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마다 한 사람씩 자기 마음을 움직인 시를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하이쿠나 단문으로 된 시라든가

 

은유가 굽이쳐 흐르거나

 

함의가 석류알처럼 빼곡히 박혀있거나

 

의식의 흐름이 징검다리를 퐁퐁 건너는 그런 시는

 

선생님께서 판단하시기로는,

 

천방지축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며 해들거리는 열네살 아이들이

 

제대로 느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라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시 중에 한 편을 골라오라고 하셨단다.

 

휴대폰을 들고 그 작은 화면 속에서 시를 찾는 따님을 위해

 

나도 잘 모르는 몇몇 시인을 천거하여 뒤적인 끝에 하나를 골랐다.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

 

 

하지만 발표할 날까지 아직 여유가 남았다고 하니

 

몇 권의 시집을 사주고 읽혀서 진짜 따님의 마음을 움직인 시를 고르게 하고 싶다.

 

엄마의 일천한 책읽기는 소설에 국한되어 있는지라

 

목적에 맞는 시인이나 시집을 고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시집이라곤 동시집도 읽어 본 적 없는 드 넓은 백지를 품안은 열 네살 소녀의

 

첫 마음을 움직여 줄 누군가를 아시는 분, 추천을 좀 부탁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버스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었더니 같은 반 남자친구가

 

    - 나도 셰익스피어 잘 알아

 

   그래? 그럼 5대 희극 중에 하나만 말해 봐

 

   - 헨리

 

   햄릿? 그건 비극이거든!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건 햄릿에 나오는 대사잖아!

 

 

중학교 첫 시험을 치고 휴대폰 압수도 미흡하여 통화정지까지, 상황이 그러하였다.

 

시험 전 날

 

어차피 지금 벼락공부하는 것보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맑게 얘기하더니

 

둘째 날

 

시험 끝나고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신나게 놀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역시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되겠다고 룰루랄라 하더니

 

역시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결과는 엉망이었다.

 

노력하지 않고 결과가 좋으면 그게 사기일텐데 다행히 세상은 여전히 정의로웠다.

 

시골이라도 늦은 밤까지 사설학원에서 수업 끝나고 자율학습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런 학원 안 다니지만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매일 한 시간 반 이상 공부하고 줄넘기 1000개 하고 잠든다는 1등하는 친구도 있다.

 

과목마다 성적이 속속 나오자 미니아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미니를 앞에 앉혀놓고 다다다다 다다다다 잔소리를 퍼부었건만

 

따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아빠가 정성껏 삶아놓은 족발 한 접시를 그 사이 깨끗하게 해치웠다.

 

사춘기 일발 장전인가?  참으로 천연덕스럽기도 하였다.

 

연대책임으로 엄마에게도 쏟아지는 잔소리를 피해서 낮에 다 못한 일을 하고 있었더니

 

따님은 몸소 엄마를 찾아와

 

시험을 그렇게 치고도 아빠한테 말 걸고 싶으냐? 하셔서

 

시험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좀 못 쳤다고 부녀 간의 연을 끊을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다는 소식을 전하며

 

파인애플 좀 깎아달라는 한가하고 기막힌 부탁을 하였다.

 

따님 말씀과 같이 시험은 못 쳤지만 그래도 내 딸인지라

 

한 조각 깎는 시범을 보여주었더니 일말의 양심이 발동했던지 직접 하겠다고 해서 두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음식물 쓰레기 통을 열었더니 파인애플 한 통의 사체가 장렬하였다.

 

동생들과 사촌언니와 두 통의 파인애플을 먹어치운 후 다시 혼자서 한 통이라니 잠시 어이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래, 지금은 놀아야 할 때지 이렇게 무덤덤했는데

 

잠깐 돌아선 사이 중학생이라고 이제는 걱정스럽다.

 

영수국 다 안되는 것도 그렇고,

아빠한테 뻣뻣한 것도 그렇고,

저렇게 먹은 게 제대로 다 소화될까 싶은 것도 그렇다.

 

미니가 아장아장 걷기도 전부터 우리 집에 들린 손님들은 진지하게 걱정을 했다.

 

여기서 애는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학교는 어디로 보낼거냐고.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는 이 곳이 미니의 동생에게 더할 나위없는 곳이라

 

미니가 일찍 집을 떠나기 싫다면 여기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

 

자사고, 외고, 과고에 진학하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관리하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쉽지 않다고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부모들이 충고를 하였다.

