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닭장에는 매일 알을 낳던 암탉 6마리와 새벽마다 홰를 치던 수탉 1마리를 비롯해서
중병아리보다 더 자란 녀석들을 사와서 석 달 정도 길렀으니
곧 알을 낳을거라고 기대했던 오골계 10마리,
다 자라 키가 1미터도 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암거위 2마리,
거짓말 좀 보태서 100개쯤 되는 알을 품어서 깨어난 대여섯 마리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병아리 한 마리가 제법 자라 종종거리고 뛰어다녔고
보름 쯤 전에는 몸통이 어른 주먹만 하고 귀는 어른 가운뎃 손가락만큼 긴 토끼 세마리가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면서 온갖 음식찌꺼기도 처리해주고 달걀도 주었다.
혹시 족제비 같은 녀석이 땅을 파고 들어올까봐 땅바닥까지 늘어지게 철망을 치고 지붕도 덮어
위에 열거한 녀석들 모두가 한꺼번에 같이 살아도 닭장은 넉넉한 공간이었다.
그랬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 우리 집 상황이 꼭 그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이중창을 꼭꼭 닫고 밤을 보냈다.
새벽에는 비가 들이붓고 가까운 곳에서 천둥이 치는 바람에 집이 통째로 울리고 흔들렸다.
당연히 집 안에서 잠자던 어른 5명은 잠을 설쳐서
늘 새벽에 일어나 집 안팎을 돌아보는 미니아빠도 7시가 가깝도록 늦잠을 자고 말았다.
친정아버지는 멀리 출타하시느라 5시에 집을 나섰고
어제 먼길을 다녀오시느라 피곤하셨던 어머니도
아버지를 배웅한 뒤 그 시간에는 깜박 깊은 잠에 빠지셨던 모양이다.
거위가 꺽꺽거리고 그 많은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푸드덕거렸을텐데
어처구니 없게 아무도 듣지 못했다.
토끼 두 마리가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서 겨우 살아남았다.
거위들은 목이 물려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나머지 녀석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희생되고 말았다.
걸어서 한 시간 채 걸리지 않는 산아랫마을 민박집에서 기르는,
간밤에 개 집에 물이 차서 새벽에 풀어놓았다는 사냥개 두 마리가
철망을 물어뜯어 구멍을 내고 닭장에 들어와 이런 짓을 저지르고는
마지막에야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간 미니아빠에게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참변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거의 울부짖다시피 조카이름을 불러대는 미니아빠 목소리를 듣고
오늘은 또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두들 심란한 마음에 아침도 굶고 어쩔 줄 몰라했다.
미니도 잔뜩 울상을 지었고 분노를 했다.(이 문장은 미니가 씀)
달포 전에 아랫마을 참 좋으신 어르신이 기르시는 닭 아홉 마리를 물어 죽였으니 조심하라셔서
매일 닭장 문도 꼭꼭 걸어잠그고 나름대로 단속을 했는데 철망을 물어뜯을 줄이야...
여러 해 전에 다른 어르신이 염소를 기르실 때 일곱 마리가 희생될 때까지도
함부로 풀어놓았을 뿐 아니라 증거가 없다고 염소 한 마리만 사다주었단다.
심지어 멧돼지도 잡았다나!
닭도 닭이지만 얼마 전 3번이나 산길을 혼자 걸어내려갔던 둘째가
산길에서 그 개를 혹시 마주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미니 외할머니도 아이들 잘 보살피라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개를 닭장에 가두어 묶어놓고 개 주인을 데려와 보여주고선 개를 팔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해 동안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는데도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개를 풀어놓곤 했던 개주인이
당장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지 의심스럽다.
아랫마을 어르신은 토종닭 아홉마리 값으로 10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보상을 받았다지만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떠난 생명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무엇모다 아이들이 걱정이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살아남은 토끼 두 마리는 라면상자 구석에서 웅크리고 쉬고 있다.
먹이도 거의 먹지 않고, 오후가 되어서야 접어서 딱 붙이고 있던 귀를 조금 세워올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