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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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벽돌이 아니오.

-이게 벽돌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는 거죠?

-그건 사기요. 그것도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악랄한.

그제야 금복은 벽돌을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시멘트로 찍어낸 벽돌이었다.

-이건 시멘트 벽돌인데 왜 사기라는 거죠?

-그건 집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기라는 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싸다는 이유로 모두 그걸로 집을 짓고 있소.

-다들 멀쩡하게 이걸로 집을 짓는데 왜 당신만 문제라는 거죠?

-남이야 벽돌로 집을 짓든 나무로 집을 짓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문제는 바로 그 벽돌 때문에 우리가   만든 벽돌이 안 팔리고 있다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론 시멘트 벽돌을 만들어서 팔면 되겠군요.

  금복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文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보고 사기꾼이 되란 말이오? (pp 280-281)


  최고의 벽돌에 주어야 할 상을 시멘트 블록에 주어 놓고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문학동네 출판사에 애도를 표한다. <시멘트 블록 사기 사건>에 멋지게 걸려든 심사위원들 - 왜 이 소설엔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는지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그런 성찰만 추가하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이나 <양철북>이 되겠다는 황당한 썰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풀어놓은 소설가 임철우, 사기의 냄새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 본질까지 알아냈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쳐,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비난의 뜻으로 한 "전통적인 소설의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별로 빚진 게 없는"이라는 말이 자극적인 광고 카피로 변해 버린 꼴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소설가 은희경, 무능한 남성들을 압도하는 여성성의 구현이라는 자신만의 생각에 스스로 도취되어 짐짓 심각하게 이름붙인 “소설, 그 너머”에  TV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는 상식조차 간과하고 만 평론가 신수정 - 에게는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으로 길러주고 직업과 사회적 지위와 돈과 명예를 안겨준 소설이라는 어머니의 등에 작살을 꽂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해서는, 암상이셨던 할머니의 현현이자 대학 대신 군대에서 글쓰기를 배운 야전군에 영화라는 인기 있는 미녀를 따르는 구애자인 동시에 소박데기 계집애 소설이 짝사랑하는 상대이며, 예술가들의 카페에 섞여든 입심 좋은 약장수에 주제도 구성도 없는 인쇄형 구비문학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거머쥔 사기꾼인 저자에 대해서는, 아, 나는 도저히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가 없다.

  그의 시멘트 블록이 내가 사랑하는 소설의 세계(그것은 근대의 산물로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탐구의 성과이며 치열한 윤리적 고민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쌓아올려진 기념탑이다. 그것은 마치 춘희가 만든 최고의 벽돌과도 같은 세계이다. “한 눈에 봐도 단단한 품격이 엿보이고 밝음의 정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위엄이 있어 보이되 결코 겁주지 않는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고 무질서하지도 정형적이지도 않은, 흙으로 만든 보석과도 같은(p396)” 벽돌 말이다.)를 위협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매력 앞에서 나는 저항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도 말솜씨가 좋았지만 이즈음해서는 그 솜씨가 더욱 늘어 어찌나 조리 있고 구변이 좋던지 이야기 자락마다 한숨이요, 눈물이요, 박장대소였다.(p140)”는 약장수의 묘사는 그대로 저자 자신에게 되돌려진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도 그 사기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금복을 배신하고 떠난 약장수가 낯선 도시의 지식인 집단에게 인정을 받아가는 과정을 보자.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 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중략)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떠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pp 342-343)


  저자가 영화 카페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소설 카페에 풀어놓았을 때 그 바닥의 인물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은 없다. 평론가 류보선이 쓴 수상작가 인터뷰는 우습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저자의 소박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평론가가 일일이 흥분하며 덧붙이는 장황한 해설이라니!

