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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 전쟁과 사회주의의 변주곡
오쿠무라 사토시 지음, 박선영 옮김 / 소나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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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국 현대사를 <침략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총력전 태세>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읽어낸다. 침략이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을 말하지만, 2차대전 이후에는 일본에 대한 경계와 함께 미국의 위협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교과서 이후의 중국사 - 국공내전, 인민공화국 성립, 쌍백운동, 반우파 투쟁, 대약진,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를 간략하고 깔끔하게 짚어 주는 개설서라는 점에서도 매력이 있지만, 역사를 보는 새롭고도 공감할 만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내가 동아시아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 한국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쓴 이 중국사 개설서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나라의 문제로 향했다. 일본인들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한 소박한 민족주의 정서에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진 폭력성을 더하고, 그것을 휴전 이후의 북한에 대한 경계심으로 굳힌 것이 오늘날 한국의 극성스러운 국가주의 아닌가. 거기에 독재권력과 기득권층의 욕망이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밝혀낸다면 저자가 찾아낸 것 이상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과거 이웃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것이 기특하다. 그러나, 중국 공산화에 대한 미국의 영향을 언급하며 <다만 미국은 제국주의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하여 책임을 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것까지는 괜찮지만, <미국의 참전은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토대로 중국을 노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사회주의 세력에 의한 한국 통일을 저지하고 잘하면 남한에 의한 통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럴지라도 한국전쟁은 본래 통일을 둘러싼 한민족 내부의 전쟁으로서 타국이 개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한 것에는 '이봐, 이건 너무하잖아?'라는 느낌이었다. 일본인인 당신은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지만, 미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 안 했다면, 난 지금 지도자 동지를 위해 쫄쫄 굶어야 한다고! 뭐, 이런 당혹감 역시 동아시아 역사를 읽는 즐거움의 하나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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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천 이야기 - 한일 목욕문화의 교류를 찾아서
다케쿠니 토모야스 지음, 소재두 옮김 / 논형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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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중년 남자, 문학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 호기심 많은 성격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봄. 재일한국인인 아내의 영향으로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음."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그려지는 저자의 모습이다. 우연히 들른 동래온천의 허심청에서 본 옛 온천지의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해 근대의 사료부터 한문으로 된 조선 선비들의 입욕기까지 온갖 사료들을 뒤지고, 해운대에서 금강산까지 유명 온천지들을 발로 뛰며 한국인들도 몰랐던 한국의 목욕 문화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이는 이런 아저씨다. 역사 전공은 아니지만 사료를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사실과 의견을 깔끔하게 구분하여 제시하는 데서는 오랫동안 학문적인 글들을 다루며 터득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덕분에 읽기에 부담이 없으면서도 신뢰감이 든다. 일상적이면서도 좀처럼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소재를 골라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제시했고, 목욕탕 사람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알라딘의 책 소개에서 이 책을 보고 꼭 사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주무대인 동래온천이 내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온천장에 있는 여자중학교의 이름이 有樂이라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건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쨌든 그곳이 나의 모교이다. 중산층 거주지역이 가까운 여유 있고도 자유분방한 교풍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정든 거리의 풍경이 떠올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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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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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염상섭의 <삼대>를 "우와~ 너무 재미있다!"를 연발하며 다시 읽었다. 좀 이상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환상적이라고 평가받는 이 작품 <수상한 식모들>이 사실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삼대>와 동일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자본주의 맹아기의 가치관 혼란과 돈에 대한 욕망이 <삼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면, <수상한 식모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후 70년간 그 욕망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새끼를 쳐 왔는가이다. 70년 전의 조씨 삼대에 비해 오늘날의 신씨 삼대는 얼마나 초라한지! 아들의 눈을 피해 중년 며느리의 누드를 그리는 조부, 사업 실패로 재산을 날리고 골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부친,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에 쫓겨 허겁지겁 단 음식을 쓸어 먹는 130킬로그램의 왕따 고교생 아들. 그 아들 곁에는 마르크스 보이 김병화를 대신해 되다 만 혁명가 강순애가 있다. 머리 위에 식칼을 매단 채 죽어 가는 치사한 중년 여자의 모습으로.

돈에 대한 끝없는 욕망만이 신으로 군림하는 서울. 시시한 인간들이 느끼는 시시한 고통과 시시한 불행과 시시한 고민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대치동 재건축 아파트와 신답동 지하방, 혼자 있는 베란다와 만인 앞에 노출된 패스트푸드 매장, 영재 학원과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과  바바리 맨, 설탕을 듬뿍 넣은 사이다와 처녀의 오줌 같은 세부적 소재들의 생생한 활력에 어찌할 바 모르고 매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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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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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20년의 고통조차도 꺾지 못한 지성, 고통을 겪으며 오히려 향기로워진 인격이 감동적이었다.  그 때 받았던 좋은 인상 덕분에 감옥에서 풀려나는 중년 남자 오현우와의 첫만남은 부드럽고 우호적인 것이었다. 학생 시절 운동권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했던 나에게도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소설은 오현우의 행적을 따라 감옥에서 서울로, 다시 전라도 시골의 갈뫼 마을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오현우는 사랑했던 여자 한윤희의 흔적을 만나고, 오현우의 기억과 한윤희의 기억이 교차하는 속에서 80년대의 꿈과 사랑, 아픔과 절망이 숨가쁘게 그려진다. <삼포 가는 길>과 <아우를 위하여>로 겨우 맛만 보았던 이 작가는 예상대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두 권을 후딱 읽어 치웠다.

박종철 씨가 살해당하고 전국이 최루탄 냄새에 찌들었던 무렵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말조심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한테 물고문 과정을 생생히 묘사해준 것은 조금 오버가 아니었나 싶지만, 그 위협 덕분에 나는 데모 한 번 나가보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운동권들이 하는 이야기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대 중반을 넘긴 이후였다. 나에게는 없었던, 아니 가지는 것조차도 두려워 외면해 버렸던 열정과 자존심을 가지고 불의에 항거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가 버린 사람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뒤에 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소 통속적인 부분도 있고,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교육청 추천 도서 목록에 올라 중고생들에게 읽혀진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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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 - 하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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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소년"이었던 무라카미 류는 미국에 대해 특별한 애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 애증이 미국에 맞서 싸우는 몇 안 되는 나라(이른바 악의 축!) 북한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북한을 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공포와 혐오에 더해 아련한 부러움의 그림자가 어린다. 

 10년 전 <5분 후의 세계>를 읽으면서 소설 속 반미 전투국가가 어딘가 북한과 닮았다고 느꼈다.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면을 빼고 동화처럼 이상화해 놓기는 했지만. 그런 동화는 이 책, <반도에서 나가라>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음침함은 음침함, 공포는 공포, 잔인함은 잔인함, 어리석음은 어리석음, 그리고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단지 북한이라면 무조건 비판해야 하는(빨갱이로 오해받는 것만은 사양이니까) 우리와는 달리 이 일본인 작가는 비교적 자유롭게 기괴한 이웃 국가를 성찰한다. 거대한 퇴폐, 자신과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성향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굶주림과 고통, 불안과 공포, 용기와 프라이드, 죄책감과 사랑의 갈등까지 한국인이 미처 보지 못했던 북한이 소설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 덧붙여 전투와 범죄, 테러의 묘사에는 무라카미 류만한 작가가 드물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개가 급박하고, 묘사가 날카롭고.... 읽기 시작한 순간 빨려 들어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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