로해왔던 작가는, <까르륵까르륵>에서 독자의 입가에 미소를 피어오르게 할 이야기들을 꽉 채워 다른 빛깔의 편안함과 싱그러움을 선물한다."

 

이제 1/4 지점을 통과한 셈인데, 한해의 정산서가 어떻게 나올지 벌써 궁금하다.

 

 

 

지난 수년 간 번역비평과 시비평을 가장 정력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조재룡 교수의 시비평서가 추가되었다. <의미의 자리>(민음사, 2018). 저자의 네번째 비평집이 되는데, 연차로는 중견 비평가다.

 

"2003년 '비평'을 통해 문학 평론가 활동을 시작한 조재룡은 지금 한국 시단에서 가장 활발한 현장 비평가로 꼽힌다. 이번 비평집에서 조재룡은 '의미'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시 한 편 한 편을 독해해 나간다. 기존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는 시를 읽으며, 형식의 반대말로서의 의미가 아닌 진정한 의미를 자리를 찾아나서는 긴 여정이 담겨 있다. 총 여섯 개의 부, 서른 편의 글로 구성된 <의미의 자리>는 조재룡이 얼마나 성실한 독자이자 비평가인지를 증명한다. 1부에서는 시의 이론에 대해 탐구한 글을 묶었다. 짧은 서정시와 긴 산문시의 차이, 운문과 산문의 이분법, 구두점의 운용 등에 대한 글들은 그간 시를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의구심을 품었을 단상을 연구자로서 명확하고 유려한 사유로 정리했다."

 

성실하면서 집요한(그의 물음은 정말 '물고 놓지 않음'의 준말이다) 저자의 바지런한 비평 덕분에 한국시가 좀더 진지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18.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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