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만화가, 사회학자, 불문학자 3인이다. 먼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20권) 완간으로 '역사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가 되었다는 시사만화가 박시백의 신작이 나왔다.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다룬 < 35년>(비아북)이다. 첫 세 권이 나왔는데, 5년단위로 끊어서 한권씩 나온다면 앞으로 네 권이 더 남았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집필이 강제로 멈춰버린 시기 이후의 역사에 주목했다. 식민지의 삶이라는 오욕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원형의 시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생생히 복원한다. 단순히 박제된 정보를 전시하고 나열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 호흡하는 소통으로서의 역사. 이처럼 원형으로서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곧 ‘왜 역사를 배우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가닿는다."


만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35년>은 서사를 뒷받침하는 정보가 탄탄하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연휴에 완독해보려고 꼽았다.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일기>(문학동네)가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사회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느닷없이 파리로 ‘정신적 망명’을 떠나 생활과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 분투한 날들의 일기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파리에 프로방스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펴낸 저자이기에 <파리일기>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쯤 되면 홍세화가 그랬듯이 정수복도 자신만의 파리를 만들어냈다고 해야겠다.   



한권 덧붙이자면, 아내인 심리학자 장미란 박사도 '파리지엔느의 내면 읽기'란 부제의 <파리의 여자들>(문학동네)을 펴냈다. 부부가 나란히 책을 낸 것도 드문 사례로 여겨진다."쉰 살의 나이에 파리에서 여성의 삶에 작용하는 여러 사회심리학적 요인들에 관해 연구해 박사학위를 딴 심리학자 장미란이 첫번째 책. 장미란은 그간 파리에서의 걷기와 인문학적 사색과 성찰에 관한 책들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회학자 정수복의 아내다. 그러나 이 책을 쓰면서 그녀는 누구의 아내도, 딸도, 엄마도, 며느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수많은 속박과 편견, 여성 혐오로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탈출해, 당당하고 주체적인 파리의 여성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내밀한 대화를 나눈다." 프랑스 내부에서 본 프랑스 여자들의 이야기로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흐름출판)와 비교해봐도 좋겠다.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불문학자 이재룡 교수의 <소설, 때때로 맑음2>(현대문학)를 펴냈다. <소설, 때때로 맑음1>을 펴낸 지 3년만이다. 나로선 프랑스문학의 최신 동향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최신작 프랑스 소설들은 모두 동시대 프랑스 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문제작들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들이다. 프랑스 현지에서의 화제성만큼 대중성까지 겸비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생애 첫 소설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신예부터 이름만으로도 문단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까지, 이 책이 테마로 삼은 작품의 수만 해도 40여 편(국내 미번역 신작 포함), 상호 텍스트성으로 추려져 언급되는 작품만 해도 80여 편에 달한다. 저자는 예리한 변별성으로 작품을 선별하는 통찰력을 발휘한다."


욕심으로는 각 언어권 별로 문학의 최신 동향을 일별해주는 이재룡 교수와 같은 '문학 통신원'이 있었으면 싶다. 물론 이런 책에 대한 수요가 있다면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책이다. 수요를 좀 부풀려야 할까...


18.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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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라진 책들‘ 카테고리의 페이퍼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현대문학사에서 나온 <김춘수 시전집>과 <김춘수 시론전집>이 절판되고 없다. 나는 문장사에서 나온 전집을 갖고 있어서 따로 구입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강의에서 다루려면 전집도 갈아타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김수영 전집‘이 아직 건재한 것에 견주면 ‘김춘수 전집‘의 절판은 뭔가 뜻하는 바가 있는 것인지.

