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을 맞아 방을 정리하던 중 또 한번 게으름으로 인한 혼란을 맞게 되었습니다. 늘 '나중에 한꺼번에 하지..."라는 생각이 결국은 게으름의 덕지가 되어 막상 정리를 하려면 헷살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몇가지 중요한 취미가 있습니다. 취미라면 좀 그렇지만 일단은 취미의 영역으로 넣도록 하겠는데 그 첫번째는 클래식 음반 수집입니다. 두번째는 세계 각국의 동전과 티스푼, 그리고 미니어춰 양주와 자동차, 각 나라의 담배와 술을 모으는 것이고 세번째는 우표를 비롯한 초일봉피, 시트등 우정관련 수집이며 네번째는 도서 종류로 필요한 책은 물론이고 창간호도 열심히 모았습니다.
2. 그런데 웬만한것은 취미로 수집하면서 그냥 쌓아만 둬도 되는것이 있지만(양주, 미니어춰 자동차와 양주, 동전, 우표,티스푼 등) 반드시 목록이 필요한것이 음반과 서적, 그리고 사진 원고입니다. 대학때부터 정말 죽어라고 모아온 음반은 몇 달을 걸려 분류를 하고 정리를 해서 잘 꽂아 두었기에 이제는 어느 음반에 어떤 곡이 담겨 있다는것 정도는 안보고도 훤히 알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가 된 음반은 그 후 CD라는 아날로그에 비해 조금은 날카로운 기계적 음색을 갖는 연주가 생기고 나서도 덧붙이기만 하면 되기에 크게 불편함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우표는 종류별로 분류된 수집 책에 그냥 넣기만 하면 되기에 그것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양주나 동전, 담배등은 그냥 잘 두기만 하면 되기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담배는 시간이 흐르면 담배속의 습기가 다 빠져버려 피우기는 조금 어렵게 됩니다.
3. 그런데 문제는 도서류와 자료로 찍은 필름입니다. 지금도 알라딘의 소장함에 넣고자 열심히 목록 정리를 하고 있으니 시간이 가면 다 정리가 되겠지만 가장 어려운것이 바로 필름의 정리입니다. 제가 보통 자료사진을 위해 촬영하는 필름의 양은 적게는 5통에서부터 많게는 50통에 이르는데 한롤이 통상 36컷이니까 적게는 180컷에서부터 아주 많을때는 자그마치 1800컷이라는 막대한 양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도 찍어와서 바로 현상소에 맡기면 되는데 이것 마져도 자꾸 쌓이고 현상소에 마음먹고 가기 전 까지는 그냥 방치되다시피합니다. 그냥 집 근처의 사진점에 맡기면 편하지만 저의 경우는 1통당 현상료에서만 천원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니 일부러라도 전문 현상소에 현상을 맡기는 편입니다.
4. 설을 마치고 지난 월요일 그 동안 쌓아둔 필름(100통이 조금 넘었습니다)을 왕창 현상소에 맡겨서 현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툼한 필름덩어리를 찾아 라이트박스에 비춰보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사진 자료가 각각의 피사체가 다르다면 별로 어려울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탑을 촬영한다해도 대부분의 탑은 그 특성이 있어 어디에 있는 탑이라는것을 금방 알수가 있는데 문제는 건축물이나 그림, 그리고 건물에 칠해진 단청 사진입니다. 건축물들도 특별한것은 전경을 촬영을 하기에 대부분 조금 노력을 하면 구분이 가능하지만 단청은 대부분의 건물이 비슷하여 도통 구분을 하기가 어렵다는 겁입니다. 이번에 필름을 현상하여보니 대부분이 불화와 단청 사진이었습니다.
5. 불화도 절마다 걸려있는 그림이 다른데 필름에 특정 절의 명칭이 나타나지 않으니 그 구분이 정말 어렵습니다. 지붕에 칠해진 단청의 구분은 정말 난감한 일이 될 수 밖에 없답니다. 그나마 절에 걸린 탱화나 불화는 그래도 어느 절에 걸린 것이라는것은 대부분 알기에 사진을 세심히 살피면 구분이 가능하지만 단청은 일부분만 찍은것이라 정말 구분이 어렵습니다. 어제 밤새 필름을 가지고 씨름을 했는데도 아직 1/10도 구분을 못했습니다. 현상된 필름이 어디의 단청이라는 것을 알아내야 하고 그 필름을 잘라서 마운트에 넣고 컴퓨터에서 필름마운트에 붙이는 제목을 출력하여 붙이고, 마지막으로 보관함에 넣어야 분류가 끝이 나는 것인데 도무지 구분하기가 힘들어 어제는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였습니다(꼴에 오기는 있어서 일을 끝내야만 속이 시원하고 잠도 자게 된답니다)
6. 지금도 책상위에는 필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뭐...어디의 건축물을 찍었다는것은 알수 있지만 그 건축물의 어느 부분을 찍었는가는 건축물마다 단청의 문양에 큰 차이가 없으니 구별이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충해서 분류를 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나게되지요...나중에 학회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비교 연구를 한다면 전혀 엉뚱한 자료로 비교 연구를 하는 셈이 되어버리니 그 결과는 엉터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발표하는 자료에만 사용하여 잘못 된다면 제가 비난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만에 하나 남에게 빌려준 필름이 잘못 된다면 그 책임은 더더욱 커지겠지요.
7. 그러다보니 그 못된 게으름을 탓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게으르면 빌어 먹지도 못한다"는 말도 있듯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촬영했던 지역에 다시 가서 필름을 보고 구분을 하는 방법인데 그것도 어디 지척간이라야 가능하지 지방이고 먼곳이거나 또는 해외라면 더 막막해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여간...이 모든것이 게으름 덕(?)이랍니다. 필름에 가위질을 해가면서 몇번이고 다짐하는 것이 "에고...다음부터는 좀 바지런을 떨어서 이런 일을 겪지 말아야지..." 하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께서는 저 처럼 게으름으로 인해 곤란을 겪지는 않으시는지요? 저도 다시 필름과 씨름을 해야합니다만, 제 경우를 웃어넘기지 마시고 그 때 그 때 처리하시라는 의미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게으른것이 뭐 ...자랑이라도 되는냥 말입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