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 삼대를 계속해 오지 않았으면 그가 주는 약을 먹지 않는 것같이 반드시 몇 대를 내려가면서 글을 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28쪽
네가 곡산에서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간 뒤 내가 과거 공부를 하라고 한 적이 있었지. 그 당시 주위에서 너를 아끼던 문인이나 시를 짓던 선비들은 본격적인 학문을 시킬 일이지 과거 따위나 시키고 있느냐고 모두 나를 욕심쟁이라고 나무랐고 나도 마음이 허전했었다. 그러나 이제 너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과거 공부로 인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내 생각에는 네가 이미 진사도 되고 과거에 급제할 실력은 족히 된다고 본다. 글을 알면서도 과거 때문에 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한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 일인가는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 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29쪽
너희들이 참으로 독서를 하고자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30-31쪽
너희들이 끝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다면 내가 해놓은 바 저술과 간추려 놓은 것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을 엮고 교정을 하며 정리하겠느냐? 이 일을 못한다면 내 책들은 더 이상 전해질 수 없을 것이며,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사헌부(司憲府)의 계문(啓文)과 옥안(獄案)만 믿고서 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 취급을 받겠느냐?-31쪽
요즘 한두 젊은이들이 원(元), 명(明) 때의 경조부박한 망령된 사람들이 가난과 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혆한 말을 모방해다가 절구(絶句)나 단율(短律)을 만들어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붛하며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을 깎아내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32쪽
소동파의 시로 말하면 우리 삼부자의 재주로써 죽을 때까지 시에만 전념한다면 그 근처쯤 갈 수는 있겠지만 인생이 세상에서 할 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짓이나 하고 있겠느냐?-46쪽
무릇 스스로 할 일을 다 하고 하지 않아야 될 일은 않고 살아도 부형(父兄)들의 가슴엔 원망이나 불평들이 쌓일 수 있다. 평상시에는 이런 감정들을 내색 않다가 응당 간섭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대로 자기도 모르게 그것들이 폭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그 일만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왜 내가 잘못한 일인가. 왜 이같이 처리하시는가"라고 서운해하겠지만 실은 오래 전의 잘못 때문이지 단순히 이번 잘못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하거라. 독시랗게 행실을 닦아 부형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도록 해야 한다. 큰아버님 섬기는 일에는 특별히 따로 정해진 예절이 없고 오직 자기 아버지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면 되는 것이니 너희들이 느낀 바 있어 진실된 마음으로 행실을 한다면 한 달 못 가서 큰아버님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52-53쪽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수없이 글과 편지로 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에 관해 하나도 질문을 해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셈이냐? 너희들은 내 이야기를 이다지도 무시한단 말이냐? (중략)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는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깋를 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廢族)으로 지내버릴 것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다 하더라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는 것뿐 아니라 과거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략)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뒤에 계속)-57-59쪽
(앞에서 계속)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 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으로 배우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고 말지만 폐족으로서 배우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도리에 어긋지고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되고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아 결국 세상의 버림을 받게 되고 혼인할 길마저 막혀 천한 집안과 결혼을 할 것이며 물고기의 입술이나 강아지의 이마 몰골을 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집안은 영영 끝장나는 것이다.-57-59쪽
일가끼리 한 자리를 같이 한다거나 가끔 친한 손님이 찾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맞아 대접하고 하룻밤이라도 더 주무시고 가게 하여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어야 한다. 만약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안부만 묻고 낳서는 말도 않고 웃지도 아니하고 무뚝뚝하게 대하여 손님을 어색하게 만들어 가지고, 손님이 일어나 가겠다고 하면 그냥 가도록 만류도 하지 않고, 보내면서도 마루도 내려서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이 상대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필경 평생의 복을 망쳐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니 부디 깊이 조심하도록 해라.-76쪽
내가 이 책(祭禮考定-인용자주)을 몇 년 전에만 완성했더라도 우리 선왕께 올려 전국적으로 고루 시행될 수 있게 했을 텐데 책을 이루고 나니 슬퍼 나도 모르게 흐느끼게 되는구나.-80쪽
내가 집에 함께 있으면서 너희들을 가르쳤는데도 듣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다른 집안에서도 혹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나는 멀리 귀양살이 와서 남쪽 풍토병이 심한 변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서 외롭고 불쌍하게 지내면서 밤낮으로 너희들에게 희망을 걸고 마음속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쏟아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너희들은 이것을 한 번 얼핏 읽어보고는 고리짝 속에 처넣어버리고는 다시 마음을 두지 않아서야 되겠느냐?-81-82쪽
