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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한다 2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영화라던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경찰이나 형사, 탐정들은 왜 하나같이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속세에서 떠나있다가 한가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이 이제부터 풀어가야할 과업에 운명적인 무언가를 덧씌우기 위해서일까.
수백 수천번도 더 나온 식상한 도입부이지만, 시대를 가리지 않고 아직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는 도입부.
무척이나 통속적인 스릴러 소설인 이 소설 "나는 살인한다"에서 주인공 프랭크 역시
속세를 떠나있다가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주인공이다.
어쩌면 이렇게 고전적일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 추리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있는 이 소설.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시대에나 나왔을 법한 다잉 메세지도 뻔뻔스럽게 나오고,
촌스럽다 싶을 정도로 음악에 메시지를 부여해 살인을 예고하기도 한다.
아주 뻔한 장면에서 뻔한 속임수를 써서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도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무척 미국스럽다는 점인데,
유럽에는 유럽에 맞는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미국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써는
무척 불만스러운 점이다.
주인공부터 반쪽은 미국인인 FBI요원이고, 시도때도 없이 미국인들이 줄줄 등장하며,
사건의 진행방식 역시 미국 스릴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왜 이 작가는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는 머물지 않는 것이냐?)
이탈리아 작가라면, 좀더 이탈리안의 맛을 내주었으며 좋았을텐데,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서 얼핏 느꼈듯이,
마치 이 작가는 미국에 대한 환상(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식 스릴러에 대한 환상이랄까.)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게다가, 비록 이 책이 먼저 나왔더라도,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서와 비슷한 관계설정이 꽤 많아서
(주인공 설정이라던가, 부자들만 죽어나가는 살인사건 등등-)
나는 투덜거리면서 읽게 되었다고-.
이렇게 여러가지 마음에 안드는 점, 이 모든 통속적인 점을 콕콕 찝어가면서 투덜거리면서 보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재밌다는 것이다.ㅠ ㅠ흐흑....
뻔할 뻔자의 통속적인 주제를 놓고도, 손에 땀을 쥐고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투덜거리면서 볼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글을 무척 잘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속도감 붙으면서, 흔한 미국 스릴러 소설처럼 간단한 문장구조가 아니라,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놓은 감상적이고 화려한 문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입도 쉬웠고, 글에 품격같은 것도 느낄수 있었달까.
이렇게 욕하면서 보면서 재밌었던 책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온 세상의 온갖 부자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한 라디오방송국.
어느날 인기 디제이 장루 베르디에는 방송중에 괴한의 전화를 받는다.
괴한은 자신을 하나이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 밝히며,
"나는 살인하오."라는 말과 전화기 너머로 아련히 들려오는 음악소리로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끊어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해자의 얼굴가죽을 벗겨내가는 끔찍한 연쇄살인.
전직 FBI인 프랭크와 모나코 경찰들이 수사에 나서면서 밝혀지는 좀더 복잡다난한 이야기들.
잡을만 하면 사라지고, 형체를 알아볼수도 없는 이 연쇄살인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풀어나가는 소설.
좀더 유럽식이었다면 좋았을걸...하는 부분은 우아한 문체로 일단 해결이 나고,
개인적으로 아쉬워서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던 부분도 재미있으니 용서가 되고,
800페이지나 되는 긴 분량도 흥미진진하므로 지루한 감이 전혀 없다.
범인에 대한 설정, 혐오감과 함께 처연한 감정이 뭍어나는 감정선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살인자임에도 미워할수 없는 범인-
오히려 그 연쇄살인마보다 더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중간 중간 끊어질듯 이어지는 살인자의 고독한 감상은 어쩐지 마음이 아파지기도 했다.
조금만 더 보여줘... 조금만 더...라고 외치면서 나는 살인자를 맞대면하고 싶었다.
이 작가의 좀 더 후기작인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 뭍혀서 관심도 못받는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보다 훨씬 뛰어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관심을 받는 작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우리나라에서 볼수 있었을텐데....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작가인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같아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