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츠마 이야기 - 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기린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9월
품절


아마가사키(尼崎)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런 동네랍니다. 오사카(大阪)와 효고(兵庫) 현 중간에 있는 이 동네는 도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열려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민의 대부분은 양키이거나 전에 양키였던 사람들입니다. 아마가사키 시민의 대댜수가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역시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고 자란 양키 출신 부모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이 양키로 키워집니다.
시내에는 제법 많은 상가들이 있지만 대부분 빠찡코 가게와 수상한 짝퉁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들뿐입니다. 음식점은 어디든 가격이 싼 편이어서 라면 한 그릇을 100엔이면 먹을 수 있는 가게가 널려 있습니다. 고깃집 (어찌 된 일인지 이상하게 많아요)을 포함해 모든 음식점들이 가격파괴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척 활기찬 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에 계속)-25-26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 무조건 다른 곳보다 싸게 파는 방법 이외에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는 사람도 싼 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품질이나 부가가치 등은 아마가사키 사람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지난번에 광우병 파동이 났을 때 다른 도시의 고깃집들은 파리만 날린다는 뉴스가 나오는데도 아마가사키의 싸구려 고깃집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겁니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고기를 파는 걸 보면 혹시? 어쩌면!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TV뉴스는 아예 보지 않습니다. 신문도 스포츠 신문밖에 있지 않아요.)
상점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래위 모두 추리닝 차림입니다. 이건 아마가사키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마가사키에서 자라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마가사키에서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아래에 계속)-26-27쪽

(위에서 계속)
아마가사키는 효고 현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전화번호 국번을 효고의 078이 아니라 오사카의 06을 씁니다. 아마가사키 사람들은 오사카의 시외국번을 쓸 수 있어 편리하다며 뭣도 모르고 좋아하지만 저는 좀 복잡한 기분이랍니다.
오래 전부터 효고 현은 고베를 중심으로 부자들이 사는 상류층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굳혀왔습니다. 그래서 추리닝 천국 아마가사키를 효고 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저는 추측하고 있어요. 기회를 틈타 아마가사키를 잡동사니 처리반인 오사카에 떠넘겨 버리고, 부자동네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싶다는 것이 효고 현의 본심이 아닐까요? 아마도 효고현에 있어서 아마가사키는 없었던 걸로 하고 싶은,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없는 걸로 하고 싶은 지역인 거죠. 그래서 효고 현은 아마가사키의 시외국번 06을 계속 묵인하고 있는 겁니다. 오사카가 "있잖아, 아마가사키 말인데 오사카로 편입시킬까 하는데 주지 않을래?" 라고 한다면, 효고 현은 선심 쓰듯 아마가사키를 오사카에 선뜻 줘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래에 계속)-27-28쪽

(위에서 계속)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이런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입니다. 아마가사키에서는 쇼핑을 해도 살 만한 게 없어서 오사카로 나가야 했는데, 상점에서 상품을 예약하기 위해 집주소를 쓸 때마다 얼마나 창피스럽던지...... 아마가사키 시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다들 저를 불쌍히 쳐다보는 것처럼 생각되거든요. 예쁜 옷차림을 하고 있어도 "그래 봤자 너는 추리닝 나라에서 온 애야" 라며 편견이 담긴 비웃음을 받는 기분이 되고 마는 겁니다.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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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1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고 현 아마가사키 얘기가 재밌어서 옮겨왔다. 여기가 마츠모토 씨와 하마다 씨와 야스다 군의 고향이어서 말이지.;;
 
삼대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5
염상섭 외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품절


생각할수록 경애란 이상한 계집애다. 지금 말눈치로 보아서는 노는 계집과 다름없고, 자기에게 성욕적으로 덤비는 것같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어제 상훈이에게 끌고 간 것이라든지, 또 전일에 상훈이 앞에서 키스를 한 것이라든지, 혹은 자기와 상관한 남자들을 모두 서로 대면시키려는 말눈치로 보면 일종의 변태성욕을 가진 색마나 요부 같다. 그러나 별안간 호령을 하고 함부로 윽박지르는 것을 보면 그것이 혹시 히스테리증의 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생각하면 불량 소녀의 괴수로서 무슨 불한당의 두목 같기도 하다. 옛 책이나 탐정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강도단의 여자 두목이라면 알맞을 것 같다. 사실 청인의 상점이 쭉 들어섰고 아편쟁이와 매음녀 꼬이는 음침하고 우중충한 이 창골 속을 휘돌아 들어갈수록 병화는 강도들의 소굴로 붙들려 들어가는 듯한 음험한 불안과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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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6-0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경애가 사는 북미창정이 요즘의 북창동인 모양인데, 저 '청인의 상점'이랑 '아편쟁이', '매음녀' 얘기에 그만 솔깃하고 말았다. 지금도 중국식료품점이랑 룸살롱이 즐비한 동네 아닌가! 식민지 시절의 데카당한 서울은 생각할수록 매력이 있단 말이지.