 

사실 면소재지의 중학교에서 놀며놀며 공부하여서는

 

안심할 수 있는 기숙사를 제공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으므로

 

너에게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이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하고나서 비로소, 뒤늦게, 어렵게, 처절하게

 

공부하고 준비하고 도전하고, 운이 좋으면 성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만족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무대책이 엄마의 유일한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당장 엄마가 그런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과 인내를 완벽하게 구현하여 보여준다고 해도 될까말까 한 일이지만

 

따님이 앞으로 그런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과 인내, 그 어려운 걸 해내길 막연히 기대했는데

 

역시나

 

엄마든 딸이든 그런 삶은 쉽지 않다.

 

공부하기 싫으면 책이라도 읽어주면 좋겠다고

 

아무런 기준없이 즉흥적으로 사들인 몇 권의 책이 전부다.

 

미니 친구녀석은 헨리로 미니를 골려먹은건지 아닌지 아직도 알쏭달쏭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새 훌쩍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미니는

 

162cm인 키나, 엄마 어린시절보다 10kg쯤은 더 나가는 몸무게나, 얼굴을 좌르르 덮은 여드름이나

 

엄마가 사다주는 물건이 맘에 안 들어서 직접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나

 

어느 모로 보아도 이제 더 이상 미니가 아닌 소녀가 되었다.

 

가끔 표독스런 말투로 짜증스럽게 엄마한데 다다다다거려서

 

사춘기 소녀로서 필요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9살 때 유산을 놓고 싸우는 형제들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라서 자신의 유서를 미리 썼다는 미니.

 

물론 그 유서의 내용은 내가 가진 용돈 중 얼마는 누구를 주고, 얼마는 어디에 쓰고 그런 것이어서

 

자신의 사후에 유산다툼이 없도록 마련된 것이었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지금은 자기도 박장대소하는 나이다.

 

 

졸업을 한 달쯤 앞두고부터 유난히 심란해했는데

 

두 동생을 남겨두고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니 동생들이 너무 걱정된다는 것이 첫번째 까닭이요,

 

지금까지 6년동안 같은 친구들과 놀고 공부했는데

 

앞으로 23명의 아이들과 한 반이 되어 같이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졸업식 날에도 송사대신 후배들이 만든 동영상을 보며 울고울고울고 그렇게 울다 웃고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교문을 나섰다.

 

 

딱 한 반 밖에 없는데 반편성고사가 웬말이냐고 투덜거리며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중학교에 가서 새 친구들 얼굴도 보고 시험도 치고

 

중학생활에 대한 안내문을 받아 돌아온 날 붉으락 푸르락 화를 냈다.

 

가방이나 옷이나 운동화나 원색은 안 되고

 

머리도 짧은 단발이나 깔끔하게 묶어 올린 것만 허용되고

 

실내화는 삼선슬리퍼로 통일하고 양말은 어쩌구저쩌구

 

금지와 통일로 대변할 수 있는 학생생활규정 때문이었다.

 

이모가 입학기념으로 사 주신 맘에 들었던 빨간 가방도 멜 수 없고

 

머리는 편하고 좋아서 몇 년 째 짧은 단발이었는데도

 

누군가 그렇게 해야한다고 하니까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국어와 사회시험도 어려웠고

 

과학은 생태계 평형을 생태계 평행이라는 오답을 써서 민망한 가운데서도

 

쉬는 시간에 낯선 아이들 틈을 안녕 안녕거리며 한 바퀴 돌았다고,

 

자기 말고도 서너명 그런 아이들이 더 있었다고 엄마에게 뿌듯하게 보고를 하였다.

 

 

나도 중학교에 진학할 때 저리 심란하고 설레었던가?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 것만 같은 엄마도

 

두 학교 생활이 나름대로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엄마가 운전을 못하니 경우에 따라서는 아빠가 하루에 두 번 아이들을 데리러 다녀야 하고

 

학교 행사도 모두 다 두 번씩 치러야하고

 

무엇보다 막내가 형이랑 별탈없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늘도 눈이 내렸지만

 

눈 내려 쌓이는 소리가 봄이 오는 소리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와보니 미니는 초등학교에 이제 갓 입학을 했는데

 

어느 새 6년이 흘러 다가오는 겨울이 지나면 졸업을 한다.

 

깡그리 잊은 일들이 주저리 주저리 적힌 글들을 읽다보니

 

지금 일들도 많이 적어두면

 

오늘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보는 날에 감회가 새로우리라 싶다.

 

 

이틀 후에 아이들이 운동회를 한다.

 

시골운동회는 여전히 큰 행사여서

 

학부모회에서 음식도 준비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종일 논다.

 

 

어느 해에는 쇠고기수육을 하고

 

그 다음 해에는 초대형 쇠솥을 옮겨다 걸고 육개장 200인분을 끓이고

 

또 어느 해에는 흑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요리조리 요리하고 조리했는데

 

올해는 무슨 음식을 하면 좋을까?

 

 

미니아빠가 궁리한 끝에 아마도 아이들이 프라이드 치킨에 열광하리라 짐작했다.

