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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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의는 더욱 이치에 어긋나니, 이 말이 점점 널리 퍼져 배우는 이들을 그르치게될까 매우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 미천하고 말이 경솔한데다 학문 또한 얕고 설익어서, 감히 논변하여 참으로 옳은 쪽으로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힘껏 분석하시어 학자들을 깨우쳐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도를 맡은 이의 책임이니, 선생님께서 자꾸 사양하실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노씨 어른(노수신)께도 편지를 보내어 잘못을 깨닫고 바른 데로 돌아오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제넘고 경솔하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살펴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삼가 절하고 여쭙습니다. -147-148쪽

노과회가 가까운 곳으로 옮겨진 것은 선비들이 함께 축하할 일입니다. 지나는 길을 알고서 기다렸다가 중간에서 만났다 하니, 저로 하여금 옛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별지에서 펼치신 여러 주장은 삼가 충실히 보았습니다. 바로 하나하나 회답해야 마땅하겠으나, 사정이 이러합니다. 지금 같은 때에 다른 사람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논변한다면, 분명히 보고 듣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입니다. 또한 이치에도 온당하지 않을 듯하니, 잠시 동안은 회답하지 못하지만 뒷날에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대체로 보내오신 편지의 내용이 타당합니다. 지난해 우연히 과회의 인심, 도심에 대한 시 두 구절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매우 의심했는데, 지금 그의 견해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으니 벗들의 큰 근심입니다. 듣건데 서울의 여러 사람들도 점차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들의 견해와 논의도 대부분 그대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더불어 하나하나 견주어 밝히려고 한다면 우리들끼리 서로 다투고 모순되어 변장자 틈을 탄 것처럼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색이 성리학을 한다 하면서 도를 어지럽힐 뿐이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150-151쪽

인심,도심의 설에 대해서는 비록 자세히 깨우쳐주시는 가르침은 받지 못했으나, 이미 옳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마음 깊이 위로되고 또 위로됩니다. "명색이 성리학을 한다 하면서 도를 어지럽힐 뿐이다."하신 말씀은 구구절절 모두 옳습니다만, 이는 작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비록 하나하나 시끄럽게 다투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만, 마땅히 연구하고 분별하여 진리를 추구하면서, 한두 동지라도 더불어 잘 지켜서 뒤이어 올 성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사람은 비록 믿지 않지만, 뒷날에는 모름지기 이 설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이고, 또한 반드시 몇몇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신 주자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특한 주장이 멋대로 유행하면 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무너뜨리게 되니, 어찌 시끄러운 혐의를 피하려고 그들과 다투지 않겠습니까? (아래 계속) -155-156쪽

지난날 서울에 있을 적에 우연히 허태휘(허엽) 공을 만났는데, 그의 주장은 너무 많이 어그러져서 이루 다 논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중용의 비은을 형체를 넘어서는 것과 형체에 묶이는 것에 나누어 붙이기까지 했으므로 제가 힘써 반박했습니다. 지금 자중의 편지를 보니, 태휘가 아직도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태휘의 소견은 너무 치우쳐서 참으로 고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과회의 설이 태휘의 설과 같다는 소문을 들으니 깊이 한숨만 나옵니다.
대전에서 "형체를 넘어서는 것을 도라 하고, 형체에 묶인 것을 기라 한다"고 했고, 중용에서는 "군자의 도는 넓게 쓰이거니와 은밀하다."했습니다. 따라서 도란 본디 형체를 넘어서는 것이니, 어떻게 형체에 묶인 것으로 나누어 붙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콩과 보리처럼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분별하지 못한 것이니, 그의 학문이란 것도 알 만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평상시에 세심히 글을 읽지 않고, 다만 억측과 상상만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남의 질문을 받게 되면 모른다고는 말할 수 없기에, 다만 억측하고 상상한 것으로 말을 만들고,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입니다. 이것이 무슨 기상이며 무슨 도리입니까? 한편으로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습니다.

어제 어떤 이가 와서 야대 때에 그대가 임금께 아뢴 말씀의 줄거리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몹시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밤새도록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생각이 없으십니까? (중략) 가령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지나치게 추켜세워 임금께 아뢰었다 하더라도, 그대는 오히려 마땅히 힘써 막고 덜어내어, 저로 하여금 하늘을 속이는 죄를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인데, 지금 도리어 저를 크게 높여 임금의 귀를 어지럽혔습니다. (중략) 평소 서로를 잘 알아 서로 인정해 주던 그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우리 두 사람 사이는 뻔질나게 오가며 서로를 좇는 것이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별나게 여겨지고 있는데, 또 뒤따라 이런 행동을 했으니 누가 그대의 말을 공정하다고 믿으려 하겠습니까? (중략) 앞으로는 사람을 보내 서로 안부를 묻는 일도 다 그만두어서 조금이나 편하게 해 주신다면 제 마음에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황.
-240-241쪽

