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84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동녘, 2012)를 다루려다가 막판에 도나 디켄슨의 <인체 쇼핑>(소담출판사, 2012)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흥미로운 책이었다. 비록 급하게 쓰느라 리뷰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놓쳤지만. 아무튼 덕분에 애니 체니의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알마, 2007)도 구입했다. 시장사회와 인체 쇼핑의 문제는 나중에 따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주간경향(12. 07. 17) 인체를 사고 파는 시장사회

 

‘인체 쇼핑’이란 제목에서 미래의 불길한 전망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산이다. 영국의 의료윤리학자 도나 디켄슨이 고발하는 ‘살과 피로 돌아가는 경제’는 미래가 아닌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현실의 이야기다. 고발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러한 현실이 불가피하지 않으며 불가피한 것이 돼서도 안 된다는 데 맞춰져 있다. “인체 쇼핑은 저항할 수 있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저항 중이며,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계속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저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전해지는 것은 인체 쇼핑의 진행 속도와 규모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빨라지고 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사회화’의 많은 염려스런 사례를 접한 독자에게도 ‘인체 쇼핑 시장’의 현실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출생 이전부터 사망 후 시신 처리에 이르기까지 생의 전 시기에 걸쳐 인체조직이 일반 소비재처럼 팔리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데!

 

점점 영리추구의 대상이 돼가고 있는 인체조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난자다. 불임여성의 체외수정을 위한 난자를 구하려는 광고가 미국의 대학신문에는 정기적으로 실린다는데, 건강한 젊은 여성의 난자 가격은 평균 4만5000 달러, 최고 5만 달러까지다. 미국에서 2002년 한 해 동안 난자 기증자에게 지불된 돈이 3,70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고, 불임클리닉이 벌어들인 수입도 10억 달러를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 대신 인체조직과 유전물질을 채굴하는 제2의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저자가 꼬집을 정도다. 게다가 ‘비싼 난자’만 거래되는 것도 아니다. 체외수정이 아닌 체세포 핵이식 연구에서는 가난한 여성이나 유색인종 여성의 ‘값싼 난자’가 쓰인다. 난자에 대한 이런 수요를 부추기는 것은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큰돈이 걸린 국제적 경쟁”이다.

 

난자만큼이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건 시신이다. 저자도 참고하고 있는 애니 체니의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에는 아예 가격표까지 나와 있다. 가령 머리는 550-900달러, 몸통은 1,200-3,000달러, 해부용 시체 한 구는 4,000-5,000달러인 식이다. 시신의 공급자는 시체 안치소와 의과대학, 인체조직은행, 장례식장, 그리고 화장터 등인데, 시체 부위를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한 장례지도사는 시체 매매 규제 가능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규제하려면 아주 힘들 겁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선 어림없죠. 수입이 꽤 쏠쏠한 돈벌이거든요.” 난자를 얻기 위한 인신매매, 중국의 사형수 장기 매매도 물론 이 ‘쏠쏠한 돈벌이’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현실의 일부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가? 흥미롭게도 저자가 저항의 모범적인 사례로 드는 건 황우석 교수 사태 때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이 보여준 활동이다. 황 교수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여성민우회와 여러 시민단체가 구성한 생명공학감시연대는 그가 실험에 쓰인 난자를 어디서 구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과 관련한 불미스런 사실들도 폭로했다. 결국 실험에 쓰인 난자가 200개가 채 안 된다는 황 교수의 발표와 달리 실제로는 119명의 여성에게서 2,200여 개가 넘는 난자를 채취해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와 함께 저자는 유전자 특허 취득 현상을 과거 농지로 사용되던 공유지의 사유화(인클로저) 현상과 비교해서 볼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우리의 인체가 점점 여성화되는 현상, 곧 대상화되는 현상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그것은 우리 몸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가다듬게 만든다. “우리의 몸이 사물에 속한다면, 이때의 사물은 다른 사물들보다 좀더 엄격하고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메를로퐁티의 말이다.

12.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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