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이 잦아지면서 우리 나라가 참 살기에 편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웃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기는 해도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아버려 조금 늦은 식사라도 할라치면 밥을 굶기가 쉽지만, 우리 나라처럼 24시간영업이라는 특화된 가게가 많아 어떤 먹거리나 생필품도 주변에 널려있는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은 세계 어디에고 없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가게도 별로 없었고 기껏해야 구멍가게 형태의 "점빵"이라는 이름으로 앞쪽에는 나무로 만든 사각형의 틀 속에 이런 저런 사탕을 넣고 유리로 뚜껑을 만든 장식장이 언제나 초입을 지키고 있었죠... 따라서 지금처럼 돈이 있어도 사먹을 것이 별로 없던지라 왕드로프스나 왕사탕 한 알만 입에 넣어도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결식아동이 많다고 하는데 예전의 어머니와 현재의 어머니는 사고가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똑같이 가난속에서 살았기에 반찬이야 어떠하든 도시락을 안가져 오는 급우들은 없었습니다. 보리쌀을 30%이상 반드시 넣어야 했기에 쌀밥을 먹는 집이나 깡보리밥만 먹는 집이나 도시락 뚜껑을 열면 그게 그것인양 비슷비슷해서 깡보리밥을 싸왔다고 창피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예전의 어머니는 자신은 굶더라도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은 꼭 챙겨주었는데 요즘은 돈이 없어 도시락을 못 챙겨주는게 아니라 맞벌이로 바쁘다는 핑계로 도시락을 쌀 틈이 없어 싸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많다고 합니다. 글쎄요...그만큼 의식이 변한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도시락에 담긴 반찬은 어떨까요? 반찬이야..어느 집에서 제사라도 지냈다면 그나마 전 이나 산적,고기류를 담아 올 수 있지만, 대부분의 집에서는 계란말이와 김치, 멸치조림, 그리고 콩나물 반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처럼 다양한 샌드위치나 햄버거, 또는 순 살이 듬뿍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등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또 설령 그런 반찬을 가지고 올 수 있다해도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먼저 본 사람의 반찬이 되기에 가져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도시락은 겨울철에 먹는 도시락의 맛이 제일이지요...갈탄을 지폈던 교실에서는 4교시가 시작되기전의 휴식시간에 앞 다퉈 난로위에 도시락을 올립니다. 콩나물 교실 수업이라고 좁은 교실을 꽉 채웠던 많은 아이들의 도시락은 3교시를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서시는 순간부터 한바탕의 전투를 치르고는 마치 급조된 빌딩 처럼 우뚝 솟아 있게 됩니다. 보통 50~60여개의 도시락이 좁은 난로위에 올라 앉아 있으니 그 모양은 보기만 해도 아찔아찔 하답니다. 난로는 보통 교실의 중앙에 있기에 늘 난로 주변의 아이들은 뜨끈한 열기가 직접 닿는 난로 바로위에 올릴 수 있지만 맨 구퉁이에 앉은 아이들은 언제나 고층 꼭대기에 올리 둘 수 밖에 없습니다. 맨 위에 올라앉은 것은 어떤 때는 찬밥 그대로 먹기가 쉽상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4교시 수업이 진행되고 조금씩 시간이 흐를수록 밥이 타는 냄새와 더불어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냄새가 교실에 퍼지게 됩니다. 호랑이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맨 밑에 도시락을 넣었다면 새카만 숯밥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호랑이 선생님도 시간이 지나면 도시락을 바꾸라고 말씀을 하시고 주번은 장갑을 끼고는 빽빽한 도시락의 맨 밑에 있는것을 위로 올려줍니다. 그 많은 도시락 중에서도 자기 도시락은 귀신처럼 잘 알고 있습니다. 재질이 양은이라 다 똑같을것 같지만 크기가 다르기도 하고 또 똑같은 형태라도 얼마나 오래 사용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내 도시락이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은 대부분 다 알고 있습니다. 보통 도시락의 위치 변동은 한번 이루어지는데 중간에 있던 도시락이 맨 밑바다으로 내려가 있으면 그 때 부터는 밥이 탈까봐 안절부절 하게 됩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는 우르르 달려들어 자신의 도시락을 찾아 갑니다. 어느 녀석것은 방금 갓 지은 밥 처럼 아주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적당하게 덥혀진 반면, 어느 도시락은 아예 새카맣게 타 버려서 먹을 수 없게 된것도 있습니다. 갈탄을 조금 많이 넣어 화력이 강한 날에는 밑의 도시락은 대부분 숯덩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누룽지가 도시락의 절반을 채우게 되기도 합니다. 숯덩이가 되었다고 땅을 치며 통곡을 하지도 않고 어찌어찌 먹게 되고 또 김치나 다른 반찬도 제대로 익었기에 비벼먹기에 딱 좋게 된 아이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맛있게 먹습니다. 문제는 숯덩이를 만든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혼 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의 아이들은 이런 맛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시골의 아주 한촌에서 아직도 겨울이면 나무나 갈탄을 연료로 하는 학교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학교는 보일러가 설치가 되어 있고, 최소한 석유 곤로나 전기 난로라도 있으니 예전에 맛 보았던 그런 맛있는 도시락은 이제는 보기 힘들게 되었을것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빈 도시락에 담긴 숫가락과 젓가락이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나는데, 이 소리를 벗삼아 집으로 돌아가지요....

 지금은 사무실 식당에서 마음놓고 먹을 수 있습니다. 매번 빠짐없이 식사를 한다면 아마도 비만이 될 정도의 고영양의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입니다만 아직도 도시락에 깃든 추억은 버릴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도시락을 난로위에 올려 놓고 가슴조리던 시절이 더 좋았던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사람 사는 향기를 듬뿍 맡고 싶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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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6-3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전... 왜 난로위에 도시락을 한 번도 올려놓지 않았을까요?

sunnyside 2004-06-3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닐 때에는 왕겨탄, 그리고 조개탄을 땠었어요. 수수께끼님 때랑 비교해서 큰 발전은 없었던 듯. 다만 보온밥통이었기 땜에 난로 위에 올릴 필요는 없었답니다. ^^

수수께끼 2004-06-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아마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그거 올려 놓으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밥알과 플라스틱이 뒤엉겨붙어 밥알 골라 먹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까요^^
써니옆구리님==> 조개탄이 갈탄이구요...그래서 연기가 많이 나지 않는데 수위 아자씨가 갈탄 가루 가져와서 물로 비벼서 주먹으로 만드는것도 보셨겠는데요? 에고...그리고 저보다는 덜 쉰세대이신듯...저희때는 그런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었습니다. 제 동생은 그걸 가지고 다니더군요...긴 끈에 어깨에 매고는 덜렁거리면서 말입니다 ^^~

ceylontea 2004-07-0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온도시락 아니었어도.. 안올렸던 것 같아요... ^^
그리고고등학교 다닐땐 온장고란 것이 교실에 있었어요... 그땐 그래서 온장고를 이용했지요.. 그전에는 그냥.. 찬밥을 먹었던 것 같아요... ^^ (보온 도시락 가지고 다녔던 적도 있긴 하구요.)

수수께끼 2004-07-0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온장고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었군요. 와아~ 완전히 브르주아적인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셨으니....제가 어렸을때와는 너무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