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학기가 일단락되어 후련하다는 페이퍼를 쓰다가 지웠다. 방심한 탓인지 곧잘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결막염에 덜미를 잡혀서 핑계삼아 쉬는 중이다. 아침에 적으려던 페이퍼를 적는 것 정도로만 마무리하기로.

다른 게 아니라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금색 공책>(창비)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탄생 100주년 기념판이라서 상기하게 되었는데 1919년생이다(지난 2013년 94세의 나이로 영면).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대표작으로 지목된 작품이어서 당시에도 품절상태였던 <황금노트북>(전3권)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분량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강의에서 다루려고 했는데 절판된 책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 레싱 강의에서는 <다섯째 아이>나 <풀잎은 노래한다> 등을 ‘대타‘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주저를 제쳐놓았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전 번역본(두 종이 있었다) 제목에 따라 <황금노트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금색 노트>로 바뀌어 아직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익숙해질 터이다(그래도 ‘공책‘이란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어떤 작품인가.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1962년에 출간되었지만 레싱 스스로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 태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썼다”고 밝힌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앞서 케이트 쇼팽의 <각성>(1899)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다루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금색 공책>의 출간도 환영할 일이다. 페미니즘 문학의 표준적인 저작들이 연이어 다시 나온 김에 내년에는 여성주의 문학 강의도 업그레이드 해서 진행해볼까 싶다. 레싱의 <마사퀘스트>(1952)는 봄학기 강의에서 읽을 예정인데 <금색 공책>을 연이어 읽어도 좋겠다.

올해 부커상 수상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금색 공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20세기 작가들의 러시모어산(미국 초대 대통령 4인이 조각된 바위산)이 있다면, 도리스 레싱은 그곳에 새겨질 가장 확실한 인물이다. 성 격차의 견고한 성이 무너지고, 여성들이 늘어난 자유와 선택 그리고 그에 따라 늘어난 도전에 직면했을 때 도리스 레싱이라는 이름이 그 중심에 있었다. 20대 초반에 만난 <금색 공책>의 주인공 애나 울프는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레싱의 책으로 이제 기대할 만한 것은 ‘마사 퀘스트‘ 시리즈다. 눈을 뜨고 있기가 불편해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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