너의 형이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 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너의 형보다 배도 넘는다 하더구나. 어찌 글공부에는 그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훨씬 아비를 넘어서는 거냐? (중략) 너희는 지난날 내가 술 마실 때 반 잔 이상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느냐? 참으로 술 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대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야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저들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고 구토를 해대고 잡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술독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 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거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중략)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으로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을 더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조심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 하지 말거라.-85-86쪽
일본에서는 요즈음 명유(名儒)가 배출되고 있다는데 物部雙柏(1666-1728. 오규 소라이(荻生徂徠)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역자주)이 바로 그 사람인데 호를 조래(徂徠)라 하고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으며 제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지난 번 수신사(修信使)가 오는 편에 소본(篠本)과 염문(廉文) 세 편을 얻어왔는데 글이 모두 정예(精銳)하더라. 대개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백제에서 책을 얻어다 보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몽매하였다. 그후 중국의 절강 지방과 직접 교역을 트면서 좋은 책을 모조리 구입해 갔다. 책도 책이려니와 과거를 보아 관리를 뽑는 그런 잘못된 제도가 없어서 제대로 학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그 학문이 우리 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93쪽
임금을 섬기는 방법에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치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접근하여 임금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기예를 가진 사람도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 없다. (중략)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고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절대 안 된다.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되니 결국은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중략) 그런 신하는 임금이 첩같이 다루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므로 혼자 매우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지 등용되기는 쉽지 않다. 무릇 초야에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때는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올리는 글은 논(論)이나 책(策)만 올리는데 그 글이 충성스럽고 굳세거나 간절해도 괜찮다.-125-126쪽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 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여 기뻐하기는 내 책 한 편을 읽어 주고 내 책 한 부분이라도 베껴 두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은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다.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알아내지 못하고 지혜로운 생각만으로도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니 이 책에 마음을 푹 기울여 오묘한 뜻을 다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손이나 친구들 중에서도 천 년에 한 번쯤 만날 정도로 어려울 거다 아끼고 중요하게 여기기를 여타의 책보다는 곱절을 더 생각해야 할 거다. 상례사전(喪禮四箋)은 내가 성인의 글을 독실하게 믿고서 만든 것으로,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 학문이 거센 물결처럼 흐르는 판국에 그걸 흐르지 못하도록 모든 냇물을 막아 수사(洙泗)의 참된 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다. (중략) 만약 내가 사면을 받게 되어 이 두 가지 책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비록 없애버린다 해도 괜찮겠다.-128-129쪽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에 끊어져 버리면 빨리 서울에 붙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만이 가히 살 수 있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중략)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 번 넘어진 사람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 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138-139쪽
큰 흉년이 들어 백성 중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들 중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보는 관점으로는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가 게으른 사람이 많더구나. 하늘은 게으른 사람을 싫어하는 거여서 모두 몰살시키려는 거다.-148쪽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번 세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뜨렸을 때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내가 젊어서 글자를 너무 빨리 썼기 때문에 여러 번 이 계율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중년에 화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런 원칙을 지켰더니 아주 큰 도움을 얻었다. 너희도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하여라.-165-166쪽
