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리즈먼: 이단의 역사
그레이엄 핸콕.로버트 보발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단 : 사상계·학계 등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설(說)에 대해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것.
좁은 뜻으로는 한 종교집단 내부에서 교리상의 중대한 이설(異說)을 고집하며
정통신앙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단의 이미지는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와 같이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숭상처럼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 책 "탤리즈먼:이단의 역사"에서 다루고 있는 이단종교들의 모습을 보면,
이단이 악마 숭상이 아니라, 실은 기독교의 교리에 이설을 가지고 있는 또다른 종파임을 알게된다..

기독교에서 이단이라 불뤼우는 자들은 성서의 일부를 부인한다.
야훼가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에덴동산에 풀어놓고, 절대 복종 하기를 강요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자기가 만든 꼭두각시 인간이 현명해지는 것이 두려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을 비참하게 쫓아내버렸다고 주장한다.
뭘 좀 잘해보려고 하면 중간중간 끼어들어 인간을 힘겹게 한다고 주장하고,
야훼의 아들이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존재는 믿으나 그가 인간으로써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신의 방사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두 작가는 탤리즈먼(상징, 도형, 또는 의미심장한 건축물)등을 통해,
이단종교들의 변천사와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책의 두 작가 그레이엄 핸콕, 로버트 보발은 서로 각자 파트를 나누어
이단의 역사에 대해 꽤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기독교에도, 기독교의 이단 종교에도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있는 사실과 가설들,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책을 보면서 이단종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타당성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마도 오랜 세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의 안좋은 모습과 성서의 소설에 가까운 신화성을
나 역시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서 교회를 다닌적이 있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비종교인이고, 그때 역시 친구를 따라 다닌것에 불과하지만,
성경을 읽는 동안 아주 단순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님은 왜 잔인하게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했을까.
하나님은 왜 자신들의 민족이 살기위해 다른 나라사람들을 벌해야한다고 하는 것일까.
그토록 인간을 아끼고 사랑했으면, 왜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까.

성경안에는 수많은 잔인한 이야기들이 숨겨져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자기종교 중심의 이기적인 종교같아 보인다.
왜 종교에서 (어떤이유로든) 살생을 조장하고 있는지, 어린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잘 모른다.
이런 기독교의 독단적이고, 자기지향적인 모습은 나 뿐만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의 눈에도 이기적인 가르침이라 보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단종교가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역사에서, 기독교는 역사이며, 정치이며, 권력이며, 장사이다.
끝없이 이단종교들을 핍박하고 몰살해온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다빈치 코드가 교회를 모독했느니, 뭐니해서 말들이 많지만,
이단이 핍박받던 시절에 비해, 현대에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 불릴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
그리고 아직도 프리메이슨이 현실에 남아 있는 이유는
성경속의 이론보다, 이단의 성경속의 이론이 현대에는 훨씬 잘 먹혀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초기 이단으로 보이는 카타리파, 보고밀파, 마니교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현대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까지 장황하게 풀어내며 작가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중립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가설이 진실처럼 너무 단정해버리는 것은 좀 억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이 아님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타당성 있는 책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일단은 간단한 개념 정리따위는 하지 않아서,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이를테면, "....는 설명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다른 쪽으로 흐르니, 여기서 그만..."이라는 식이거나,
"...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 모두가 알고 있을테니 생략..."이런 식이거나,
간단한 개념정리는 거의 뛰어넘어 버려서, 나처럼 역사를 잘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는 버겨워지고,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어버린다.
책을 보면서 종종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가며 보게되었는데,
이렇게 독자가 따로 공부해야할 정도로 기본적인 개념이나 정보를 놓치고 있는 점은 무척 아쉽다.

또, 이건 편집상의 문제이지만,
책 중간에 한꺼번에 끼워넣은 사진들 역시, 무성의해보이는 감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것은,
이 책에 중간중간 삽화나 사진이 삽입되었더라면 훨씬 쉬웠을텐데...하는 생각이다.
모습만 설명해놓을 뿐, 제대로된 사진이나 삽화가 실려있지 않아서 독자로서는
다른 책이라던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아보거나, 상상해볼 수 밖에 없는 불편함을 안겨준다.
이런 것 역시,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다 빼버린 걸까.
작가들같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같이 우매한 보통사람은
600페이지에 빼곡히 글만 들어찬 교과서에 가까운 딱딱하고 지루한 책은 아무래도 버겹다.
이런 점에서 어찌보면 독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당히 오만한 책이기도 하다.
책은 책이어야지, 특정인을 위한 논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쥐의 왕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가, 묘하게 매번 눈에 띄었던 소설 "쥐의 왕".
아무런 정보없이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 절판된 도서.
읽기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을 대충 별점만 훑어봤는데, 평은 그저그런 편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밌었던 소설이었다.