  그러나, 과연 내게 인터뷰를 쓴 평론가의 <오버>를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욕망을 좇는 인간들의 그로테스크한 파멸에서 내가 읽어낸 문명비판적 메시지는 “등장인물이 모두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은 저도 심사에 참여한 임철우 선생님이 처음 지적을 하셔서 알게 된 사실인데.”하는 저자의 순진한 웃음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렸고, 마고할미와 선문대할망의 거신족 여신 전설과 춘희를 연결지은 모처럼의 신화적 해석은 어느 겨울날 저자에게 길을 물은 뚱뚱하고 지저분한 가출여고생 얘기에 그냥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므로, 알라딘 리뷰를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주는 별 한 개는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헛간 속의 코끼리처럼 쓸쓸하게 죽어가는 소설의 무덤에 놓는 개망초 꽃이기도 하다. 한 영화감독 지망생이 소설계에서 일으킨 이 소동은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 소설이 영화에게 당한 확인사살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존재하되 플롯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시대, 불타버린 양피지와 책의 폐허 위로 영상으로 재무장한 구비문학이 육중한 행진을 시작하는 시대에, 진흙벽돌과 함께 죽어간 사내의 이름이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한자로 쓰여진 文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금복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때마침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文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文에 대해 한마디 인물평을 했다.

-그는 정말이지, 까다로운 사람이었어.

  文의 시신은 가마 안에서 화장되었고 뼛가루는 남발안의 계곡에 뿌려졌다. 금복을 도와 공장을 세웠으며 벽돌을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으나 그의 마지막 길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한편, 생전에 금복의 앞에서 시멘트 벽돌로 지은 집은 일 년도 못 가서 무너질 거라고 한 그의 예언은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장차 세상이 시멘트 벽돌로 지은 건물로 가득 들어차게 될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혹, 그가 저 높은 곳에서 빌딩이 가득 들어찬 도시를 내려다본다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거대하고 악랄한 사기야.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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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0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사실은 사기.가 아니였지요. 시멘트. 벽돌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지 않았나요? ^^

mizuaki 2006-09-0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기억에는 남지만 사기... 라고 생각하는데요. ^^;; 구비문학 쪽이 원래 기억에는 잘 남기도 하구요.
리뷰 쓰기 전에 이전 리뷰들을 쭉 읽었는데, 그 때 하이드님 글을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확인하고 왔습니다. 개망초 사진을 올렸다가 지우게 한 그 글이군요.이 책이 재미있다는 데는 저도 동의하고, 환상적이라는 데도 이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제도 플롯도 없는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시멘트를 부어 마당에 널어 말린 블록을 벽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요.
본의 아니게 좋아하시는 책을 험담한 것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님의 보물창고같은 서재는 저도 때때로 놀러 가는 곳이랍니다.

도서관장 2006-09-2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어려워요...^^;
근데 쓰신 글 중에서 이부분은 실제상황인가요 아님 시나리오 작가였음에 대한 은유인가요..
- "저자가 영화 카페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소설 카페에 풀어놓았을 때 그 바닥의 인물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은 없다. " -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소리로 보이기도 해서요..^^;
아무래도 직접 책을 읽어 봐야 할듯해요...

mizuaki 2006-09-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하신 표현은 은유입니다. 특정한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지를 못합니다. 그럼에도 관심 있게 읽어 주시고 답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재미있는(내용 면에서나, 문단과 독자들의 반응 면에서나) 책이니까 직접 읽어보셔도 후회는 안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장 2006-09-2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땡스 투 날렸어요 ^^

efee 2007-02-2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독자의 힘을 보여준, 정말 멋진 리뷰군요. 작가가 보면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까 싶네요.

mizuaki 2007-02-2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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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년을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등학교 1학년. 그런 그가 우연히 반에서 제일 가는 괴짜 소녀와 가까워지면서  정신 없는 판타지 세계와 엮이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타이틀 롤인 괴짜 소녀를 포함한 주요 여성 캐릭터가 모두 세일러복 미소녀라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사고 회로에 폭주하는 행동력을 가졌지만  내면은 순수한 히로인 미소녀, 무뚝뚝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몸을 던져 주인공 소년을 지키는 여전사 미소녀, 어린애 얼굴에 커다란 가슴을 한, 울음을 참고 시키는대로 야한 포즈도 취해 주는 천사표 미소녀. 세 사람의 미소녀는 모두 주인공 소년과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며 유혹하는 듯 아닌듯 좋아할듯 말듯 새콤달콤한 연애놀이의 분위기를 만든다.

