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쌀쌀해진 날씨에 혹시 열려있는 창문은 없는지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창호지 한 겹 발린 부엌문 밖이 훤하길래  

바깥등이 켜져있나 하고 스위치를 바라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어인 일일까 무심하게 문을 열었는데 한가위 하루 지난 달이 구름 사이에 둥실 떠 있었다. 

온 세상이, 아주 작고 세세한 것까지 오롯이 드러나도록 

글자 그대로 대낮같이 환했다. 

정말인지 아닌지 몰라도  

어디선가  보름달보다 열엿새달이 더 동그랗고 환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무집 2009-10-06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 자락에서 바라본 달이로군요.
완도에서 보는 달만큼이나 아름답네요.

2009-10-24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년에 이삼백 포기 담았던 김장이 반응이 좋아서 용기를 얻었는지 

올해는 천 포기 쯤 담겠다며 배추 모종 1000주를 사다 옮겨심었다.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일 해주실 분을 청하고 가족들이 도와서 심었는데 

비는 커녕 마른 날이 계속 되어서 아침 저녁으로 물 주느라 지극 정성을 들였다. 

보기엔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 밭이라도 물을 촉촉히 젖을만큼 흠뻑 주려니 

이만저만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큰 물통을 하나 사서 물을 모으고 결국 작은 스프링쿨러 하나를 설치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나 편리한지 스위치만 올리면 츱츱츱츱 돌아가며 목마른 배추를 기른다. 

이런 걸 도대체 누가 발명한 걸까 남편이랑 둘이서 감탄 또 감탄했다. 

어느 새 푸른 잎이 제법 자라서 미니 손바닥만하게 컸다. 

벌써부터 군데군데 벌레먹은 자리가 보여서 약물 주는 것으로 안 되면 벌레잡을 일이 걱정이다. 

(나는 아이들 핑계대고 밭일이나 닭장 돌보기는 아예 손도 대지 않지만 말이다.^^;) 

 

어제는 늦게 잠자리에 드는데 츱츱츱츱 소리가 나서  

혹시 스프링쿨러 끄는 걸 잊었나 화들짝 놀라 나가보았지만 아니었다. 

배추밭에 신경을 쓰다보니 환청이 들리나 픽 웃으며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유치원 가는 미니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창가에 선 오동나무 위에서 

선명하게 츱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츱츱츱츱 츱츱츱츱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참 특이하게 우는 새였다.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집 닭장에는 매일 알을 낳던 암탉 6마리와 새벽마다 홰를 치던 수탉 1마리를 비롯해서 

중병아리보다 더 자란 녀석들을 사와서 석 달 정도 길렀으니  

곧 알을 낳을거라고 기대했던 오골계 10마리,   

다 자라 키가 1미터도 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암거위 2마리,   

거짓말 좀 보태서 100개쯤 되는 알을 품어서 깨어난 대여섯 마리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병아리 한 마리가 제법 자라 종종거리고 뛰어다녔고 

보름 쯤 전에는 몸통이 어른 주먹만 하고 귀는 어른 가운뎃 손가락만큼 긴 토끼 세마리가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면서 온갖 음식찌꺼기도 처리해주고 달걀도 주었다. 

  

혹시 족제비 같은 녀석이 땅을 파고 들어올까봐 땅바닥까지 늘어지게 철망을 치고 지붕도 덮어 

위에 열거한 녀석들 모두가 한꺼번에 같이 살아도 닭장은 넉넉한 공간이었다. 

그랬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 우리 집 상황이 꼭 그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이중창을 꼭꼭 닫고 밤을 보냈다. 

새벽에는 비가 들이붓고 가까운 곳에서 천둥이 치는 바람에 집이 통째로 울리고 흔들렸다. 

당연히 집 안에서 잠자던 어른 5명은 잠을 설쳐서  

늘 새벽에 일어나 집 안팎을 돌아보는 미니아빠도 7시가 가깝도록 늦잠을 자고 말았다.  

친정아버지는 멀리 출타하시느라 5시에 집을 나섰고 

어제 먼길을 다녀오시느라 피곤하셨던 어머니도 

아버지를 배웅한 뒤 그 시간에는 깜박 깊은 잠에 빠지셨던 모양이다. 

