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미성년>(1875)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여 윌리엄 케인의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교유서가)를 펼쳐들었다. ‘작가 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에서 저자가 한 장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처럼 써라‘에 할애하고 있어서다. 결미에서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작가를 위한 작가다. 그의 작품이 현대의 취향에서는 다소 장황해 보일지 몰라도 작가들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 어떤 소설도 등장인물의 마음과 영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완벽할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그 방법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장면전환과 독자가 좋아할 만한 목소리 만드는 법, 강렬한 감정에 휘둘리는 인물의 외모와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유산이고 그가 현대작가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주로 기법 차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울 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저자가 겨냥하는 작가지망생이라면 숙지해볼 만하다. 하지만 관심사가 좀 다르기에 나는 강의에서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현재성과 함께 <미성년>이 장편소설 사이클에서 갖는 위상과 의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흔히 도스토예프스기의 ‘4대 장편소설‘이라고 하면 <죄와 벌>(1866)부터 <백치>(1869), <악령>(1872),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까지 <미성년>을 제외한 네 편을 가리킨다. <미성년>은 부수적인 작품으로 간주하는 셈인데, 실제로 오랫동안 다른 네 편에 비해서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무래도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워낙 강력한 작품이어서 상대적으로 묻힌 면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관점은 그의 다섯 장편이 일련의 연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죄와 벌>로부터 이어지는 그의 장편들은 앞선 작품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변주하면서 심화해나간다. <미성년> 역시 이 연결고리에 하나이기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아르카지 돌고루키의 1인칭 수기가 더 완성도 높은 3인칭 서사로 구현된 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인 것이다.

이러한 연쇄는 톨스토이의 장편들과도 대조가 된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세 장편을 나는 연속적으로 읽기 어렵다. 세 작품을 떠받치고 있는 작가적 세계관이 모두 다르기에, 이 장편들을 각기 다른 세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다(강의에서는 두 작가에게서 ‘깨달음‘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도 비교했는데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야 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번에 <미성년>을 다루면서 나대로 배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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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를 끝으로 올해의 강의가 일단락되었다. 대단한 역주는 아니었더라도 완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다소 무리한 면도 있었지만 많이 읽고 또 배운 한해였다(강사도 강의를 통해 배운다). 몇몇 결과는 내년에 책으로 묶여서 나올 것이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 다시금 복기하고 정리할 예정이다. 당장은 휴식.

내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겠다. 편안하게 읽느냐 긴박하게 읽느냐의 차이일 뿐. 무엇을 읽을지는 아직 미정인데(내키는 대로 읽자면 십수 권은 읽어야겠기에), 후보 가운데 하나는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의 <러시아 혁명 1917-1938>(사계절)이다. 올해 러시아혁명 관련서가 다수 출간됐으니 한권 더 추가된 게 대단한 뉴스는 아니다. 다만 저자가 다루는 시대 범위가 눈길을 끄는데 1938년 스탈린 공포정치기를 1917년 혁명의 일단락으로 보았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간결하고 통찰력 있으며 독창적인 분석˝이라는 평도 이런 구분설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비교해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1917-1929년까지를 러시아혁명사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는 1891-1991년을 ‘혁명의 러시아‘로 제시했다. 피츠패트릭의 구분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올랜도 파이지스 자신이 피츠패트릭의 책에 대해 추천평을 적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소비에트 체제에 가장 정통한 학자가 쓴 간결하고 절묘한 해석이다.˝ 간결해서도, 그리고 절묘해서도 일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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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구소련의 SF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대표작 <노변의 피크닉>(현대문학)이 번역돼 나온 것.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의 원작소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고전. 한국에 형제의 작품이 첫선을 보인 후 거의 30년 만의 사건이다. 이번 한국어판 <노변의 피크닉>은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다. 

1977년 맥밀런출판사 영역판에 실린 ‘시어도어 스터전 서문‘과 2012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어슐러 K. 르 귄 추천사‘, 그리고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노변의 피크닉‘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노변의 피크닉>은 외계 생명체나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을 다루는 ‘퍼스트 콘택트‘ 유의 소설에 속하지만, 통상 이들 작품이 평화적인 혹은 공격적인 외계의 접근 형태를 그리는 것과는 달리 그들로부터의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었다고 상정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이 작품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 이후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아무래도 영화 <스토커>를 먼저 보고 궁금해 한 원작인데, 이 영화에 대한 제프 다이어의 에세이 <조나> 때문에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 관련서들을 이번 겨울에 자세히 읽어볼 예정이라 더욱 반가운 출간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와 마찬가지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봐도 좋겠다. 그런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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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100주년 관련서도 이제 거의 다 나온 듯한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책이 이번주에 나왔다. 한국러시아문학회에서 엮은 <예술이 꿈꾼 러시아혁명>(한길사)이다. 국내 전공학자들의 책으로는 지난달에 나온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혁명 100년 1-2>(문학과지성사)와 세트로 묶을 만하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러시아문학회 소속 학자 20인이 쓴 책으로, 러시아혁명기를 산 작가와 시인, 건축가와 화가, 음악가 등의 삶과 창작세계를 풀어냈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발레 등 러시아혁명이 낳은 여러 이론과 유산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 이후 각 예술가나 예술사조, 이론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현대에는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까지 소개해 연속적인 맥락에서 러시아혁명기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학회에 가본 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권으로 갈무리해주어서(분량이 꽤 되는군) 아주 요긴하다 싶다. 어찌되었든 전공자들도 할 만큼 했고 독자로서도 안심이 된다. 겨울밤 독서용으로 장만해두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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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특히 러시아혁명사의 권위자인 로버스 서비스의 평전 <레닌>(교양인)이 다시 나왔다. 과거 시학사에서 나왔던 번역판이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나온 줄 알았더니 역자도 바뀌었다. 재번역본인 셈(서비스의 혁명가 삼부작 가운데 <스탈린>도 절판된 상태인데 이 또한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서비스는 레닌을 무결점의 사상가, 정치가, 인도주의자로 채색해 온 소련의 공식 해석을 반박한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레닌상, 즉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전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의견도 부정한다.

그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세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연이어 발표했다. 세 권의 전기 중 첫 번째 책인 <레닌>은 서비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련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레닌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완성한 이 레닌 전기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요컨대 레닌에 대한 소련의 공식적인 해석을 반박하는 수정주의적 해석을 제시한 평전으로 보면 되겠다. ‘또다른 레닌‘이라고 할까. 아무튼 러시아혁명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보게끔 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참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한 레닌의 삶과 사상을 되짚어보는 일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이전 번역판도 갖고 있는 터라(서비스의 삼부작은 원서로도 구비해놓았다) 비교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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