또 의복과 음식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오직 뽕나무와 삼을 심고 채소와 과일을 심는 일이며, 부녀자가 방적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꽤 할 만한 일이다. 그 나머지 돈놀이를 하거나 여러 물건을 매매하거나 약장사를 하는 일은 모두 매우 악찫흐러운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본전을 손해보고 본업을 망치게 된다. 아무쪼록 그런 일은 생각을 내지 말거라.-167-168쪽
네가 갑자기 의원이 되었다니 무슨 의도며 무슨 이익이 있어서 그러했느냐? (중략) 무릇 사람들 중에 높은 벼슬이나 깨끗한 직책에 있는 사람, 덕이 높고 학문이 깊은 사람도 의술에 대하여 터득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천하게 의원 노릇을 하지 않고, 병자가 있는 집안에서도 바로 찾아가 묻지 못하고, 세 차례 네 차례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에야 겨우 한 가지 처방을 해주어 귀중한 처방으로 여기게 하는 정도라야 옳다. 요즘 너는 크게 소리를 내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방에 가득 모이게 하여 사람 못된 별의별 사람들을 내력도 모르면서 사귀고서 재워 주고 먹여 준다니, 그게 무슨 변고냐? 이 뒤로도 내가 너 하는 일을 모두들을 것이나 네가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살아서는 연락도 않을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네 마음대로 하거라. 다시 말도 하기 싫다. -169-170쪽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에서 살며 백성들의 물정을 보았습니다. 시골의 장터가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는데 이거야말로 커다란 폐속입니다. 재산을 낭비하고 농사를 못 짓게 되며 술주정을 부리고 싸움판을 벌이는 일과 도적질하고 사람을 죽여 쓰러뜨리는 일 같은 변란이 모두 장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엄금하는 것이 마땅하며 큰 고을에는 오직 2,3곳만 남겨두고 작은 고을에는 단 한 곳의 시장만 두게 한다면 풍속이 반드시 순박해지고 송사나 재판 사건도 반드시 줄어들게 될 것 같으니 시장을 주관하는 관청에서는 마땅히 유념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186쪽
남자는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사나운 짐승처럼 사납고 전투적인 기상이 있고 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교정하여 법도에 맞게 해야만 유용한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은 그 한몸만을 선하게 하기에 족할 뿐입니다.-192쪽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 텐데, 제가 거기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도중에 활이나 화살, 총이나 탄환이 없다고 해도 그물이나 덫을 설치할 수야 없겠습니까. (중략)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 요리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6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선생의 탕목읍으로 만들어 주어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고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택하다니 역시 사정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들깨 한 말을 이 편에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또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후략)-201-202쪽
요사이 <시경> 소서(小序)를 읽어 보았더니 정말 너무 잘못이 많더군요. 그것이 공자 학통의 옛글이 아니란 게 확실합니다. 한나라 학자들 가운데서 좀 나은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위굉이 지은 것이 분명합니다. 주자의 큰 안목으로써 정확히 꿰뚫어보고서 당나라나 송나라 때의 비루한 습속을 한 차례 씻어내긴 하였지만, 다만 국풍(國風)으로 말한다 해도 주남에서 정풍10까지의 95편 안에 부인들의 작품이라고 했던 시가 43편이나 될 정도로 많았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길 "부인들이 글자를 해득할 수 있으면 물의를 일으키는 수가 많다."했으니 주나라 때 부인들이 이렇게 시를 즐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229-230쪽
윤외심을 재작년 해남에서 만났을 때에 내가 "죽지 않고 서로 만났으니 이상도 하네."라고 했더니, 윤이 "사람이 죽기가 어찌 쉬운 일인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람이 죽기가 가장 쉬운 일이네."라고 했더니, 윤이 "죄악(罪惡)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 거네."라고 하였고, 나는 "복록(福祿)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 거네."라고 하다가 서로 웃고서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말한 "죄악이 다한 연후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대체로 이 세상을 괴로운 세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만, 이것은 바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는 말로 진정으로 도를 아는 사람의 말은 아닙니다.-232쪽
아내가 게으른 것은 가산을 탕진시킬 근본이다. 사경(새벽1~3시-인용자주)도 못 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해가 창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은 모두 게으른 사람이니, 경계해 주어도 개전의 정이 없다면 버려도 괜찮은 것이다.-252쪽
이제 풀려나 집에 돌아간다 해도 바람벽만 남은 집에 곡식이라곤 설 전에 다 떨어졌고 늙은 아내의 얼고 굶주린 모습이나 아이들의 처량한 모습일 뿐일 테지요. 두 분 형수께서는 "왔으면 왔으면 했는데 와도 그 모양이구나." 라고 할 겁니다. 태산이 등을 누르고 큰 파도가 앞을 가리고 있으니, 만약 풀려난다면 <주역>에 관한 공부가 까마득해질 것이고 음악에 대한 공부도 봄철의 개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이곳 다산을 내가 죽어서 묻힐 땅으로 작정해 주셨으며, 보암산 몇 뙈기 밭을 나의 식읍지로 주셨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낙네의 탄식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니 복이 이처럼 후하고 지위도 이처럼 높은데도 이러한 세 가지의 깨끗한 신선세계를 버리고 네 겹으로 둘러싸인 아비규환의 세계에다 몸을 던지려 하니 천하에 이처럼 어리석은 사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뒤에 계속)-239-240쪽
(앞에서 계속) 이 이야기는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계획이 정말 이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고픈 심정도 없은 적이 없었으니 사람이 본성이 원래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코 간음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러는 남의 아내나 첩을 도적질하려 하고 분명코 생계가 파탄남을 알면서도 더러는 마작을 하는 수가 있듯이 내게 있어서의 돌아가고픈 마음도 이런 유의 심정이지 어찌 본심이겠습니까.-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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