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있으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필요한 책을 못 찾을 때이다. 강의와 원고에 필요한 책을, 그것도 교재로 쓰거나 서평감으로 쓸 책을 못 찾을 경우 몸에서 열이 날 수밖에 없다(이건 물론 몸을 움직여서 그렇기도 하다). 방안 어느 구석엔가 있는 걸 못 찾으니 더더욱 답답할 밖에. 이미 임계치에 도달해 있기에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 그런 경우 보통 책을 다시 주문하곤 하지만 내일 강의할 책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잠시 열을 식히기 위해 책상머리에 다시 앉아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독일영화사를 다룬 수준 높은 연구서가 한 권 나왔길래 주저없이 '발견감'으로 분류한다. 안톤 캐스의 <히틀러에서 하이마트까지>(아카넷, 2013). 원저는 1989년에 나왔다. 부제는 '역사, 영화가 되어 돌아오다'. 어떤 책인가.

다섯 편의 독일 영화를 통해 히틀러와 히틀러 이후의 독일 역사에 관한 허구, 기억, 현재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책이다. 영화가 제2차 대전 이후 독일 역사의 자리에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과거에 어떻게 개입하고 해석하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서 독일의 영화사, 기억의 문화사, 그리고 역사에 대한 메타 비평을 하나로 녹여내어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또한, 독일의 문학과 영화, 역사에 관한 방대한 지식,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 참조하고 인용한 풍부한 지성사는 독자들에 훌륭한 지적 성찬을 제공한다.

 

 

책에서 다룬 영화들은 1980년대 초반 뉴저먼시네마의 다섯 작가가 만든 다섯 편이다.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한 편의 독일영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알렉산더 클루게의 <애국자>, 헬마 잔더스-브람스의 <독일, 창백한 어머니>, 에드가 라이츠의 <하이마트> 등이다. 내가 본 건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독일, 창백한 어머니>는 출시돼 있어 구해볼 수 있겠다. 독일 영화 가이드북으로는 <독일영화 20>(충남대출판부, 2010)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독일 영화 관련서로는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최경은의 <독일영화와 독일문화>(연세대출판부, 2008)도 입문서 격의 책. 조금 전문적일 수 있지만(영화가 많이 소개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볼프강 야콥센 등이 엮은 <독일영화사1,2>(이화여대출판부, 2009)도 참고할 만하다. 이제 보니 안톤 캐스는 이 책의 편자로도 참여하고 있다('안톤 케스'로 표기돼 있다). 189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다루고 있으니 두어 권은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톤 캐스는 프리츠 랑의 영화 <엠(m)>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영화들에 대한 연구서도 더 갖고 있다...

 

13.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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