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읽어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 고전들이 출간된다. 최근에 나온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아카넷, 2013)도 그런 경우. 무려 다섯 권짜리다. 한국연구재단의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하나로 나온 것인데, 상업성을 고려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간단한 소개로는 "르네상스 후기의 대표적 서사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1474~1533)의 대표작이자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큰 인기를 끈 기사문학의 전통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절정기에 이른 르네상스의 시대정신과 인문주의적 사고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떤 의의가 있는가.

 

 

갈릴레이의 애독서로도 알려져 있으며, 특히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리는 16세기 영국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의 대표작으로 영시 사상 가장 긴 ‘선녀여왕’의 창작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르니에의 희곡 '브라다망트', 비발디의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초'와 헨델의 오페라 '오를란도'에도 소재가 되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영문학 사상 가장 긴 시 작품이라는 엔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도 엄두가 안 나긴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완역돼 있는데, 이 역시 학술명저번역 지원사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어떤 작품인가. 

영문학 사상 가장 길이가 긴 시 작품으로서 흥미진진한 줄거리, 이야기 구성의 웅대함, 당대의 정치·사회·종교를 망라하는 풍부한 알레고리와 무궁무진한 표현의 기교 등이 영문학도나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모험담과 서사시 독자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다. 작품은 선녀여왕(엘리자베스 여왕을 상징)을 섬기는 기사들의 모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권에는 해당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기사가 등장하여 특정한 덕목을 대변하고 있다.

아무튼 <광란의 오를란도>나 <선녀여왕>까지 독서목록에 넣는다면 고전 읽기의 '끝장'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광란의 오를란도>로 돌아오면, 어떤 이야기인가.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라고.

아서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함께 기사문학 3대 시리즈의 핵심 주인공인 오를란도의 이야기가 민중적인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데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고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열광적인 종교적 열망 속에서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전쟁은 하나의 모델이 필요했다. 오를란도와 여러 다른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적절하게 부합되었다. 작품의 핵심 주제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진영 사이의 전쟁, 오를란도의 안젤리카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한 광기에서 빚어지는 사건, 이슬람 진영의 기사 루지에로와 그리스도교 진영의 여인 브라다만테 사이의 사랑 이야기이다 

 

 

암튼 고전 독자와 오페라 애호가라면 반가워 할 만한 출간 소식이다...

 

14.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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