eppie 2008-06-10 15:58   좋아요 0 | URL
동의해요. 정말 매혹적인 공간이에요. :]

mizuaki 2008-06-11 07:45   좋아요 0 | URL
에피 님, 덧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가끔씩 놀러와주세요. ^^
 
한글로 읽는 사서
다시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다시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책날개에 나와 있는 역자 약력에서 신학대학과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합리적 이성"과 "건전한 상식"을 강조하는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니 비로소 납득이 갔다. 과연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기독교 교리보다는 현실에 뿌리를 둔 공맹의 가르침이 훨씬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기는 하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 접하기 어려운 유교 경전을 기독교 성경처럼 쉬운 한글로 풀어 한 권으로 묶어 내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적은 퍽 훌륭하게 성취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주일만에 <사서>의 전체 내용을 열람할 수 있었으니 저자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다.

실상 내가 <사서>를 읽으려는 이유는 급하게 한문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나 막막하던 차에 번역 텍스트를 먼저 읽고 나니 원문을 어떻게 읽어가야 할지 대략 감이 잡힌다. <대학>과 <중용>은 분량이 적으니 기한을 정해 집중적으로 독파해야겠고 <논어>는 짧은 장들로 나누어져있고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친숙한 내용이 많은만큼 사무실에 두고 틈틈히 조금씩 읽어야겠다. 분량이 가장 많은 것은 <맹자>인데, 이 사상가는 무난한 소리만 하는 그 스승 공자에 비해 겁이 없어서 조마조마한 위험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턱턱 던지기 때문에, 네 권 중 가장 기대되는 책도 <맹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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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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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병은 대부분 군사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의병 항쟁 당시 60세 환갑이었던 고경명은 적병과 무모한 전면전을 펴다가 패배해 목숨을 잃고, '군사의 행진에 기율이 없고 이르는 곳에 진영의 설비가 없어 마침내 패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개별 전투의 승리 여부에 상관없이 이들 의병의 활동은 왜군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 주었으며 조선군 전체의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때문에 지봉 이수광은 왜란에서 국가를 지켜낸 것은 오로지 의병들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의병의 공로를 부각시켰다. "명령이 통하지 않아서 거의 나라가 없어진 지 달이 넘었을 때에 영남의 곽재우, 김면, 호남의 김천일, 고경명, 호서의 조헌 등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키고 원근에 격문을 전하니 이로부터 백성들이 비로소 나라를 받들려는 마음이 있게 되었고 고을의 사자들은 곳곳에서 군사를 모집하였다. 의병장으로 칭호하는 자가 무려 백 명이나 되었는데 왜군을 초멸하고 국가를 회복한 것은 오로지 의병의 힘이었다. - 지봉유설 "-51쪽

선조는 공신들의 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우리나라 장사(將士)는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요행히 잔당의 머리를 얻었을 뿐 제 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였으며 그나마 이순신과 권율 정도가 조금 나은 편이라고 지적하였다. (중략) 그래도 선조에게서 약간의 공적을 평가받았으며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이순신은 오히려 행복한 편에 속한다. 의병장들의 실제 운명은 더욱 비참하였다. 의병들의 공이 컸다는 것은 관군의 역할이 미미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권 담당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백성들의 큰 신망을 받고 있던 이들이 혹시 어수선한 시국과 전란을 틈타 모반을 꾸미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실제로 전란 중 곳곳에서 도적이 일어나고 모반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들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이름난 의병장들의 이름을 파는 경우가 있어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여기에 의병장들의 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입김까지 작용함으로써 적지 않은 전쟁 영웅들이 희생을 당하였다.-59쪽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병들도 표창을 받기는커녕 전란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 이들을 강제로 군인으로 만들어 전선에 배치하거나 수시로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병들의 원망과 고통은 극에 달하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이수광은 국가가 백성들의 신뢰를 크게 잃어 차후에 또 전란이 생기면 의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였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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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4-26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병에 대한 역사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많이 왜곡된 것 같다. 결국 전란이 끝난 후에는 위험인물로 찍혀 희생당했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애국주의 선동에 넘어가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구판절판


