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에서 다비까지
병진 지음 / 문이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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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하나 만드는것이 결코 쉽지 않다. 원고가 마련이 되어도 책의 구성을 논해야 하고, 차례와 순서를 정하는 일도 그리 만만한 일이 못된다. 그런데도 어느 스님의 지독한 열정으로 200여 페이지의 책이 단 보름만에 만들어져 출간이 되었으니, 어찌 인간의 하고자 하는 의지를 막을 수 있을소냐....

  이 책은 불교의 종단중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의 종정(宗正) 혜암(慧菴) 대종사의 급작스러운 열반 소식을 접하고 해인사로 달려간 한 스님이 열반이후부터 다비까지의 각종 장의진행 절차를 사진으로 담은 것으로 일반인들은 다비(茶毘)라는 장의 절차를 본다는것은 힘든 일이며, 불교에서도 위대한 스님이 아닌 보통 스님의 열반시에는 일반 절차에 따르지만 나름대로 소위 고승이라고 불리는 스님들의 열반시에는 대규모의 장례행사를 치루는데 혜암 큰스님도 불교계의 고승으로 대규모의 장례를 치루게 되었으며, 이런 대규모의 장의 행사를 '병진'스님이 사진으로 찍고 글을 써서 출간한 것으로 장례의 준비단계부터 사진이라는 기계로 다비까지의 7일간을 기록한 자료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다비'의식의 절차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열반이란 '생'과 '사'의 인연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혜암 큰스님은 2001년 마지막날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오전 10시 가야산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모습속에 열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장의 준비가 시작된다.  이 책에는 제 1장에서 생전의 혜암스님이 정진하던 거소를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는  제 2장은 혜암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해인총림으로 모여드는 스님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해인사는 불법인 대장경을 모신곳으로 法寶寺刹로 수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을 닦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기에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그늘을 찾듯 그들은 서둘러 거룩한 스승이 계시던 해인사를 찾는 것인데, 이런 제자들의 귀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상좌 스님들이 호주의 역할을 하고 제방의 스님들은 절간에 발을 들여 놓기가 무섭게 분향소를 찾아 예를 갖춘다.

 제 3장은 '산자와 사자의 공양'으로 절간을 찾는 많은 스님들을 비롯한 조문객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의 상차림과 특별히 다를것이 없으나 산중 사찰에서의 식사는 그 절차나 분위기마저도 엄숙하다. '병진'스님은 이런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 4장은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는 장례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과 그 분주함 속에서의 정성스러움을 구석진 곳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록하고 있다. 명정과 만장을 써야하고 대나무로 만장의 깃대를 만들어 세워야 하며, 한편에서는 영결식장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직 극락으로 가는 배를 만들지 못했음에도 망자는 어찌 그리 편안하고 즐겁게 잠 만 자고 있는가? 꽃으로 장식된 상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 5장은 '연꽃으로 피어난 다비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다비단이란 열반한 스님의 사체를 불태우는 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비단의 제작은 지극정성을 들이기에 일반 공개를 하지 않는데 저자인 '병진'스님은 한마디로 스님이라는 직권을 남용하여 다비단의 제작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다비단의 제작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겉으로 보아서는 연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이용하는 장제장의 형태를 모두 갖추어 연꽃속에 숨겨야만 다비가 가능하기에 연꽃속에는 우선 장작이 차곡차곡 쌓인다. 다비중에 불붙은 나무가 흐트러지지 않게 굵은 철사로 영글게 묶으며, 그 나머지 공간은 나비장으로 틈새가 없게 만든다. 마른 나무는 안쪽에 숯과 같이 넣고 바깥쪽은 젖은 나무로 나무 광(壙)을 만들고 그 촘촘히 쌓인 나무 광 둘레에 이엉을 잇는다. 이엉을 이은 후에는 온통 흰 천으로 뒤덮어 하얀 남골당을 만들고 그 바깥쪽 아랫부분부터 수십만개에 이르는 연잎을 하나 하나 일일히 풀칠하고 붙여가며 하나의 커다란 연꽃이 만들어질 때 드디어 다비를 위한 연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제 6장은 '영결식'편으로 고인이 살아있는 사람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절차입니다. 평시에 혜암스님은 장례행렬에서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1사람의 산 사람을 따라가노라"고 하였는데 정말, 한 사람의 죽은 자를 위하여 누가 망자이고 누가 살아있는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영결식이 치뤄진다. 제 7장은 '누가 불타는 집에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다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은 항상 불타고 있으며 그 대들은 항상 암흑속에 있으면서 왜 빛을 구하려 하지 않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다비는 죽은자의 무덤을 불태우는 것으로 불길이 다으면 죽은자의 집은 화택(火宅)으로 변한다. 그 불길의 날름거림은 하늘로...하늘로 올라 텅빈 공간속으로 사라진다. 그러기에 스님들은 '無'를 말하며 평생을 '空'으로 사는가?