표현 자체는 건전하지만 생각할수록  야한 소설이다.  미소녀와의 썸씽을 꿈꾸는 평범한 남자애의 성적 판타지라는 느낌이 풀풀 풍겨서,  실수로 남자 탈의실에 들어간 것 같은, 사춘기 소년이 방에 숨겨둔 포르노 잡지를 본 것 같은 낯뜨거운 기분이 되었다.   통통 튀는 발랄한 문체로 매끄럽게 잘 쓴 글이기는 한데,아무래도 내 취향하고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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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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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한 달도 더 전의 일이온데 재주가 모자라고 성정이 독실하지 못하여 오늘에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편지들을 읽는 동안 퇴계와 고봉 두 분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 하였으니, 40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의 대표적 지성인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참으로 지극하였습니다.

 

퇴계와 고봉이 살았던 시대의 조정은 치열한 권력 투쟁의 장이었던 바, 벼슬을 한사코 거부하는 퇴계의 모습에는 숱한 선비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얻었을 지혜가 드러납니다. 선조의 즉위로 고위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얻은 고봉의 글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날 때의 글에는 초조와 고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 꺾이지 않는 자부심, 겸손하게 예를 지키는 우아함, 그리고 서로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옛 편지 위에 은은한 향기를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원전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신 것이 자세하고 정성스럽다 이를 만합니다. 단지 하나 의심스러운 것은 편지를 주제별로 나누어 1부 “일상을 논한 편지”와 2부 “학문을 논한 편지”로 달리 배열한 것의 효과입니다. 사단칠정론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독자라면 이 배열을 통해 논의의 시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열은 시간순 배열에 비해 두 주인공의 삶의 환경과 감정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 어떤 편지에 이전 편지나 이후 편지가 언급된 경우 그것을 찾아내어 확인하기가 매우 번거롭습니다. 만약 편지를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같은 주제의 편지를 각주로 안내했더라면 이러한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삼가 절하고 올립니다. 어리석은 소견을 낱낱이 풀어 놓으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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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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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는 더욱 이치에 어긋나니, 이 말이 점점 널리 퍼져 배우는 이들을 그르치게될까 매우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경솔한데다 학문 또한 얕고 설익어서, 감히 논변하여 참으로 옳은 쪽으로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힘껏 분석하시어 학자들을 깨우쳐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도를 맡은 이의 책임이니, 선생님께서 자꾸 사양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노씨 어른(노수신)께도 편지를 보내어 잘못을 깨닫고 바른 데로 돌아오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제넘고 경솔하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삼가 절하고 여쭙습니다. -147-148쪽

노과회가 가까운 곳으로 옮겨진 것은 선비들이 함께 축하할 일입니다. 지나는 길을 알고서 기다렸다가 중간에서 만났다 하니, 저로 하여금 옛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별지에서 펼치신 여러 주장은 삼가 충실히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하나 회답해야 마땅하겠으나, 사정이 이러합니다. 지금 같은 때에 다른 사람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논변한다면, 분명히 보고 듣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입니다. 또한 이치에도 온당하지 않을 듯하니, 잠시 동안은 회답하지 못하지만 뒷날에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대체로 보내오신 편지의 내용이 타당합니다. 지난해 우연히 과회의 인심, 도심에 대한 시 두 구절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매우 의심했는데, 지금 그의 견해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으니 벗들의 큰 근심입니다. 듣건데 서울의 여러 사람들도 점차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들의 견해와 논의도 대부분 그대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더불어 하나하나 견주어 밝히려고 한다면 우리들끼리 서로 다투고 모순되어 변장자 틈을 탄 것처럼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색이 성리학을 한다 하면서 도를 어지럽힐 뿐이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150-151쪽