의원이 삼대를 계속해 오지 않았으면 그가 주는 약을 먹지 않는 것같이 반드시 몇 대를 내려가면서 글을 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28쪽

네가 곡산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간 뒤 내가 과거 공부를 하라고 한 적이 있었지. 그 당시 주위에서 너를 아끼던 문인이나 시를 짓던 선비들은 본격적인 학문을 시킬 일이지 과거 따위나 시키고 있느냐고 모두 나를 욕심쟁이라고 나무랐고 나도 마음이 허전했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과거 공부로 인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내 생각에는 네가 이미 진사도 되고 과거에 급제할 실력은 족히 된다고 본다. 글을 알면서도 과거 때문에 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한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 일인가는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 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29쪽

너희들이 참으로 독서를 하고자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30-31쪽

너희들이 끝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다면 내가 해놓은 바 저술과 간추려 놓은 것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을 엮고 교정을 하며 정리하겠느냐? 이 일을 못한다면 내 책들은 더 이상 전해질 수 없을 것이며,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사헌부(司憲府)의 계문(啓文)과 옥안(獄案)만 믿고서 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 취급을 받겠느냐?-31쪽

요즘 한두 젊은이들이 원(元), 명(明) 때의 경조부박한 망령된 사람들이 가난과 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혆한 말을 모방해다가 절구(絶句)나 단율(短律)을 만들어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붛하며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을 깎아내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32쪽

소동파의 시로 말하면 우리 삼부자의 재주로써 죽을 때까지 시에만 전념한다면 그 근처쯤 갈 수는 있겠지만 인생이 세상에서 할 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짓이나 하고 있겠느냐?-46쪽

무릇 스스로 할 일을 다 하고 하지 않아야 될 일은 않고 살아도 부형(父兄)들의 가슴엔 원망이나 불평들이 쌓일 수 있다. 평상시에는 이런 감정들을 내색 않다가 응당 간섭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대로 자기도 모르게 그것들이 폭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그 일만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왜 내가 잘못한 일인가. 왜 이같이 처리하시는가"라고 서운해하겠지만 실은 오래 전의 잘못 때문이지 단순히 이번 잘못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하거라.
독시랗게 행실을 닦아 부형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해야 한다. 큰아버님 섬기는 일에는 특별히 따로 정해진 예절이 없고 오직 자기 아버지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면 되는 것이니 너희들이 느낀 바 있어 진실된 마음으로 행실을 한다면 한 달 못 가서 큰아버님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52-53쪽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수없이 글과 편지로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에 관해 하나도 질문을 해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셈이냐? 너희들은 내 이야기를 이다지도 무시한단 말이냐? (중략)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는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깋를 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廢族)으로 지내버릴 것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다 하더라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는 것뿐 아니라 과거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략)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뒤에 계속)-57-59쪽

(앞에서 계속)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 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으로 배우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고 말지만 폐족으로서 배우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도리에 어긋지고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되고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아 결국 세상의 버림을 받게 되고 혼인할 길마저 막혀 천한 집안과 결혼을 할 것이며 물고기의 입술이나 강아지의 이마 몰골을 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집안은 영영 끝장나는 것이다.-57-59쪽

일가끼리 한 자리를 같이 한다거나 가끔 친한 손님이 찾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맞아 대접하고 하룻밤이라도 더 주무시고 가게 하여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어야 한다. 만약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안부만 묻고 낳서는 말도 않고 웃지도 아니하고 무뚝뚝하게 대하여 손님을 어색하게 만들어 가지고, 손님이 일어나 가겠다고 하면 그냥 가도록 만류도 하지 않고, 보내면서도 마루도 내려서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이 상대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필경 평생의 복을 망쳐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니 부디 깊이 조심하도록 해라.-76쪽

내가 이 책(祭禮考定-인용자주)을 몇 년 전에만 완성했더라도 우리 선왕께 올려 전국적으로 고루 시행될 수 있게 했을 텐데 책을 이루고 나니 슬퍼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되는구나.-80쪽

내가 집에 함께 있으면서 너희들을 가르쳤는데도 듣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다른 집안에서도 혹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나는 멀리 귀양살이 와서 남쪽 풍토병이 심한 변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서 외롭고 불쌍하게 지내면서 밤낮으로 너희들에게 희망을 걸고 마음속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쏟아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너희들은 이것을 한 번 얼핏 읽어보고는 고리짝 속에 처넣어버리고는 다시 마음을 두지 않아서야 되겠느냐?-81-82쪽