 
동화를 좋아한다.
현대에서 보기에는 비상식적인 중세시대의 동화를 특히 좋아한다.
잔혹함을 즐기는 나의 악취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동화속에 어렴풋이 담겨 있는 당시의 현실이 흥미롭다.
이 소설 "쥐의 왕"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독일의 설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삼은
다크환타지 소설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정치성과의 연관을 짓던데,
나는 오히려 동화의 재해석에 좀더 큰 점수를 주고싶다.
(사실 내가 정치를 잘 모르고 앞으로도 별로 알 생각이 없어서,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것 이상으로는 할말이 없다...................)
 
 
오랫동안 소원해져있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사울은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경찰은 사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울 앞에 나타나 자기가 외삼촌이라 주장하는 더러운 남자.
그는 모든 쥐들의 왕.
피리부는 사내가 동족을 몰살로 몰고간 후, 그의 백성인 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퇴물에 가까운 왕이다.
사울은 사실, 쥐의왕의 여동생의 자식으로, 반인반서이다.
인간으로써 살아온 삶을 버리고, 자신이 쥐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본능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상한 음식을 줏어먹으면서도 맛 있다고 느끼는,
평생을 살아오며 식중독 한번, 배탈한번 나지 않는 왕성한 식욕의 사울은
자신이 쥐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쥐 인간 뿐만이 아니라 새인간, 거미인간도 꽤 재밌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편, 사울의 친구들에게 피리부는 사나이가 접근해온다.
정글리스트인 사울의 친구와 친해져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나가며
더 큰 야망을 키우는 야비한 피리부는 사나이.
이책 "쥐의 왕"은
반인반서로, 인간을 유혹하는 음악도 쥐를 유혹하는 음악도 들어먹히지 않는 주인공 사울과
플룻하나로 모든 것을 조종할수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대결을 그린 책이다.

끝까지 권력을 놓치않고 꽁무늬에라도 붙어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타락한 봉건귀족을 떠올리게 하는 쥐의 왕의 모습은
우리사회에서도 많이 볼수 있는 모습이다.
꼭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권력에 찌들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또한 그렇다.
이런 모습을 멋지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러한 권력에의 탐욕은
물고 물리며 결국은 이어져나가기 떄문이 아닐까.
따라서 소설의 마지막, 모든 쥐들에게 쥐의 왕이기를 포기한 사울의 선택은 꽤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그가 원했던 것은 우두머리에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평범한 소시민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을지.

어린시절 너무나도 무서웠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동화의 패러디라던가, 원래 있는 이야기의 재해석을 원래부터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러운 런던의 뒷골목. 그 뒷골목의 가장 더러운 음식을 먹고사는 쥐.
정신없이 흩어지는 정글, 더럽고 기괴한 인상의 사람들.
이 모든 음울한 이미지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마치 액션영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읽는 내내, 젊은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소설을 쓸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으니까.
우연히 도서관에서 건져낸 즐거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씩 겁이 많은 사람들의 공포에 대해 듣게 될 때면,
'참 기발한 상상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떄가 있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그 어떤 것의 어떤 면이 두려운가를 듣다보면, 그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황당하면서도
나조차 소름끼치거나 역겨운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발한 공포심이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로 피어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떠올려낸 사람들이 겁이 많아서 공포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를 보면서 생각했다.
작가 자신이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면, 또는 작가가 그 공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과연 공포소설을 쓸 수 있을까.
무서워하면서도 즐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공포를 소재로 한 예술이 있다는 것은
이것이 인간의 내면에 내제된 잔혹함의 합법적인 방출이기 떄문이 아닐까.
공포소설의 제왕이라 불뤼는 "스티븐 킹"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시절.
사실, 한이라던가 복수심같은 피맺힌 감정이 바탕으로 깔리는 동양의 서슬이 퍼런 공포에 비해,
서양의 공포는 피상적이고 찰나적인 섬뜩함으로 일관된 느낌이라,
스티븐킹의 소설을 보면서 무서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작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했기 떄문이다.
스티븐킹은 언제나 현실에서 건져낸듯한 음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사진이 찍히듯 생생한 서술을 해나가고,
그것이 스티븐킹의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뻔한 헐리우드 식의 진행을 보여주지 않는 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어린아이는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던가, 재난에서 빠져나와 모두 죽고 주인공은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식의 결론 말이다.
내게 있어서 해피엔딩의 결론은 공포가 아니다. )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는 그의 이런 개성이 장편뿐만이 아니라 단편에서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화라던가 서서히 진행되는 심리묘사로 독자를 압박해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떤 단편들은
"안개", "원숭이", "카인의 부활",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노나","서바이버 타입"이었다.

