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만약 우리가 길에서 이들을 마주쳤더라면, 우리는 그들을 동네 양아치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혹은 의욕없고 할일없는 백수 조무래기라고 불렀을지도.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것이 자랑이 되는 동네- 졸업하기도 어렵지만, 학교를 나온 아이들 거의가
양아치 내지는 조폭이 되는 도쿄의 무서운 이케부쿠로.
열 네살짜리가 동네 깡패의 수하가 되어있고,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핸드백이나 구두를 사기위해 아저씨와 러브호텔에 들어가고,
어떤 아이들은 등교 거부를 하며 히키코모리가 되는 동네에 사는
자랑할 것이라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밖에 없는 열아홉살짜리 어수룩한 백수,
대학을 갈생각도 없을 뿐더러 취직할 생각은 더더욱 없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
용돈이 필요하면 엄마의 작은 과일가게에서 일을 하는 마코토가 이 소설의 메인 주인공이다.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여고생 리카가 러브호텔에서 살해되고,
경찰에서 그렇고 그런 살인사건으로 넘기기 전에,
리카와의 우정을 생각해 친구들을 이케부쿠로에 쫙 깔아두고 범인을 잡은 것을 계기로
마코토는 비공식적인 이케부쿠로의 해결사가 된다.
해결사라고 꼭 이런 심각한 범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얻어터지고 다니는 동네 꼬마애들의 복수도 간혹 해주는 해결사 마코토.
거리의 해결사라고 해서 꼭 정의감 넘치는 히어로 일리는 없지 않나.
마코토는 스트리트 라이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어리석은 영혼을 바라보며
어디선가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자기 자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건에 뛰어든다.
 
소설은 마코토가 네가지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다.
시리즈로 나온 소설인듯 싶은데, 계속 이런 방향일듯 싶다.
청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둡고, 그렇다고 범죄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가벼운 이 책은
일본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딱 그 정도의 이야기이다.
그닥 마음에 담아둘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지도 않으나,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은 일본의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의 대략적인 형태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냥 가볍게만도 볼수 없게 만든다.
 
마코토를 보면서 생각한다.
어느 학교에서나 꼭 이런 애들은 있게 마련이다.
공부 잘하는 애들 틈에 섞여있는 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는 애들 틈에 섞여있는 것도 아닌,
마이페이스로 살아가는 애들-.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아이도 건드리기 힘든 존재들이 바로 이런 존재들이다.
남에게 피해되지 않는 정도에서 자기 좋을대로 살아가는 아이.
누구와도 친하지 않으나, 누구에게도 미움받지도 않는 아이.
설령 미움 받는다고 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아이.
마코토가 거리의 해결사로 이름을 날릴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인간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무관심과 나름의 차가움으로 일관하는 사람에게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왜일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자주 그렇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충격받지 않을 그 차가움이 마음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야기도 적당히 무관심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퍼트리지않을 것 같아서 일까.
인간의 마음이란 참 신비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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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받은 충격으로 당분간 켄지, 제나로 시리즈를 사놓고 유보해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펼쳐든 "비를 바라는 기도".
이 책은 뭐랄까.... 좀더 스피디하고, 즐겁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도 느꼈듯이, 켄지, 제나로 시리즈의 색다른 매력은
베베꼬이다 못해 쿨하기 까지한 등장인물들의 대화인데,
그 점에 마치 아주 재밌는 외화를 보는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주말을 투자해 끝까지 다 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그런 외화 말이다.
재빠른 진행과 즐거운 블랙유머,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깨진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 회복이나
정말 색다른 주인공 부바의 매력이 부곽되는 등의 잔재미를 주는 소설-
그래서 "가라 아이야 가라"와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켄지에게 찾아온 한 여자의 사건의뢰로 시작된다.
양말도 다림질해입을 것같은 깔끔하고, 단아하고, 또 소심하고 선량해보이는 여자 카렌은
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스토커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고,
스토커 사건 해결 이후 한참이 지나, 켄지는 차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카렌의 자살소식을 접한다.
자신의 안일한 부주의때문에 카렌의 응급전화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찝찝함 때문이었을지
켄지는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되고, 친구 부바와 돌아온 똑똑이 제나로의 도움으로
이것이 단지 한 여자의 자살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는 사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빼앗고 삶의 이유마저 빼앗아가는 범인.
이리저리 날고 들고 뛰어도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고, 딱히 잡아갈 죄목도 없는 범인-
사막에서 "비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조각을 모아 퍼즐을 맞추기는 커녕, 피해자 역시 입을 다물어버리게 만들어
해결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어버리는 범인-
켄지-제나로앞에 나타난 이 범인과의 심리전이 이 책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라고 할수 있겠다.
 