퇴계 선생님께 답하며 글을 올립니다.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받으니 두렵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애초 저의 의도가 어찌 선생님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마침 임금의 명령을 받들었으므로 자못 많은 이야기를 한 듯합니다만, 감히 실정에 지나치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저의 소견을 임금께 들려드렸을 뿐입니다. 이 일에는 참으로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미처 살피지 못하신 듯합니다. 오늘 저녁에 찾아 뵙고자 하오니 너그러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무진 12월 초 9일, 후학 대승은 절하며 올립니다.
-242쪽

답합니다.
복잡한 사정이란 것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제게 들리시도록 허락하고 싶지만, 이 일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남들의 지목만 더할 듯하니 굳이 오실 것 없습니다. 삼가 답합니다. 황.
-243쪽

영공께 아룁니다.
삼가 여쭙습니다. 병환이 지금은 어떠합니까? 근자에 소식이 막혀 그리움이 간절합니다. 괴회공이 바로 지금 부친상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뛰쳐나가 마을 어귀까지 가서 바래다 주고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습니다. 사람일이 어찌될지 모른다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황.
-244쪽

선생님께 답하며 글을 올립니다.
내려 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충청감사가 부친상으로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는 기별을 받으니 놀라고 슬픈 마음 그지없습니다. 저는 요사이 한 번 찾아 뵙지도 못해 슬프고 죄스러운 마음만 지극했습니다. 아내의 병도 나은 듯하고 해서 찾아뵈려고 아침나절에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더니 출타하신 듯하다 하기에 머뭇거리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지금 벗의 집에 있는데 저녁에는 찾아뵈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후학 대승은 절하며 올립니다.
-245쪽

선생님께 올리는 글
강 위의 이별은 꿈결처럼 아득했습니다. 양근에서 돌아온 김별좌에게서 선생님의 길 떠나시던 모습을 들으니 슬프고 그리운 마음 갑절이나 더했습니다. 그 뒤로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만, 여행하시는 동안 건강은 어떠셨는지요? 그리는 마음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중략)이제부터 가까이 모시지 못하게 되었음을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절로 슬퍼집니다.
-258쪽

명언에게 절하며 답합니다.
동호의 배 위에서 나누었던 정이 꿈결 속에 되살아나니, 봉은사까지 따라와 묵은 하룻밤의 뜻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서로 취해 말없이 바라보며 천리의 이별을 다 이루었습니다. (오늘) 손수 쓰신 편지와 아울러 시 한 편을 받으니, 마치 얼굴을 대하는 듯하여 참으로 위로되고 다행스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259쪽

승정원의 좌대언이 임시로 머무는 곳에 작은 누각 한 칸이 있는데, 제법 시원하게 뚫려 있어 동남쪽이 볼만합니다. 저는 날마다 거기 있으면서 선생님께서 계시는 남쪽을 바라볼 때, 하늘에 가로놓인 구름이 하늘 저 끝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음을 한스러워 했습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닦을 적에도 마침 또 그러했습니다. 비록 한 통의 편지를 닦아 올린다 하더라도 제 감정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니 다만 이렇게 쌓여만 갑니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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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6-08-30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세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기대승과 이황은 서로를 정말 좋아한다. 천재는 외로운 법이라,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애교 없는 성격의 고봉은 종종 선배나 상관 앞에서도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곤란한 일을 당하는데, 퇴계는 그런 고봉을 걱정해 주고 고봉이 우는 소리를 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퇴계가 이 어린 벗을 얼마나 예뻐했는지는 제발 같이 서울에 있자고 끈질기게 조르는 고봉의 편지에 은거 생활을 단념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년 남짓 가까이서 오가며 보낸 즐거운 시간. 그 밀월 중에 두 사람은 13년 교류 역사 중 유일한 싸움도 경험한다. 퇴계의 절교선언에 기가 팍 죽어 있던 고봉은 얼마 후 퇴계가 보낸 수줍은 화해 편지에 열정적인 답장으로 대답한다. "아침에 편지 받자 마자 가려고 했는데 안 계신 것 같아서 못 갔어요. 지금 이 편지는 친구집에서 쓰고 있어요. 이따 저녁에 꼭 갈게요." 라니, 마흔 두 살 아저씨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 결국 퇴계의 낙향으로 둘의 행복은 끝나고 그 이듬해 고봉도 조정 안에서의 지위를 잃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낙향 1년 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사실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지겹기 짝이 없다. 이기니 사단칠정이니 태극이니 복잡한 데다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긴지, 이 책이 <흥미진진한 역사책> 목록에 올라 있는 건 넌센스고, 교육청의 고교생 추천목록에 올라 있는 건 코미디라고밖에는 못 하겠다.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은 내용이고, 고등학생은 어려워서 읽지도 못한다. 추천서 목록 만든 사람이 괜히 멋있는 척 폼 잡으려고 넣었거나 편저자하고 아는 사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꾹 참고 읽으면 나름대로 매력은 있다. 너무나 재미없어서 별 셋 이상은 줄 수가 없었음에도 열심히 리뷰를 쓰게 만든, 어쨌든 독특한 책인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