 

*안개
재난 영화에서 괴수영화로 스물스물 교묘히 바뀌어가는 듯한 단편
이 단편을 사자성어로 축약하자면,  "설상가상", "진퇴양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마을에는 짙은 안개가 깔리고,
아들과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어간 데이비드는
안개속의 알수 없는 괴생명체에 의해 마을 사람들과 슈퍼마켓에 갖히게 된다.
단단한 슈퍼마켓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밖으로는 곤충과 동물을 뻥튀기 해 놓은 듯한 괴생명체가 먹이를 낚아챌 순간만을 노리고 있고,
안으로는, 종말을 경고하며 희생양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광신도에 의해 사람들은 분열해나간다.
괴물에게 잡아먹혀 죽느냐, 광신도들에게 아들을 희생양으로 내놓느냐.
진퇴양난의 고비에서, 나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단편이었다.
장편이라 해도 믿을 만한 분량이고, 읽으면서 내내 "이건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쇼생크탈출"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가 영화로 만들어낸단다.
야호우~

*원숭이
길에서 파는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태엽인형 무리를 보고, 문득 공포를 느꼈다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원숭이"는
버려도 버려도 되돌아오는 원숭이 인형과의 평생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신경질적으로 심벌즈를 쳐대는 원숭이 인형.
심벌즈가 울릴 때 마다 사람이 죽어나간다.
사실 좀 흔한 얘기여서 신선할 것은 없으나
심벌즈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옭아매는 듯한 꽤 긴장감 넘치는 단편이었다.

*카인의 부활
사실 이 단편은 확실히 어떤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위기만 남기는 듯한 이 짧은 단편은 구스반산트의 영화 "엘리펀트"의 후반부를 옮겨온 듯한 인상이다.
한 학생이 무고한 사람들을 총기로 난사한다.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신에게 잡아먹힌 카인을 떠올리며,
자신을 카인으로 간주하며.....
왜? 친구와의 짧은 대화로 볼땐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쏘아대던 냉담한 악담이 찝찔한 뒷맛을 남긴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걸까?
아무문제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게 망해버리길 바라는 비관적인 내면을 가진 젊은이의 정신적인 광기 같은것?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기묘한 잔향을 남긴다.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작가의 초기작으로 보이는 이 단편은 심지어는 TV에서도 많이 보았을 정도로 아주 흔한 이야기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타자기라던가, 치는대로 실현되는 컴퓨터같은-
조카가 남기고 떠난 워드프로세서는 퉁명스러운 아내, 버르장머리없는 아들을 가진 한 무명작가의
조금도 행복하지 못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참 웃기게도 아주 상큼하게 마무리되는데,
그 상큼함 떄문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노나
이 단편의 느낌은 어딘지 쓸쓸하고 애달프다.
술집에서 만난 아름다운 노나.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평생을 눈치보며 살아온 소심하고 심약한 주인공.
의지할 곳없이 살아온 보잘것없는 주인공은 노나를 통해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살인으로 표출한다.
그는 노나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도화점이 될 도발이 필요했던 걸까.
누군가가 필요했던 고독한 젊은이의 비극 "노나".
나는 이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서바이버 타입
"스켈레톤 크루"를 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이 단편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한 남자.
구조를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갈매기라도 잡아보고자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구조는 되지 않고, 배는 고파오고, 설상가상으로 다리가 다치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두개의 칼과 마취제. 다량의 헤로인.
그리고 그의 선택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헤로인과 허기로 점점 제정신을 잃어가는 의식의 흐름은 충격적일 정도로 훌륭하다.
단편의 묘미를 한껏 살린 작품이었다.
 