"가라 아이야 가라"보다 캐릭터의 매력이 한층 살아난 것도 책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는 보조자격으로 느껴졌던 부바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배운 것도 별로 없고, 사람을 겁먹게 할만큼 거구이며,
여기저기 총을 갈겨버리길 바라는 다분히 폭력적인 취향을 가진 이 러시아 마피아 부바는
어려울 적 자신을 도와준 켄지를 잊지 않는다.
이 잔인무도한 불곰 부바가 켄지-제나로를 지키기 위해 몰래 저지르는 행동들에
책을 보는 내내 부바가 어서 등장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말투도 엄청 웃기기도 했고...히힛)

 
사건 해결을 위해서 협박도 불사하는 이 뵈는 것없는 두 탐정들.
하기사 그들은 형사나 경찰이 아니라 탐정이기에, 범인과 똑같은 협박을 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범죄자의 인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의 90%정도가 불법인 셈이지만,
이런 불법으로 일관된 자가응징이 통쾌하다는 것,
이런 것이 또 하드보일드의 매력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와 같은 법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찝찝함은 없어서
훨씬 통쾌하게, 재밌게 볼수 있는 책이었고, "가라 아이야 가라"와 다른 느낌의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앞으로 읽을 사람에게 알려두자면, "가라 아이야 가라"를 먼저 읽고 읽는 것이 좋겠다.
이어지는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켄지-제나로의 관계가 순차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잔재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시적이고 쿨한 하드보일드의 매력-아아, 나는 이런 베베꼬인 블랙유머가 너무 좋더라...
이런 유머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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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이명옥 지음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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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비현실적인 이상에 몸을 맡겨본적이 있는가.
운명적인 사랑을 믿거나, 혹은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것을 사랑하는 몽상가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책속에 나오는 열정에 빠져 모든 것을 파멸시킨 소설과 신화속의 주인공들처럼
어쩔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애틋한 사랑을 나눌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의 사랑이야기보다 재밌는걸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서, 불행한 사랑에 자신을 이입시키며 눈물흘리게 만드는 걸까.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보다, 모두가 불행하게 끝나는 새드엔딩을 향한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한여름밤의 꿈>보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더 쉽게 각인되는 것처럼.

 
신화나 소설속에 등장해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불행한 네 연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흠모하고 연민하여 그림으로써 아름답게 승화시킨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
<팜므파탈>과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로 익숙해진 이명옥의 다소 단호하고 엉뚱한 시선으로
읽어내려가는 네가지 사랑은 거의 모두가 불륜으로 시작되어 파국을 맞는다.
파올라와 프란체스카-렌슬롯과 기네비어-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거쳐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첫사랑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사실 신화나 소설속의 이야기보다 그것들을 그린 화가드의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 져서 보게되었는데,
특히 책 내내 등장하는 로제티-엘리자베스-제인-모리스의 사각관계 이야기는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이 흥미로웠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있던 엘리자베스 시덜의 이야기를 읽게되어 무척 반가웠다.
나는 어쩌면 이여자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_-;)
 
책 속의 이야기가 좀더 다채로웠다면 좋았을텐데...
단테의 신곡과 아더왕 전설 두가지 이야기속에서의 네 연인을 다룬 점은 안타깝지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전해지는 이야기들과 화가들의 이야기가 즐거웠던 독서였다.
 
p.s 그림책의 종이질과 인쇄상태는 이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다소 조악한 인쇄에 좀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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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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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말하자면 입 아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남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와 여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참 많이 다르다.
보통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이 수동적이거나, 또는 팜므파탈이거나, 또는 평범하거나,
또는 끌어안아줄 나약한 이미지라면,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들의 모습은 교활하고, 적나라하며, 터프하며 서글프다.
그리고 여자인 나는,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1차원의, 기껏해야 이중성정도만을 지니고 있는 여자주인공들보다,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복잡미묘하고 치열한 다중성의 여자주인공들을 좋아한다.
그것이 진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성의 소설이든, 여성의 소설이든 모든 일의 원인에는 남자가 깔려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여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훨씬 단순하고 얄밉고, 여자들은 더더욱 복잡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들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써, 또 흑인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토니 모리슨의 두 여자의 이야기 "러브"가 그렇다.
제목은 "사랑"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소설 내내 두 주인공은 싸운다.
30년동안 지속된 싸움, 서로를 깍아먹지 못해 안달난 두 여자의 이야기의 제목이
"증오"가 아닌 이유는 아마도 이런 다중적인 여자들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 아닐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듯이, 서로를 향한 무려 30년이나 지속된 증오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기반으로한 일종의 애증이 아니었을까.

