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혹은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누구나 유리갤라에게 감탄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유리갤라가 내한을 해서 숫가락을 구부려트리면 세상이 놀랐다.
더 나이가 든 후에, 유리갤라가 사기꾼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당시 초능력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었던 나는 무척 실망했었다.
그런 초자연적인 힘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숫가락 구부려트리는 게 뭐가 그리 커다란 충격이었나 싶지만,
또 잘만하면 힘으로도 구부려지는게 숫가락이고, 
그까짓 숫가락을 구부려트려서 뭘 어쩌자는 건지 황당하지만, 어쨌거나 당시에는 무척 센세이션이었고,
어린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빠져서 숫가락 구부려트리기를 시도해 본적은 있을 것이다.
 

미야케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초능력자가 등장하고,
초능력만이 주제는 아니지만, 초능력이란 정말 있는걸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책속에서도 유리갤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읽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폭풍우 치는 밤, 잡지사기자인 고사카는 취재에 나갔다 돌아오던 도중
비맞고 있는 소년 신지를 만난다.
그날 밤, 유치원생 하나가 뚜껑이 열린 채 있는 맨홀에 빠져 실종되고,

우연히 지나던 중에 아이의 노란 우산을 발견한 고사카와 신지는 실종사건에 엮이게 된다.
열여섯살의 깡마르고 창백한 소년 신지는 자신이 사이코매트리라는 사실을 고사카에게 전한다.
타인을 기억을 읽는 사람.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기억을 읽는 사람.
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헷갈리는 고사카에게, 신지의 사촌형이라는 오다 나오야가 찾아와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고사카에게는 아무말 적혀 있지 않은 백지편지가 도착한다.
 
소설은 유치원생의 실종을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초능력자란 정말 있는지에 대해 추리해나가는 듯 싶다가도,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보면, 고사카의 과거에 얽힌 사건과 협박사건을 추리해나간다.
이유"에서도 느껴졌듯이, 미야베 미유키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연결이 가장 큰 장점인 작가이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물스물 조금씩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연결은 거의 독특하다고 할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후반부까지 전혀 관련없어보이는 사건들의 나열이었던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순간,
"에게?"하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읽으면서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 진실임이 밝혀지고,
작가 특유의 캐릭터가 그런지, 타인에게 다소 너그운 편이고, 맘껏 정의감도 발휘하는 등장인물들이
조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매력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몸을 불사르며 타인을 구하려 노력하는 신지나,
사기꾼인지, 진짜 사이킥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들에게 무한히 시간을 투자하는 고사카,
자기가 사이킥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 동료인 신지를 사기꾼으로 몰아버리는 나오야.
너무도 선하고, 예의바르고, 타인을 지켜주고자하는 열의로 자신을 불사르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지만 별로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조차도 안그런다. 쩝....)
 
용두사미까지는 아니지만, 후반부의 밝혀지는 진실이 조금 뻔한감이 있어서
추리소설로 읽기에는 좀 그렇지만,
강한 흡인력이나,유연한 연결이나
작가가 사람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이라던가 한쪽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띠지에 둘러진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비교는 좀 어이없다.
어느 것 하나 공통분모가 없는 작가와 엮어서 어쩌란 말인지....
차라리 같은 여성 추리(?)작가인 기리노 나츠오와의 비교가 낫겠다 싶지만,
애초에 저런 문구는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유명한 작가와의 비교문구라던가, 유명한 작가의 강추글 같은 걸로 소개글을 써버리면,
혹시 비슷한 부류인지 알고 읽었던 사람들에게 혼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몇년 연속으로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전체에 흐르는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내 취향은 아닌 듯 싶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했던 "이유"는 내게 최악의 소설이었다.-_-;
이 소설로 이미지는 많이 좋아졌지만....)
날카로운 흉기같은, 잔뜩 웅크린 사춘기 소녀의 분노같은 기리노 나츠오쪽이 사실은 내 취향인 것을 보면,
역시 나도 참 온화함이라던가 여성미와는 무척 거리가 먼 인간인듯 싶다.
누구의 마음에나 용은 잠들어있고, 그 용을 믿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권유는
내게는 너무 벅찰 정도로 희망에 가득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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