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잇점은 자연과 함께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제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은 약 500m의 비포장 길이며 길 양 옆으로는 포플러와 소나무가 높게 자라고 그 그늘로 숲의 터널을 만들어 주고있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을씨년스럽겠지만 요즘 같은 성하의 계절에는 정말로 더 없는 산책길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14만평의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희 사무실은 대부분의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로만 포장을 하지 않아 아직도 건조한 날에는 흙먼지가 일고, 비가 오는 날에는 물 웅덩이가 만들어지고는 합니다. 그런 길이 이 넓은 곳에 요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금년 초...이곳 진입로의 포장 계획에 대하여 저는 운치를 내세워 반대를 했고 제 의견은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져서 포장으로 운치에 손상을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서 이 길도 포장이 되겠지만, 최소한 가슴속에 작은 정서라도 담고 있다면 이 길에 아스팔트액을 뿌리는 몰상식한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며칠동안 출근길과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길에 이 길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비교적 넓은 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복분자였습니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웃고, 초여름에는 넝쿨장미와 밤 꽃, 그리고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며, 이름 모를 수 많은 들풀들이 제 나름의 멋을 부리는데 그 가운데 빨간 열매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복분자의 꽃을 저는 보지 못했답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뻘겋게 익어가니 금방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복분자 열매는 아침에 봉우리를 틀면 며칠을 걸려 열매를 살찌우는게 아니었습니다. 연분홍 속살을 세상에 내밀고는 하루 정도만 지나면 아주 빨간 석류알처럼 변하고는 이내 종족보존을 위해 땅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술을 담을 수 있는 작은 병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빨갛게 익은 복분자 열매를 땄습니다. 줄기에 잔가시가 있어 잘못 건드리면 가시가 손에 닿아 찔리기도 하였지만 잠깐 사이에 두 손바닥 가득 될 정도로 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봉오리가 벌어져 익어가는것을 제외하고 곧 떨어질 열매로만 모았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병속에 켜켜히 쌓고는 설탕과 술을 부었습니다. 빨간 복분자가 술병에서 익어가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아마 이런 과정은 복분자가 열매를 맺는 일을 멈출때 까지 계속될것 같습니다. 그러면 작은 술병이지만 제법 될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전 태풍 영향권에 접어들면서 강한 비바람에 많이 떨어졌던 밤꽃도 이제는 작지만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해당화는 꽃이 떨어지니 그 꽃이 앉았던 자리가 제법 통통하게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 열매는 약재로도 활용된다고 알고 있는데 제대로 익으면 또 다른 술병에나 가득 담아 볼까요?

 나무들 뿐만이 아닙니다. 다람쥐, 청설모가 길을 가로 질러 저만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것은 물론이고, 밤에는 어디에 숨어 있다 나왔는지 사슴벌레, 하늘소, 풍뎅이 등이 가로등의 불빛을 찾아 몰려듭니다. 발 아래에서는 길다란 꼬리를 잇는 개미들의 행렬이 보이는데 아마도 애벌레를 물고 가는것으로 봐서는 대단한 이사 작업이 한창인것 같습니다. 베짱이도 방아깨비도, 메뚜기도, 매미도 쓰르레기나 심지어는 딱따구리 까지도 이 동네에 함께 사는 동네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연을 떠날 수 없기에 이렇게 작은 숲이나마 의지하고 살아가려는것 같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약 1시간의 여유는 이렇게 숲의 친구들과 보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자연과 하루 하루를 같이 지낼 수 있는 행복을 안고 생활하는 사람을 손꼽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속에 있는 동안은 온갖 잡념을 다 버릴수 있어서 좋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자연만이 저의 대화 상대자이니까 말입니다. 어제 열매를 땄던 복분자의 꽃 줄기도 열매 색갈 만큼이나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병속의 복분자는 비단 하루가 지났음에도 제법 술의 색이 이쁜 분홍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 술이 익는 날...아마 복분자는 열매맺기를 중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복분자는 아름다운 빛깔로 재 탄생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술이 익으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작은 병에 담아 나눠줘야 하겠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담았노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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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수께끼님의 가까운 지인이 되고 싶네요 ^^

수수께끼 2004-07-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저는 술을 안먹습니다. 술과 인연의 고리를 끊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군요. 그럼에도 과실주는 매년 담그는데 아주 맛이 있게 담궈서 주변 분들에게 나눠주면 참 좋아들 하시더군요... 모 회사에서 나오는 산XX라는 술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거기에 담아 냉장보관을 하면 자연 숙성도 되고 뒷맛도 깨끗한 정말 맛있는 약이 됩니다....입맛 다시지마세욧!!!

sunnyside 2004-07-0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요강을 뒤집는 효능을 발휘한다는 복분자가! 지천에 열려 있단 말입니까?
수수께끼님의 근무환경이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근무환경이 그런것이 아니라 근무지 인근이 그렇다는 것이고, 제 방의 커다란 창은 서쪽으로 나 있고 에어컨도 없어서 이만저만 짜증이 나는것이 아니랍니다. 선풍기는 벽걸이인데 쑈파족에 있어 책상쪽으로는 바람도 닿지 않고...그렇다고 밖의 그늘에서 업무를 볼 수 없지 않겠어요? 뭔가 하나가 좋으면 반드시 반대급부적인것이 있게 마련인 모양입니다...에고..더워라...헥~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