 

토종닭을 잡아서 포도씨유에 튀겨 30~40명이 나눠먹었던 적이 한 두 번 있었던터라

 

그 서너배 쯤 준비하면 운동회 날도 나눠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우리 집까지는 배달도 안 되거니와 평소에는 금지된 음식이다보니

 

모범답안은 물어보나마나 정해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열화와 같은 성원을 기대하며 미니에게 일렀다.

 

" 느그 반 아~들은 운동회 때 머 먹고 싶은지 한 번 물어바라."

 

 

그리하여 6학년 아이들 9명이 먹고 싶은 음식을 투표로 정하기로 했는데

 

3위 1명의 선택은 추어탕

 

2위 2명의 선택은 순대국밥

 

나머지 6명의 선택을 받은 대망의 1위는?

 

 

미니아빠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고 육개장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도 그냥 육개장이 아니라 쫄깃쫄깃한 소 내장 듬뿍 썰어넣은 육개장이란다.

 

선생님과 하동읍 행사에 갔다가 점심으로 짜장면 사 주신다는 걸 마다하고

 

돼지국밥 먹고 싶다고 그리로 몰려갔던 아이들다운 선택이다.

 

미니아빠는 내일 하루종일

 

아이들과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을 육개장 끓이느라 동동거리면서 또 행복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니가 학교에 들어갔다. 

첫 아이가 첫 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3년 동안 유치원을 다닌 곳이어서 그런지 엄마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가슴 벅차고 감회에 젖는 일은 유치원에 입학시킬 때 미리 다 치른 것 같다.

아빠는 지난 개학날이 입학식인 줄 알고 맛있는 것을 사들고 들어오시기도 했고 

미니는 1학년은 공부를 많이 잘 해야 한다는 선배들 ㅋ의 조언을 듣고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다. 

입학하기 전 보름 동안  

아빠가 아무리 읽어보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천자문도 열심히 읽고 

날마다 받아쓰기에 열을 올렸으며 심지어 어렵다고 싫어하던 어린이 영어방송까지 챙겨보았다. 

놀러 온 언니들과 더하기 빼기도 세로셈까지 배웠을 정도다. 

그런 나날이 지나고 두둥~! 드디어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결론은 일요일이 싫어졌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토요일까지 놀토라니 정말 벌써부터 한숨이 나는 일이란다. 

학교라는 장소나 급식시간 따위에는 이미 완전히 적응한 상태인데다 

유치원에서 같이 올라간 여자친구 삼총사도 있어서 낯설고 어려운 일은 거의 없는데다 

선생님도 작년에 4학년을 맡으셨던 낯익은 분이라

친구들과 뛰어 놀고 공부도 조금 하고 선생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교가도 부르니  

날이면 날마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단다. 

알고 보니 1학년엔 쉬는 시간도 있고,공부도 그리 어렵지 않으며 

첫 날엔 선생님 전화번호 끝자리 맞추는 퀴즈를 풀어서 막대사탕까지 상으로 받았다. 

게다가 늘 동갑친구에 목말랐는데 이번에 함께 입학한 친구들이 무려 12명이나 된다. 

남학생 7명과 여학생 5명이 함께 공부하는데 둘쨋날 또 놀랍고 신기한 경험을 했으니 

미니랑 실수로 부딪친 남학생이 글쎄 미안하다고 사과씩이나 했다는 것이다. 

남학생이 놀리고 때리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부딪친 것까지 사과를 하다니 친구들 중에 가장 착하고 의젓한 것 같다고 한다. 

유치원생도 올해는 현재 9명이고 4월에 한 명이 더 들어오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작년보다 학생 수가 무려 15명이나 늘어나 학교에 활기가 돈다.  

선비님같이 의젓한 이 남학생처럼 대도시에서 살다가

(미니 표현에 의하면)  "시골에 한 번 살아보려고" 내려온 아이들이 제법 많아서  

엄마가 아는 집만 해도 너댓 집에 아이들이 여덟 명이다. 

게다가 화개장터 근처에 살면서 가까운 학교를 두고 쌍계에 입학한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큰 산의 품에 안겨 조용하고 아담한 학교 모습도 예쁘고

전교생을 오후 다섯시까지 돌봐주는 것도 일하는 부모들에겐 큰 도움이 되어서인가 보다. 

아뭏든 미니는 정말정말정말정말 재미있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무집 2010-03-0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미니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군요.
엄마는 시큰둥한데 미니는 노토랑 일요일이 싫을 정도로 신난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저도 완도 살 때 이렇게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울 아이들 다닌 학교는 읍내에서 가장 큰 학교(전교생 1200명 정도나 되는)였거든요.
시골 학교면서도 겉멋만 잔뜩 들어 있는 학교였어요.

2010-03-07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8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8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