스티븐킹은 철저한 작가주의로 무장을 한 작가도,
평생에 걸쳐 몇편의 걸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부류의 작가도 아니다.
다작에,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고 말할수도 없다.
책 서두에 스티븐킹이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를 보면 그가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작은 소재를 재밌는 말솜씨로 부풀려 이야기해주는
이웃집 아저씨같은 소박한 작가이다.
워커홀릭인 동시에 수더분한 아저씨인 스티븐킹은 작가의 말을 통해 말한다.

"돈을 위해 일하지 마라. 그건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손익 계산을 따지는 것도 원숭이이나 하는 짓이다.
시급, 월금, 연봉따위에 연연하는 것도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일지라도 사랑을 위해서도 일하지 마라.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살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삶이라도 선택에 대한 보상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기본을 잊지 않는 스티븐 킹.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든, 가진자의 가식이든,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수 있는 사람이 나는 좋다.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둔재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수 없단다.
스티븐 킹이 꾸준히 인기 있는 이유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기 직업을 누구보다도 즐기며 노력하는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누구나 유리갤라에게 감탄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유리갤라가 내한을 해서 숫가락을 구부려트리면 세상이 놀랐다.
더 나이가 든 후에, 유리갤라가 사기꾼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당시 초능력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었던 나는 무척 실망했었다.
그런 초자연적인 힘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숫가락 구부려트리는 게 뭐가 그리 커다란 충격이었나 싶지만,
또 잘만하면 힘으로도 구부려지는게 숫가락이고, 
그까짓 숫가락을 구부려트려서 뭘 어쩌자는 건지 황당하지만, 어쨌거나 당시에는 무척 센세이션이었고,
어린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빠져서 숫가락 구부려트리기를 시도해 본적은 있을 것이다.
 

미야케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초능력자가 등장하고,
초능력만이 주제는 아니지만, 초능력이란 정말 있는걸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속에서도 유리갤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읽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폭풍우 치는 밤, 잡지사기자인 고사카는 취재에 나갔다 돌아오던 도중
비맞고 있는 소년 신지를 만난다.
그날 밤, 유치원생 하나가 뚜껑이 열린 채 있는 맨홀에 빠져 실종되고,

우연히 지나던 중에 아이의 노란 우산을 발견한 고사카와 신지는 실종사건에 엮이게 된다.
열여섯살의 깡마르고 창백한 소년 신지는 자신이 사이코매트리라는 사실을 고사카에게 전한다.
타인을 기억을 읽는 사람.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기억을 읽는 사람.
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리는 고사카에게, 신지의 사촌형이라는 오다 나오야가 찾아와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고사카에게는 아무말 적혀 있지 않은 백지편지가 도착한다.
 
소설은 유치원생의 실종을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초능력자란 정말 있는지에 대해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도,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면, 고사카의 과거에 얽힌 사건과 협박사건을 추리해나간다.
이유"에서도 느껴졌듯이, 미야베 미유키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연결이 가장 큰 장점인 작가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물스물 조금씩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연결은 거의 독특하다고 할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후반부까지 전혀 관련없어보이는 사건들의 나열이었던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순간,
"에게?"하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읽으면서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진실임이 밝혀지고,
작가 특유의 캐릭터가 그런지, 타인에게 다소 너그운 편이고, 맘껏 정의감도 발휘하는 등장인물들이
조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몸을 불사르며 타인을 구하려 노력하는 신지나,
사기꾼인지, 진짜 사이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들에게 무한히 시간을 투자하는 고사카,
자기가 사이킥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 동료인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아버리는 나오야.
너무도 선하고, 예의바르고, 타인을 지켜주고자하는 열의로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지만 별로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조차도 안그런다. 쩝....)
 