거위가 꺽꺽거리고 그 많은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푸드덕거렸을텐데  

어처구니 없게 아무도 듣지 못했다. 

 

토끼 두 마리가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서 겨우 살아남았다. 

거위들은 목이 물려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나머지 녀석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희생되고 말았다. 

걸어서 한 시간 채 걸리지 않는 산아랫마을 민박집에서 기르는,

간밤에 개 집에 물이 차서 새벽에 풀어놓았다는 사냥개 두 마리가 

철망을 물어뜯어 구멍을 내고 닭장에 들어와 이런 짓을 저지르고는  

마지막에야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간 미니아빠에게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참변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거의 울부짖다시피 조카이름을 불러대는 미니아빠 목소리를 듣고 

오늘은 또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두들 심란한 마음에 아침도 굶고 어쩔 줄 몰라했다. 

미니도 잔뜩 울상을 지었고 분노를 했다.(이 문장은 미니가 씀)

 

달포 전에 아랫마을 참 좋으신 어르신이 기르시는 닭 아홉 마리를 물어 죽였으니 조심하라셔서 

매일 닭장 문도 꼭꼭 걸어잠그고 나름대로 단속을 했는데 철망을 물어뜯을 줄이야...  

여러 해 전에 다른 어르신이 염소를 기르실 때 일곱 마리가 희생될 때까지도 

함부로 풀어놓았을 뿐 아니라 증거가 없다고 염소 한 마리만 사다주었단다. 

심지어 멧돼지도 잡았다나!

 

닭도 닭이지만 얼마 전 3번이나 산길을 혼자 걸어내려갔던 둘째가 

산길에서 그 개를 혹시 마주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미니 외할머니도 아이들 잘 보살피라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개를 닭장에 가두어 묶어놓고 개 주인을 데려와 보여주고선 개를 팔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해 동안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는데도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개를 풀어놓곤 했던 개주인이  

당장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지 의심스럽다. 

아랫마을 어르신은 토종닭 아홉마리 값으로 10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보상을 받았다지만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떠난 생명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무엇모다 아이들이 걱정이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살아남은 토끼 두 마리는 라면상자 구석에서 웅크리고 쉬고 있다. 

먹이도 거의 먹지 않고, 오후가 되어서야 접어서 딱 붙이고 있던 귀를 조금 세워올린 모습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9-07-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미니가 얼마나 놀라고 상처받았을지.
그 생명의 값과 놀람의 값이 어찌 보상될 수 있을지.
덩달아 울상 지어 봅니다.

miony 2009-07-15 19:29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분노라는 단어를 끄집어 낸 걸 보니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울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무해한모리군 2009-07-1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조카가 병아리를 사와서 키운게 닭이 되었는데,
아파트에 더 놓고 키울수가 없어 고향집으로 보냈답니다.
그런데 들짐승이 와서 물어가 버렸어요..

저희는 아직 조카한테 말을 못했어요 --;;

miony 2009-07-15 19:30   좋아요 0 | URL
친정아버지도 병아리가 들짐승한테 잡아먹힌 뒤로 닭장을 걷어버리셨답니다.

알맹이 2009-07-1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진짜 분노할 만하다. 정말 어이 없는 사람들이네.. 수민이 충격이 컸겠다. ㅠㅠ

소나무집 2009-07-1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서운 개네요.
작년 여름방학 때 친정에 갔을 때 일이 생각나네요.
집에서 키우던 닭 몇마리가 낳은 알이 마침 병아리가 되어서 쫑쫑거리고 다니더라구요.
아이들이 예뻐라 하면서 들여다봤는데 밤에 어떤 것이 와서는 몽땅 물어가버렸어요.
털만 남긴 채... 얼마나 허탈했는지...

miony 2009-07-17 23:11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산아랫마을 염소도 3마리 물어죽였고 전기검침하시는 아저씨도 물리셨다는데 어떻게 아직 기르고 있는지 답답하고 무섭더라구요.

2009-07-16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질녘 고성 할머니 댁 마당에 나와 노는데 제비 떼가 날아다녔다. 

