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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그건 벽돌이 아니오.
-이게 벽돌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는 거죠?
-그건 사기요. 그것도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악랄한.
그제야 금복은 벽돌을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시멘트로 찍어낸 벽돌이었다.
-이건 시멘트 벽돌인데 왜 사기라는 거죠?
-그건 집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기라는 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싸다는 이유로 모두 그걸로 집을 짓고 있소.
-다들 멀쩡하게 이걸로 집을 짓는데 왜 당신만 문제라는 거죠?
-남이야 벽돌로 집을 짓든 나무로 집을 짓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문제는 바로 그 벽돌 때문에 우리가 만든 벽돌이 안 팔리고 있다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론 시멘트 벽돌을 만들어서 팔면 되겠군요.
금복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文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보고 사기꾼이 되란 말이오? (pp 280-281)
최고의 벽돌에 주어야 할 상을 시멘트 블록에 주어 놓고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문학동네 출판사에 애도를 표한다. <시멘트 블록 사기 사건>에 멋지게 걸려든 심사위원들 - 왜 이 소설엔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는지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그런 성찰만 추가하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이나 <양철북>이 되겠다는 황당한 썰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풀어놓은 소설가 임철우, 사기의 냄새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 본질까지 알아냈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쳐,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비난의 뜻으로 한 "전통적인 소설의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별로 빚진 게 없는"이라는 말이 자극적인 광고 카피로 변해 버린 꼴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소설가 은희경, 무능한 남성들을 압도하는 여성성의 구현이라는 자신만의 생각에 스스로 도취되어 짐짓 심각하게 이름붙인 “소설, 그 너머”에 TV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는 상식조차 간과하고 만 평론가 신수정 - 에게는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으로 길러주고 직업과 사회적 지위와 돈과 명예를 안겨준 소설이라는 어머니의 등에 작살을 꽂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해서는, 암상이셨던 할머니의 현현이자 대학 대신 군대에서 글쓰기를 배운 야전군에 영화라는 인기 있는 미녀를 따르는 구애자인 동시에 소박데기 계집애 소설이 짝사랑하는 상대이며, 예술가들의 카페에 섞여든 입심 좋은 약장수에 주제도 구성도 없는 인쇄형 구비문학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거머쥔 사기꾼인 저자에 대해서는, 아, 나는 도저히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가 없다.
그의 시멘트 블록이 내가 사랑하는 소설의 세계(그것은 근대의 산물로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탐구의 성과이며 치열한 윤리적 고민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쌓아올려진 기념탑이다. 그것은 마치 춘희가 만든 최고의 벽돌과도 같은 세계이다. “한 눈에 봐도 단단한 품격이 엿보이고 밝음의 정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위엄이 있어 보이되 결코 겁주지 않는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고 무질서하지도 정형적이지도 않은, 흙으로 만든 보석과도 같은(p396)” 벽돌 말이다.)를 위협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매력 앞에서 나는 저항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도 말솜씨가 좋았지만 이즈음해서는 그 솜씨가 더욱 늘어 어찌나 조리 있고 구변이 좋던지 이야기 자락마다 한숨이요, 눈물이요, 박장대소였다.(p140)”는 약장수의 묘사는 그대로 저자 자신에게 되돌려진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도 그 사기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금복을 배신하고 떠난 약장수가 낯선 도시의 지식인 집단에게 인정을 받아가는 과정을 보자.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 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중략)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떠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pp 342-343)
저자가 영화 카페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소설 카페에 풀어놓았을 때 그 바닥의 인물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은 없다. 평론가 류보선이 쓴 수상작가 인터뷰는 우습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저자의 소박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평론가가 일일이 흥분하며 덧붙이는 장황한 해설이라니!
그러나, 과연 내게 인터뷰를 쓴 평론가의 <오버>를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욕망을 좇는 인간들의 그로테스크한 파멸에서 내가 읽어낸 문명비판적 메시지는 “등장인물이 모두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은 저도 심사에 참여한 임철우 선생님이 처음 지적을 하셔서 알게 된 사실인데.”하는 저자의 순진한 웃음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렸고, 마고할미와 선문대할망의 거신족 여신 전설과 춘희를 연결지은 모처럼의 신화적 해석은 어느 겨울날 저자에게 길을 물은 뚱뚱하고 지저분한 가출여고생 얘기에 그냥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므로, 알라딘 리뷰를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주는 별 한 개는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헛간 속의 코끼리처럼 쓸쓸하게 죽어가는 소설의 무덤에 놓는 개망초 꽃이기도 하다. 한 영화감독 지망생이 소설계에서 일으킨 이 소동은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 소설이 영화에게 당한 확인사살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존재하되 플롯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시대, 불타버린 양피지와 책의 폐허 위로 영상으로 재무장한 구비문학이 육중한 행진을 시작하는 시대에, 진흙벽돌과 함께 죽어간 사내의 이름이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한자로 쓰여진 文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금복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때마침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文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文에 대해 한마디 인물평을 했다.
-그는 정말이지, 까다로운 사람이었어.
文의 시신은 가마 안에서 화장되었고 뼛가루는 남발안의 계곡에 뿌려졌다. 금복을 도와 공장을 세웠으며 벽돌을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으나 그의 마지막 길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한편, 생전에 금복의 앞에서 시멘트 벽돌로 지은 집은 일 년도 못 가서 무너질 거라고 한 그의 예언은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장차 세상이 시멘트 벽돌로 지은 건물로 가득 들어차게 될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혹, 그가 저 높은 곳에서 빌딩이 가득 들어찬 도시를 내려다본다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거대하고 악랄한 사기야.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