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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왕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가, 묘하게 매번 눈에 띄었던 소설 "쥐의 왕".
아무런 정보없이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 절판된 도서.
읽기전에 다른 사람들의 평을 대충 별점만 훑어봤는데, 평은 그저그런 편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밌었던 소설이었다.
동화를 좋아한다.
현대에서 보기에는 비상식적인 중세시대의 동화를 특히 좋아한다.
잔혹함을 즐기는 나의 악취미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동화속에 어렴풋이 담겨 있는 당시의 현실이 흥미롭다.
이 소설 "쥐의 왕"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독일의 설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삼은
다크환타지 소설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정치성과의 연관을 짓던데,
나는 오히려 동화의 재해석에 좀더 큰 점수를 주고싶다.
(사실 내가 정치를 잘 모르고 앞으로도 별로 알 생각이 없어서,
어렴풋하게 다가오는 것 이상으로는 할말이 없다...................)
오랫동안 소원해져있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사울은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고,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경찰은 사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울 앞에 나타나 자기가 외삼촌이라 주장하는 더러운 남자.
그는 모든 쥐들의 왕.
피리부는 사내가 동족을 몰살로 몰고간 후, 그의 백성인 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퇴물에 가까운 왕이다.
사울은 사실, 쥐의왕의 여동생의 자식으로, 반인반서이다.
인간으로써 살아온 삶을 버리고, 자신이 쥐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본능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상한 음식을 줏어먹으면서도 맛 있다고 느끼는,
평생을 살아오며 식중독 한번, 배탈한번 나지 않는 왕성한 식욕의 사울은
자신이 쥐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쥐 인간 뿐만이 아니라 새인간, 거미인간도 꽤 재밌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편, 사울의 친구들에게 피리부는 사나이가 접근해온다.
정글리스트인 사울의 친구와 친해져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나가며
더 큰 야망을 키우는 야비한 피리부는 사나이.
이책 "쥐의 왕"은
반인반서로, 인간을 유혹하는 음악도 쥐를 유혹하는 음악도 들어먹히지 않는 주인공 사울과
플룻하나로 모든 것을 조종할수 있는 피리부는 사나이의 대결을 그린 책이다.
끝까지 권력을 놓치않고 꽁무늬에라도 붙어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타락한 봉건귀족을 떠올리게 하는 쥐의 왕의 모습은
우리사회에서도 많이 볼수 있는 모습이다.
꼭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권력에 찌들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또한 그렇다.
이런 모습을 멋지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러한 권력에의 탐욕은
물고 물리며 결국은 이어져나가기 떄문이 아닐까.
따라서 소설의 마지막, 모든 쥐들에게 쥐의 왕이기를 포기한 사울의 선택은 꽤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그가 원했던 것은 우두머리에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평범한 소시민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을지.
어린시절 너무나도 무서웠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동화의 패러디라던가, 원래 있는 이야기의 재해석을 원래부터 좋아하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러운 런던의 뒷골목. 그 뒷골목의 가장 더러운 음식을 먹고사는 쥐.
정신없이 흩어지는 정글, 더럽고 기괴한 인상의 사람들.
이 모든 음울한 이미지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마치 액션영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읽는 내내, 젊은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소설을 쓸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젊은이다운 패기와 열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으니까.
우연히 도서관에서 건져낸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