신기에 가까운 날개짓으로 빠르고 낮게 처마 끝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새들이라면 긴 서까래와 대들보가 만나서 만드는 공간에

실수로라도 들어간다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파다닥거릴 듯 한데 

제비는 늘어진 줄넘기 모양(양쪽이 벌어진 U자라고 해야 할까?)으로  

눈으로 쫓기도 힘들만큼 빠르게 쪽마루 천장과 마당을 들고 나면서 부지런히 지푸라기를 물어날랐다. 

오래된 집이라 얼키고 설킨 전깃줄 위에 두 마리가 앉아 지지배배 지저귀는 모습을 보니 

선명한 흑백이 대비되는 작고 날렵한 몸매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강남갔다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제비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듯 하다. 

미니도 제비가 우리 집에 집을 짓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언젠가 작은 언니네가  

베란다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그냥 두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 엄마가 여쭈어보니

할머니는 어제 이미 짓고 있는 제비집을 한 번 걷어내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비는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다시 집을 짓는 모양이다.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하고 너덜이로 돌아왔다. 

 

산 속이라 할 만한 너덜이와는 달리  

고성 구만은 화산분화구가 만든 들판이라 날아다니는 새들이 많이 달랐다. 

제비도 참새도 떼지어 날아올라 눈길을 끌었는데 너덜이에는 제비도 참새도 없다. 

이름이 궁금한 온갖 종류의 산새가 있을 뿐. 

그나마 꿩, 까마귀, 까치는 이름이 분명하고 눈에 가장 많이 띄는 새들이고 

뻐꾸기와 소쩍새는 울음소리를 들려주어 존재를 알 수 있지만  

방 앞에 선 나뭇가지에 가장 흔히 날아드는 몸집이 자그만  

아마도 박새와 어쩌면 종달새, 또 어쩌면 동고비 그들은 울음소리도 이름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06-1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그런 걸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지요.^^
우리집엔 97년에 제비집 지어 새끼를 두 배 내더니 그동안 안 오다가
작년에 10년만에 다시 와서 살고 있어요. 아침마다 부지런한 제비소리에 잠깬답니다.^^

2009-06-20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9-06-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도에 와서 살면 제비도 보고 산도 보면서 자연속에 파묻혀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는 곳이 아파트, 그것도 12층이다 보니 도시 삶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땅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병아리들이 상자 밖으로 나왔다. 

예상해던 것과는 달리 달랑 두 마리 뿐이었지만 

보송보송 솜털을 달고 삐빅거리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닭장 안을 돌아다닌다. 

어제 페이퍼를 쓰고 오늘 유심히 살펴보니 초보엄마닭들도 어느 새 더 자라서 

더 이상 올리브색이 아니라 짙은 녹차염색 옷 색깔이라고 해야할까 

노랑과 갈색 빛이 도는 황토색 바탕에 검정무늬가 있는 깃털이었다. 

병아리들도 올리브색 더하기 녹차염색한 색 바탕에  

머리꼭지에서 등 쪽으로 고동색 깃 털이 눈 내린 듯 자리를 잡은 모습이다. 

 

오골계 중병아리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서슬 퍼런 엄마닭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번개같이 날아서 단숨에 쫒아버렸다. 

병아리가 두 마리이다보니 한 마리는 이쪽, 또 한 마리는 저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엄마는 계속 꾸룩꾸룩 한 데 모으기 바쁘고 

아직 깨지 않은 알들도 계속 품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상자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무척이나 분주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 녀석은 엎드려 버둥거리며 울고 

또 한 녀석은 엄마 꼬리 잡고 가는 곳마다 종종거리고 따라다니고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라면서 날마다 들꽃다발 만들어오는 나머지 한 녀석에 둘러싸인 채 

이리 종종 저리 종종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 같아보인다. 

그래서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아뿔사! 

가스렌지 위에는 연근조림이 곧 타들어 갈 태세인데다 

재민이는 엎드려 울다가 목이 쉬었다. 

아침부터 남의 새끼에 넋을 빼앗겨 내 새끼를 울리고 말았지만 

갓 세상에 나와 한 줌도 안 되는 그 녀석들이 지금도 눈에 아른아른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05-2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새끼에 넋을 빼앗겨 내 새끼를 울리고 말았다~~ 에 미안하지만 웃었어요.ㅋㅋ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