  달도 자고, 바람도 자고 밤이 깊어가면 이제는 하나 둘 산문을 찾았던 조문객들도 성긴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먼 길을 돌아간다. 신 새벽이 다가오면 다비단은 마지막 불길로 길게 용트림을 한다. 아침이 밝아오면 사그라진 다비단 속에서 스님이 남긴것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사리(舍利)다. 부처의 다비후 8만 4천개나 나왔다는 영롱한 사리는 살아 생전 스님이 불심을 마음속에 새기며 정진한 결실이라던가?  평소에 인간으로 태어나 사바세계에서 보여주던 혜암스님의 모습이 아닌 참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리라....

  이렇게 7일간의 장의는 끝났다. 이 책의 뒤쪽에는 영결식 자료인 열반송과 추도사, 그리고 영결식 절차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이지 않다. 돌아가신 큰 스님의 장례절차와 이러이러한 추도사가 있었다는 기록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만든 '병진'스님은 한 마디로 대단하다. 스님으로서 "장례의식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보기 드문 절집의 장례과정을 담은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동안 몇 분의 큰 스님들이 열반에 드셨음에도 이런 세세한 모습을 담은 자료집은 없었다. 이 책이 특별하게 잘 만들어졌다거나 일반인의 시각에서 관심을 끌만한 대목은 하나도 없으나 절집 식구들에게는 말로만 들어오던 큰 스님의 다비의식을 한권의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며, 겸하여 우리 문화의 오랜 영역을 차지하며 면면히 내려오는 불교의 다비의식을 기록으로 남겼다는데 그 가치와 의의를 찾는다 할것이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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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2004-11-0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진스님께서 여러면에서 대단한 스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군요. 다비식 사진도 수준급이시구, 내용도 볼만하더군요. 제가 가까이에서 자주 뵙기 때문에 저역시 병진스님의 화승으로서의 그릇을 알고 있답니다.

미술사나 미학에 대한 부분에 일반인학자(교수들)보다 넓은 식견을 가지고 계신분이시기도 하죠. 오늘도 아름다운(미)에 대한 토론에서 기염을 토하셨답니다.

동서미학과 미술사를 모두 섭렵하시고 승려로서 경에대학 지식까지 해박하시니 아름다움(미)의식에 대한 명쾌한 답을 쉽게 끌어내시더군요. 오늘의 한마디는 미술계를 이끌어나가는 선각자들의 존재경향적 관념(제행무상)에 의해 아름다움이 가꾸어 진다면서 우현 고유섭선생님도 미에대한 정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는 말로 결론을 대신했답니다.

수수께끼 2004-11-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제자 가섭에게 변을 가르키시며 '저것이 무엇인가?'를 물으셨고 제자의 모른다는 물은에 "꽃이로다"는 말로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병진스님의 미에 대한 결론은 단순한 선념적 사고에서의 판단으로 보여지며 각양각색의 주관속에서 미의 기준 또한 각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획일화 될 수 없는 것이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현선생은 섣불리 미에 대한 결론을 단정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미의 본질이 네가 주장하는 미의 본질과 다를것임에 섣불리 내가 미의 개념을 정념하는것은 너의 미적 개념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다"는 말에서 처럼 미란 선각자들이나 예술가의 관념적 접근과는 다른것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다만, 미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하므로써 개념의 혼란과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미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외재된 형태미를 통한 내재적 잠재미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답을 논할수는 없으나, 자칫 남의 미에 대한 관점과 관념속에 스스로의 미에 대한 개념이 와해되고 있지 않은가를 경계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수련 2004-11-0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이 있을리 있겠습니까? 미 라는 한자어 자체가 추상적 이 잖아요~~미술을 그리고 미술을 가르쳐도 미는 동그라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