용두사미까지는 아니지만, 후반부의 밝혀지는 진실이 조금 뻔한감이 있어서
추리소설로 읽기에는 좀 그렇지만,
강한 흡인력이나,유연한 연결이나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라던가 한쪽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띠지에 둘러진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비교는 좀 어이없다.
어느 것 하나 공통분모가 없는 작가와 엮어서 어쩌란 말인지....
차라리 같은 여성 추리(?)작가인 기리노 나츠오와의 비교가 낫겠다 싶지만,
애초에 저런 문구는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유명한 작가와의 비교문구라던가, 유명한 작가의 강추글 같은 걸로 소개글을 써버리면,
혹시 비슷한 부류인지 알고 읽었던 사람들에게 혼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몇년 연속으로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전체에 흐르는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닌 듯 싶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했던 "이유"는 내게 최악의 소설이었다.-_-;
이 소설로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지만....)
날카로운 흉기같은, 잔뜩 웅크린 사춘기 소녀의 분노같은 기리노 나츠오쪽이 사실은 내 취향인 것을 보면,
역시 나도 참 온화함이라던가 여성미와는 무척 거리가 먼 인간인듯 싶다.
누구의 마음에나 용은 잠들어있고, 그 용을 믿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권유는
내게는 너무 벅찰 정도로 희망에 가득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괴렉스 -피의 책 2 - 뉴라인 Horror 001
클라이브 바커 지음, 김정화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유혈낭자한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 2편 "요괴렉스"
보는 내내, 목구멍까지 치솟는 역겨움을 참아가면서 보았다.
"피의 책" 1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요괴 렉스"에서는 조금더 에로틱했다는 느낌이었는데,
어쨌거나 뇌수가 튀고, 피가 솟아오르는 잔혹함은 1권이나 2권이나 비등비등하다.
요괴 렉스를 보는 내내,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렸다.
책속의 괴물, 또는 유령들의 모습은 버려진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해서,
공포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애잔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아들"에서는, 영화속의 유령들이 작은 극장을 점령해버린다.
화장실은 서부의 황야로 바뀌고, 죽은 마릴린 몬로의 유령이 치마를 펄럭이며 유혹해온다.
극장안에서의 공포스러운 환상을 다룬 이 단편은 조금 실망적이었지만,
순간 순간 눈앞에 생생히 그려질 듯한 묘사는 끔찍하리만큼 생생하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해골 요괴 렉스"는 평화로운 질 마을의 어느 버려진 땅에서
한 농부가 땅을 고르다가 커다란 바위 밑에 생매장당한 요괴 렉스를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아이의 부드러운 살을 좋아하는 인간 두배크기의 거인.
원한에 사뭍힌 요괴 렉스는 온 마을 사람들은 죽여간다.
온가족을 몰살당한채 생매장으로 죽지도 못한채 땅에 뭍혀버린 요괴 렉스의 이야기는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쩐지 영화 "다크맨"이 떠오르는 "수의를 입은 포르노그래퍼의 고백"은
스산하고도 도시적이며, 애잔하다.
고지식의 결정체처럼 살아온 주인공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불법 포르노그래퍼가 되어버린다.
복수를 결심하고, 복수를 하다가 살해당한채,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죽어서도 시체를 떠나지 못한다.
영혼만 남아버린 남자는 시체에 입혀진 수의에 빙의되고, 형체를 가지기 시작하고
또다른 복수가 시작된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던 "희생양"은 한밤중에 읽다가 소름이 확 끼쳐버린 단편이었다.
이름 모를 섬으로 표류하게 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손에 잡힐듯, 악취라도 날 듯한 생생한 묘사와 악몽처럼 음울하게 잠식해오는 후반부에서
나 역시 바닷속에 헤쳐진체 헤메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죽은 자들의 무덤이 섬이 되어버렸다.
바닷속에 그득한 시체. 씻기지도 않은 채 살 의욕을 포기한채 사육되고 있는 양 세마리.
결코 이길수 없는 죽음과의 싸움.
멋진 단편이다.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에서는 종종, 게이들이 등장하는데,
남창의 이야기 "인간의 흔적"에서 역시, 양성애자인 미남 지골로가 등장한다.
고객의 욕실에서 발견한 조각상.
사람의 피를 온몸에 바르며 인간이 되어가는 조각상의 이야기는
끝으로 갈수록 쓸쓸하다.
 
이로써,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시리즈를 다 읽었다.
원래는 6권짜리 책이라고 들었는데, 두권밖에 출판하지 않고, 게다가 출판사도 망해버려서
희귀본이 되어버려서 무척 아쉽다.
언젠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지 않을까...기대해 볼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