인심,도심의 설에 대해서는 비록 자세히 깨우쳐주시는 가르침은 받지 못했으나, 이미 옳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마음 깊이 위로되고 또 위로됩니다. "명색이 성리학을 한다 하면서 도를 어지럽힐 뿐이다."하신 말씀은 구구절절 모두 옳습니다만, 이는 작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비록 하나하나 시끄럽게 다투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만, 마땅히 연구하고 분별하여 진리를 추구하면서, 한두 동지라도 더불어 잘 지켜서 뒤이어 올 성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사람은 비록 믿지 않지만, 뒷날에는 모름지기 이 설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이고, 또한 반드시 몇몇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신 주자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특한 주장이 멋대로 유행하면 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무너뜨리게 되니, 어찌 시끄러운 혐의를 피하려고 그들과 다투지 않겠습니까? (아래 계속) -155-156쪽

지난날 서울에 있을 적에 우연히 허태휘(허엽) 공을 만났는데, 그의 주장은 너무 많이 어그러져서 이루 다 논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중용의 비은을 형체를 넘어서는 것과 형체에 묶이는 것에 나누어 붙이기까지 했으므로 제가 힘써 반박했습니다. 지금 자중의 편지를 보니, 태휘가 아직도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태휘의 소견은 너무 치우쳐서 참으로 고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과회의 설이 태휘의 설과 같다는 소문을 들으니 깊이 한숨만 나옵니다.
대전에서 "형체를 넘어서는 것을 도라 하고, 형체에 묶인 것을 기라 한다"고 했고, 중용에서는 "군자의 도는 넓게 쓰이거니와 은밀하다."했습니다. 따라서 도란 본디 형체를 넘어서는 것이니, 어떻게 형체에 묶인 것으로 나누어 붙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콩과 보리처럼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니, 그의 학문이란 것도 알 만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평상시에 세심히 글을 읽지 않고, 다만 억측과 상상만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남의 질문을 받게 되면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기에, 다만 억측하고 상상한 것으로 말을 만들고,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입니다. 이것이 무슨 기상이며 무슨 도리입니까? 한편으로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습니다.

어제 어떤 이가 와서 야대 때에 그대가 임금께 아뢴 말씀의 줄거리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몹시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밤새도록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생각이 없으십니까? (중략) 가령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지나치게 추켜세워 임금께 아뢰었다 하더라도, 그대는 오히려 마땅히 힘써 막고 덜어내어, 저로 하여금 하늘을 속이는 죄를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인데, 지금 도리어 저를 크게 높여 임금의 귀를 어지럽혔습니다. (중략) 평소 서로를 잘 알아 서로 인정해 주던 그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우리 두 사람 사이는 뻔질나게 오가며 서로를 좇는 것이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별나게 여겨지고 있는데, 또 뒤따라 이런 행동을 했으니 누가 그대의 말을 공정하다고 믿으려 하겠습니까? (중략) 앞으로는 사람을 보내 서로 안부를 묻는 일도 다 그만두어서 조금이나 편하게 해 주신다면 제 마음에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황.
-240-241쪽

퇴계 선생님께 답하며 글을 올립니다.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받으니 두렵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애초 저의 의도가 어찌 선생님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마침 임금의 명령을 받들었으므로 자못 많은 이야기를 한 듯합니다만, 감히 실정에 지나치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저의 소견을 임금께 들려드렸을 뿐입니다. 이 일에는 참으로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미처 살피지 못하신 듯합니다. 오늘 저녁에 찾아 뵙고자 하오니 너그러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무진 12월 초 9일, 후학 대승은 절하며 올립니다.
-242쪽

답합니다.
복잡한 사정이란 것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제게 들리시도록 허락하고 싶지만, 이 일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남들의 지목만 더할 듯하니 굳이 오실 것 없습니다. 삼가 답합니다. 황.
-243쪽

