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죽음의 빛
자네트 콜롱벨 지음 / 인간사랑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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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에 몇 자 적어둔 게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책을 완독하지 않았기에 리뷰랄 것도 없지만, 완독할 수 없는 이유는 대고 있으므로 정상은 참작될 수 있겠다...

책머리에 실린 들뢰즈의 말. "내가 사랑하는 한 저자에 관해서만 말한다는 내 이상은, 그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며, 그가 더 이상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사람들이 그와 동일시 되지 않도록 충분히 그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대단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아주 사적인 성격을 지닌 부분이어서 프랑스 지성사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푸코에 대한 번역 전기 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것이라면 디디에 에리봉의 것을 꼽겠다. 그리고 읽은 것은 1장 "불확실성과 유한성". 정독해야 할 만큼 무게 있는 내용도 아니고 정확한 번역도 아니어서 대충 훑어본다. 번역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먼저 "(...) 경기장 안에 나 혼자 있음을 알았을 때 다시금 푸코가 현재해 있었다."(51) '현재[現在]하다'와 '있다'를 나란히 병치시켜 놓는 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푸코가 곁에 있었다" 정도의 뜻이지 싶다.



그리고 <말과 사물>에 나오는 벨라스케즈의 그림 '시녀들(Les Menines)'를 '귀족의 딸들'(78)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 역자가 <말과 사물> 읽지 않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니 번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프랑스 철학 관련서들의 번역이 대체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 역자 선정과 교정 등에서 좀더 많은 주의가 기울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다음으로, 나에게 유의미한 부분. "어떤 말들은 생각할 수 없다. 시간성에 대하여 잘 몰랐던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란 말처럼. 각 시대는 여러 상이한 영역에서의 교응을 필요로 한다."(77) 이건 푸코와의 관련 없이도 흥미를 끄는 내용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삶'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리고 푸코의 말 인용. "생각하는 내가, 나의 사고의 내가 내가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려면, 또 나의 사고가 내가 아닌 어떤 것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90) 이건 <말과 사물>의 "코기토와 사고되지 않은 것(Le Cogito et l'impense)"에 나오는 부분이다.

또 푸코가 한 대담에서 한 말. "삶은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예술작품이어야 하며..." 이건 니체의 미학주의와 관련하여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앨런 맥길의 <극단의 예언자들>(새물결)에서 푸코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야겠다. 끝으로 재미있는 건 앙겔로플로스('안젤로포울로스'로 번역 돼 있다)의 영화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Le Pas suspendu de la cigogne)>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113)

책은 반납했다. 너무도 프랑스적인 책이다. 푸코를 읽는 일도 버겁지만 그걸 '프랑스적'으로 읽을 만한 여유를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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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6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놔키스트 2007-01-0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엉망인 건 잘 알겠습니다만.. '프랑스적'이라는 의미는 썩 잘 모르겠군요..^^

로쟈 2007-01-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짤막하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서두의 '여정과 추억' 같은 대목이 제겐 좀 이질적이었습니다. 기억에 그 나라 사람들의 회고담 같은 식이라. '그러니까 제가 프랑스적이라고 한 건 저자가 푸코를 다루는 시각을 가리킵니다. 푸코의 생각 자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