전집은 아니더라도 김춘수 시선집은 여러 종 나와있기에 덜 아쉬울 수 있지만 시인이 상당히 공을 들인 시론집의 절판은 문학도들에게 아쉬운 일이다(학부시절에 거의 읽은 기억이 있다). 분량은 적은 편이지만 개성이 강한 김수영의 참여시론과 함께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은 한국 현대시론의 간판이다. 시론도 앤솔로지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니 만큼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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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뇌‘로서 성능이 좋은 편이라고 느끼지만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하는 것이다(중요한 경기에 몸값 못하고 결장하는 운동선수 같다). 오늘도 오전에 고작 2시간 남짓 책을 읽고는 방전돼 버렸다(이걸 충전하느라 오후에 2시간 낮잠을 자고). 읽어야 할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가는데 이렇게 약질의 뇌를 가지고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체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책이 가슴 높이까지 둘러싼(의자에 앉아 있으면 키를 넘는다) 서재에서 쾌적한 기분으로 책을 읽기란 무망한 일이다. 책 한권 펴놓을 공간도 없으니. 독서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자가진단은 그러한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럴 때는 러시아의 부조리 작가 다닐 하름스를 떠올리곤 한다. 엄청난 창작 역량을 느끼지만 정작 허기져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작가(하지만 쓰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작가). 어렵사리 나온 한국어판은 절판된 지 오래 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작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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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만 보고 저자는 몰라도 역자는 맞힐 수 있었다. 음악과 과학 분야의 전담번역자 장호연 씨다. 앞서 번역한 책들 가운데 두 권 이상은 읽어본 것 같다. 저자는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뮤진트리)을 통해 소개된 존 파월. 작곡과 물리학을 전공했다는 이력이 특이하다. 곧 음악가이자 물리학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자격인지도.

˝전작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이 음향학, 음악물리학에 초점을 맞춰 음악의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설명한 입문서였다면, 이 책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음악미학의 주제들을 더 집중적으로 다룬다. 물리학자이자 음악가인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분명한 설명뿐 아니라 재치 있고 유쾌한 존 파웰만의 표현 방식이 돋보이는 책이다.˝

음악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음악의 진화나 음악심리학(‘치유의 음악‘ 같은 주제에는 관심이 있다) 등에는 관심이 있다. 시의 기원이나 효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다. 전문적일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쉽게 풀어낸 저자의 공력을 믿어보기로 한다. 미리 본 저자의 결론.

˝음악은 우울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여준다. 여러분이 다양한 질병을 이겨내고, 지루함을 견디고, 편안하게 쉬도록 돕고, 과제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하고, 그리움에서 기쁨에 이르는 감정들로 여러분 삶을 채워준다. 그러니 음악을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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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로 미뤄놓은 일이 늘 있지만 요즘은 아랑곳하지 않고 쉬는 편이다. 오전에는 잠을 보충하고 오후에는 머리를 식히고(오늘은 실제로 머리도 잘랐다. 우리말 ‘머리를 자르다‘는 중의적이어서 오역하기 싶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쉬면서 비우지 않으면 다시 채우지 못할 것이다.

어제 대구는 영상 11도까지 올라갔기에 봄날씨라고 여겼는데 오늘 서울경기는 다시 영하로 내려갔다. 저녁무렵 기온이 영하 4도였다. 동계올림픽 기간이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겨울일 듯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대로, 아직 겨울인 김에 ‘어느 겨울의 어두운 창문‘을 제목으로 내건다. 기형도의 시다. 마지막 연.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나만 좋아하는 시는 아니어서 나희덕 시인의 ‘현대시 강의‘, <한 접시의 시>(창비)에도 이 시가 ‘은유‘의 좋은 사례로 꼽혔다. 내내 어느 영혼으로 호명되다가 시의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고드름‘이란 사실을 밝힌다는 게 시의 묘미라고 지적한다. 책은 나희덕 시인의 시집들과 함께 어제 주문해서 받은 것이다. 또 갑작스레 주문한 것은 그제 기형도문학관에 갔다가 영상자료에서 선후배 지인들의 회고 가운데 나 시인의 발언도 포함돼 있어서였다. 연대 문학회 후배였던 듯하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1989년, 신춘문예로 나희덕 시인은 등단했다. 기형도는 1985년 신춘문예로 등단.

나 시인은 기형도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의 선율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그런 감상은 다 비슷하구나 싶다. 실제로 기형도 시인은 릴케와 예이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 마디 더 보탠다. 기형도를 읽을 때 염두에 둘 만하다(내가 이 시에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시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계보를 그려봐도 좋겠다. 얼른 생각나는 시인은 윤동주와 김춘수 등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가 있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는데 문득 ˝기쁨을 숨긴 공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을 보고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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