영공께 아룁니다.
삼가 여쭙습니다. 병환이 지금은 어떠합니까? 근자에 소식이 막혀 그리움이 간절합니다. 괴회공이 바로 지금 부친상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뛰쳐나가 마을 어귀까지 가서 바래다 주고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습니다. 사람일이 어찌될지 모른다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황.
-244쪽

선생님께 답하며 글을 올립니다.
내려 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충청감사가 부친상으로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는 기별을 받으니 놀라고 슬픈 마음 그지없습니다. 저는 요사이 한 번 찾아 뵙지도 못해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만 지극했습니다. 아내의 병도 나은 듯하고 해서 찾아뵈려고 아침나절에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더니 출타하신 듯하다 하기에 머뭇거리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지금 벗의 집에 있는데 저녁에는 찾아뵈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후학 대승은 절하며 올립니다.
-245쪽

선생님께 올리는 글
강 위의 이별은 꿈결처럼 아득했습니다. 양근에서 돌아온 김별좌에게서 선생님의 길 떠나시던 모습을 들으니 슬프고 그리운 마음 갑절이나 더했습니다. 그 뒤로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만, 여행하시는 동안 건강은 어떠셨는지요? 그리는 마음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중략)이제부터 가까이 모시지 못하게 되었음을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절로 슬퍼집니다.
-258쪽

명언에게 절하며 답합니다.
동호의 배 위에서 나누었던 정이 꿈결 속에 되살아나니, 봉은사까지 따라와 묵은 하룻밤의 뜻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서로 취해 말없이 바라보며 천리의 이별을 다 이루었습니다. (오늘) 손수 쓰신 편지와 아울러 시 한 편을 받으니, 마치 얼굴을 대하는 듯하여 참으로 위로되고 다행스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259쪽

승정원의 좌대언이 임시로 머무는 곳에 작은 누각 한 칸이 있는데, 제법 시원하게 뚫려 있어 동남쪽이 볼만합니다. 저는 날마다 거기 있으면서 선생님께서 계시는 남쪽을 바라볼 때, 하늘에 가로놓인 구름이 하늘 저 끝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음을 한스러워 했습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닦을 적에도 마침 또 그러했습니다. 비록 한 통의 편지를 닦아 올린다 하더라도 제 감정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니 다만 이렇게 쌓여만 갑니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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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6-08-30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세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기대승과 이황은 서로를 정말 좋아한다. 천재는 외로운 법이라,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애교 없는 성격의 고봉은 종종 선배나 상관 앞에서도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곤란한 일을 당하는데, 퇴계는 그런 고봉을 걱정해 주고 고봉이 우는 소리를 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퇴계가 이 어린 벗을 얼마나 예뻐했는지는 제발 같이 서울에 있자고 끈질기게 조르는 고봉의 편지에 은거 생활을 단념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년 남짓 가까이서 오가며 보낸 즐거운 시간. 그 밀월 중에 두 사람은 13년 교류 역사 중 유일한 싸움도 경험한다. 퇴계의 절교선언에 기가 팍 죽어 있던 고봉은 얼마 후 퇴계가 보낸 수줍은 화해 편지에 열정적인 답장으로 대답한다. "아침에 편지 받자 마자 가려고 했는데 안 계신 것 같아서 못 갔어요. 지금 이 편지는 친구집에서 쓰고 있어요. 이따 저녁에 꼭 갈게요." 라니, 마흔 두 살 아저씨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 결국 퇴계의 낙향으로 둘의 행복은 끝나고 그 이듬해 고봉도 조정 안에서의 지위를 잃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낙향 1년 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사실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지겹기 짝이 없다. 이기니 사단칠정이니 태극이니 복잡한 데다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긴지, 이 책이 <흥미진진한 역사책> 목록에 올라 있는 건 넌센스고, 교육청의 고교생 추천목록에 올라 있는 건 코미디라고밖에는 못 하겠다.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은 내용이고, 고등학생은 어려워서 읽지도 못한다. 추천서 목록 만든 사람이 괜히 멋있는 척 폼 잡으려고 넣었거나 편저자하고 아는 사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꾹 참고 읽으면 나름대로 매력은 있다. 너무나 재미없어서 별 셋 이상은 줄 수가 없었음에도 열심히 리뷰를 쓰게 만든, 어쨌든 독특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2
박지향.김일영.이영훈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일기장에다 그를 "너무나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라고 썼다. 1954년 그를 만나러 가기 전 대통령은 비서인 해거티에게 그를 언제까지 붙들어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약한 소리를 한다. "(그가  주장하는 전쟁이 일어나면) 결과는 너무 엄청날 걸세." 미국인들은 그를 <동양의 협상가>, <기만의 대가>, <형편없는 패를 들고도 공갈로 이기는 노름꾼>으로 평가했는데,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공갈협박으로 그는 매년  미국 국민의 혈세를 10억 달러씩이나 우려내고 있었다. 한국의 국내수입이 5억 달러도 안되던 시절에 말이다. 미사일을 뻥뻥 쏘아대며 미국을 협박하는 누군가의 <벼랑끝 외교>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일화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2권이 다각도로 보여주는 1945년에서 50년대 말까지, 광복과 그 후의 혼란, 한국 전쟁과 한미 동맹, 농지 개혁, 경제 정책, 사회 변화의 중심에는 이승만과 김일성이 있다. 수록 논문의 저자들은 어디까지나 실증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저 두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는 사실이다.