너의 형이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 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너의 형보다 배도 넘는다 하더구나. 어찌 글공부에는 그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훨씬 아비를 넘어서는 거냐? (중략) 너희는 지난날 내가 술 마실 때 반 잔 이상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느냐? 참으로 술 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대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야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저들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고 구토를 해대고 잡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술독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 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거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중략)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으로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을 더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조심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 하지 말거라.-85-86쪽

일본에서는 요즈음 명유(名儒)가 배출되고 있다는데 物部雙柏(1666-1728. 오규 소라이(荻生徂徠)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역자주)이 바로 그 사람인데 호를 조래(徂徠)라 하고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으며 제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지난 번 수신사(修信使)가 오는 편에 소본(篠本)과 염문(廉文) 세 편을 얻어왔는데 글이 모두 정예(精銳)하더라. 대개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백제에서 책을 얻어다 보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몽매하였다. 그후 중국의 절강 지방과 직접 교역을 트면서 좋은 책을 모조리 구입해 갔다. 책도 책이려니와 과거를 보아 관리를 뽑는 그런 잘못된 제도가 없어서 제대로 학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그 학문이 우리 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93쪽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치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접근하여 임금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기예를 가진 사람도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 없다. (중략)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고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되니 결국은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중략) 그런 신하는 임금이 첩같이 다루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므로 혼자 매우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지 등용되기는 쉽지 않다. 무릇 초야에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때는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올리는 글은 논(論)이나 책(策)만 올리는데 그 글이 충성스럽고 굳세거나 간절해도 괜찮다.-125-126쪽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 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여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을 읽어 주고 내 책 한 부분이라도 베껴 두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은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다.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알아내지 못하고 지혜로운 생각만으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니 이 책에 마음을 푹 기울여 오묘한 뜻을 다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손이나 친구들 중에서도 천 년에 한 번쯤 만날 정도로 어려울 거다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기를 여타의 책보다는 곱절을 더 생각해야 할 거다. 상례사전(喪禮四箋)은 내가 성인의 글을 독실하게 믿고서 만든 것으로,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 학문이 거센 물결처럼 흐르는 판국에 그걸 흐르지 못하도록 모든 냇물을 막아 수사(洙泗)의 참된 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다. (중략) 만약 내가 사면을 받게 되어 이 두 가지 책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비록 없애버린다 해도 괜찮겠다.-128-129쪽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에 끊어져 버리면 빨리 서울에 붙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만이 가히 살 수 있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중략)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 번 넘어진 사람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 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138-139쪽

큰 흉년이 들어 백성 중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들 중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보는 관점으로는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가 게으른 사람이 많더구나. 하늘은 게으른 사람을 싫어하는 거여서 모두 몰살시키려는 거다.-148쪽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번 세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뜨렸을 때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내가 젊어서 글자를 너무 빨리 썼기 때문에 여러 번 이 계율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중년에 화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런 원칙을 지켰더니 아주 큰 도움을 얻었다. 너희도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하여라.-165-166쪽

또 의복과 음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오직 뽕나무와 삼을 심고 채소와 과일을 심는 일이며, 부녀자가 방적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꽤 할 만한 일이다. 그 나머지 돈놀이를 하거나 여러 물건을 매매하거나 약장사를 하는 일은 모두 매우 악찫흐러운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본전을 손해보고 본업을 망치게 된다. 아무쪼록 그런 일은 생각을 내지 말거라.-167-168쪽

네가 갑자기 의원이 되었다니 무슨 의도며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러했느냐? (중략) 무릇 사람들 중에 높은 벼슬이나 깨끗한 직책에 있는 사람, 덕이 높고 학문이 깊은 사람도 의술에 대하여 터득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천하게 의원 노릇을 하지 않고, 병자가 있는 집안에서도 바로 찾아가 묻지 못하고, 세 차례 네 차례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에야 겨우 한 가지 처방을 해주어 귀중한 처방으로 여기게 하는 정도라야 옳다.
요즘 너는 크게 소리를 내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방에 가득 모이게 하여 사람 못된 별의별 사람들을 내력도 모르면서 사귀고서 재워 주고 먹여 준다니, 그게 무슨 변고냐? 이 뒤로도 내가 너 하는 일을 모두들을 것이나 네가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살아서는 연락도 않을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 다시 말도 하기 싫다. -169-170쪽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살며 백성들의 물정을 보았습니다. 시골의 장터가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이거야말로 커다란 폐속입니다. 재산을 낭비하고 농사를 못 짓게 되며 술주정을 부리고 싸움판을 벌이는 일과 도적질하고 사람을 죽여 쓰러뜨리는 일 같은 변란이 모두 장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엄금하는 것이 마땅하며 큰 고을에는 오직 2,3곳만 남겨두고 작은 고을에는 단 한 곳의 시장만 두게 한다면 풍속이 반드시 순박해지고 송사나 재판 사건도 반드시 줄어들게 될 것 같으니 시장을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마땅히 유념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186쪽

