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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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한 달도 더 전의 일이온데 재주가 모자라고 성정이 독실하지 못하여 오늘에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편지들을 읽는 동안 퇴계와 고봉 두 분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 하였으니, 400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선의 대표적 지성인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참으로 지극하였습니다.

 

퇴계와 고봉이 살았던 시대의 조정은 치열한 권력 투쟁의 장이었던 바, 벼슬을 한사코 거부하는 퇴계의 모습에는 숱한 선비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얻었을 지혜가 드러납니다. 선조의 즉위로 고위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얻은 고봉의 글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날 때의 글에는 초조와 고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 꺾이지 않는 자부심, 겸손하게 예를 지키는 우아함, 그리고 서로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옛 편지 위에 은은한 향기를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원전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신 것이 자세하고 정성스럽다 이를 만합니다. 단지 하나 의심스러운 것은 편지를 주제별로 나누어 1부 “일상을 논한 편지”와 2부 “학문을 논한 편지”로 달리 배열한 것의 효과입니다. 사단칠정론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독자라면 이 배열을 통해 논의의 시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열은 시간순 배열에 비해 두 주인공의 삶의 환경과 감정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또 어떤 편지에 이전 편지나 이후 편지가 언급된 경우 그것을 찾아내어 확인하기가 매우 번거롭습니다. 만약 편지를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같은 주제의 편지를 각주로 안내했더라면 이러한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삼가 절하고 올립니다. 어리석은 소견을 낱낱이 풀어 놓으니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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