명망 있는 해외파 독립 운동가인 이승만과 김일성은 혼란스러운 해방 공간을 발빠르게 움직여 권력을 손에 넣는다.  끼고 있는 패트런은 미국과 소련으로 서로 달랐지만 두 사람의 정책은 비슷했다. 우선은 일본인소유 재산들을 장악하고,  다음으로  지주들의 땅을 몰수해 소작인에게 나누어주었다. 토지 개혁은 교육받은 지주층을 몰락시켜 반대 세력을 제거해 주고, 절대 다수인 농민층으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제 그들의 목표는 상대 정권을 축출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  미군이 철수하기를 기다려, 김일성이 전쟁을 시작한다. 

3년간의 전쟁으로 160만명이 끔찍한 죽음을 당했지만  이승만과 김일성만은 끄떡 없었다. 원망과 증오가 커질수록 두 사람의 권력은 확고해졌으니까. 전쟁은 적과 아군의 개념을 가르쳤고, 전통적 가치를 따르던 농부들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국민>으로 조직했다.  국가의 위기라는 명분을 이용해 두 사람은 효과적으로 정적들을 숙청했다. 이승만은 안전한 부산에 앉아  휴전 협정을 완강히 반대했다. 그에게는 전선에서 죽어가는 하찮은 젊은이들보다는 "조국 통일"의 숭고한 열망이 훨씬 중요했다.

휴전 후 이승만은 미국에서 뜯어온 원조금으로 관료 조직을 정비하고, 선거의 뒷돈을 댈 재벌 자본가들을 육성했다. 1948년 5만명에서 1954년 65만명으로 늘어난 군대가 젊은이들을 훈련시켰고, 학교는 아이들에게 근대 국가의 규범을 가르쳤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배운 아이들이 4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아직 훗날의 일.  비대해진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도, 군사 정권이 재벌을 앞세운 경제 개발을 이룰 것도 이승만은 알지 못했으리라.

이승만과 김일성은 한국사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그들의 시대가 우리 시대의 바로 전단계로서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이 이 땅에 도입한 초기 단계의 근대 국가에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더해 거대하고 효율적이며 강력한 지배 구조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국가 권력은 두 사람의 손에서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특히 태평양전쟁기의 차별과 배제, 억압과 선동, 인권을 경시하고 소수를 박해하는 전체주의를 확대 재생산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 두 사람이야말로 일본 제국주의의 직접적 계승자이며, 정치적 쌍생아이자 적대적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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