남자는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사나운 짐승처럼 사납고 전투적인 기상이 있고 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교정하여 법도에 맞게 해야만 유용한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은 그 한몸만을 선하게 하기에 족할 뿐입니다.-192쪽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 텐데, 제가 거기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도중에 활이나 화살, 총이나 탄환이 없다고 해도 그물이나 덫을 설치할 수야 없겠습니까. (중략)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 요리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6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선생의 탕목읍으로 만들어 주어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고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택하다니 역시 사정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들깨 한 말을 이 편에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또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후략)-201-202쪽

요사이 <시경> 소서(小序)를 읽어 보았더니 정말 너무 잘못이 많더군요. 그것이 공자 학통의 옛글이 아니란 게 확실합니다. 한나라 학자들 가운데서 좀 나은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위굉이 지은 것이 분명합니다. 주자의 큰 안목으로써 정확히 꿰뚫어보고서 당나라나 송나라 때의 비루한 습속을 한 차례 씻어내긴 하였지만, 다만 국풍(國風)으로 말한다 해도 주남에서 정풍10까지의 95편 안에 부인들의 작품이라고 했던 시가 43편이나 될 정도로 많았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길 "부인들이 글자를 해득할 수 있으면 물의를 일으키는 수가 많다."했으니 주나라 때 부인들이 이렇게 시를 즐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229-230쪽

윤외심을 재작년 해남에서 만났을 때에 내가 "죽지 않고 서로 만났으니 이상도 하네."라고 했더니, 윤이 "사람이 죽기가 어찌 쉬운 일인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람이 죽기가 가장 쉬운 일이네."라고 했더니, 윤이 "죄악(罪惡)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 거네."라고 하였고, 나는 "복록(福祿)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 거네."라고 하다가 서로 웃고서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말한 "죄악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대체로 이 세상을 괴로운 세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만, 이것은 바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는 말로 진정으로 도를 아는 사람의 말은 아닙니다.-232쪽

아내가 게으른 것은 가산을 탕진시킬 근본이다. 사경(새벽1~3시-인용자주)도 못 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해가 창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은 모두 게으른 사람이니, 경계해 주어도 개전의 정이 없다면 버려도 괜찮은 것이다.-252쪽

이제 풀려나 집에 돌아간다 해도 바람벽만 남은 집에 곡식이라곤 설 전에 다 떨어졌고 늙은 아내의 얼고 굶주린 모습이나 아이들의 처량한 모습일 뿐일 테지요. 두 분 형수께서는 "왔으면 왔으면 했는데 와도 그 모양이구나." 라고 할 겁니다. 태산이 등을 누르고 큰 파도가 앞을 가리고 있으니, 만약 풀려난다면 <주역>에 관한 공부가 까마득해질 것이고 음악에 대한 공부도 봄철의 개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이곳 다산을 내가 죽어서 묻힐 땅으로 작정해 주셨으며, 보암산 몇 뙈기 밭을 나의 식읍지로 주셨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낙네의 탄식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니 복이 이처럼 후하고 지위도 이처럼 높은데도 이러한 세 가지의 깨끗한 신선세계를 버리고 네 겹으로 둘러싸인 아비규환의 세계에다 몸을 던지려 하니 천하에 이처럼 어리석은 사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뒤에 계속)-239-240쪽

(앞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계획이 정말 이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고픈 심정도 없은 적이 없었으니 사람이 본성이 원래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코 간음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러는 남의 아내나 첩을 도적질하려 하고 분명코 생계가 파탄남을 알면서도 더러는 마작을 하는 수가 있듯이 내게 있어서의 돌아가고픈 마음도 이런 유의 심정이지 어찌 본심이겠습니까.-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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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3-06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현대인하고는 문화와 윤리의 감각이 다르다. 지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잔인한 면이 있다. 인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달까, 거의 없는데, 현대의 북한 사람들에게 이런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인용의 쪽수는 1991년에 나온 책.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빌려왔는데 꽤 감동적인 구석이 있는 책이었다. 정약용이란 사람, 결벽하고 너무 진지하고 사람을 들들 볶는 타입이라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짜증나겠지만, 어쨌든 진지하고 총명한 데다 나름 귀여운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