 
열 한살. 해변가에서 두 소녀가 만난다.
상속녀가 될 가능성이 큰 부잣집 외동딸 크리스틴과 찢어지게 가난하고 작은 히드.
두 소녀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급속도로 친해진다.
친구가 없는 일상을 생각지도 못했던 그 때에, 크리스틴의 할아버지 빌 코지가 등장해
열한살짜리 히드를 신부로 맞이한다.
동갑내기 가장 친한 친구를 할머니로 맞이해야하는 크리스틴의 심정은 어떨까.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를 빼앗겼음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히드에게 깍듯이 대해야했고,
심지어는 집밖으로 내몰리는, 한때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던 크리스틴의 심정 말이다.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기엔 너무나 어렸던 그녀가 히드에게 증오심을 갖게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돈을 위해서라면 딸이라도 내다팔 비정한 가난뱅이 집안에서 큰 히드의 심정은 어떨까.
크리스틴을 너무나 좋아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남녀간의 애정 따위 신경쓰이지도 않을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뻘 되는 빌 코지에게 시집을 왔다.
어린 히드는 그렇게 하면 크리스틴과 영원히 함께 지낼수 있을줄만 알았다.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의 엄마 메이의 차디찬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는 히드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가진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벌레라도 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가 가진 자존심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력을 사용해보려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
그래도 의지하고 있던 남편 빌코지의 여자들의 숫자는 어느 순간부터 세어보기도 포기했다.
결혼 5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스물도 안된 나이에 미망인이 된 히드와
결국은 집으로 돌아와 하녀같은 생활을 연명하는 크리스틴은 빌 코지가 사라진 30년후에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증오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빌코지는 이미 죽은 인물로 되어있어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의 삶을 지배한다.
흑인으로 자수성가한 부자에 여유로운 성품, 존경받는 지위,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해 열한살짜리 꼬마아이를 아내로 맞은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를 갈라놓고, 죽어서까지도 그들을 증오하게 만든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 두 여자의 이야기에는 빌코지의 그림자가 깊이 깔려있지만,
누구도 빌코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빌코지는 강한 생존본능이었을테고, 또한 오해를 낳는 증오의 도화선이었다.
 
사람은 왜 극한 상황이 닥쳐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수 있는 걸까.
죽을때나 되어서야 서로를 사랑했고 그리워했음을 실토하는 크리스틴과 히드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지게 한다.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이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해서, 그들은 그 그리움을 증오로 표출했던 걸까.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후회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죽을때까지 간직하는 편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노스텔지아. 그리움. 우정. 사랑. 증오와 오해. 질척거리는 관계.
그 모든 것에 사랑이 깔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터놓고 이야기할수 없는 것들-내가 먼저 말해버리면 지고 들어가는 기분같은 것은
어떤 성별, 인종,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든 마찬가지인가보다.
마음속의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해지는 현실의 인간관계는 참 씁쓸하다.
너무나도 자유롭게 바뀌는 시선의 변화때문에 다소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지만,
책의 후반부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컬러 퍼플"을 떠올렸는데,(비슷한 점은 별로 없다. 흑인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밖에는...)
이 책을 다 읽고 컬러 퍼플의 소설도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 모리슨의 책은 처음 보는데, 글을 읽어가는 느낌이 묘하다.
표현이 무척 수다스러워서 얼핏 흑인들의 랩을 듣는듯한 느낌이지만,
책의 흐름 자체는 다소 느긋한 편이라 째즈를 연상캐한다.
그래서 토니 모리슨이 "째즈"라는 소설을 쓴 것일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째즈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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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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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포일러 주의!!

올해가 거의 가는 시점에서 문득 떠올려보니, 올해에는 유난히 스티븐킹 소설을 많이 읽었다.
딱히 스티븐킹 매니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작가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인 작가인데, 우연히 올해에는 읽을 기회가 많이 생겨서,
다섯권의 이야기, 권수로는 10권을 읽어버렸다.
그것(1,2,3), 애완동물 공동묘지(1,2) 스켈레톤 크루(1,2)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
그리고 마지막이 스티븐킹의 가장 최신작 "셀"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에게 바친다는 말이 나오듯이,
<셀>은 일종의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조지 로메로의 최신작 "랜드오브데드"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무명만화가가 출판사에서 갓 계약을 성사시키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기분좋게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변풍경을 감상한다.
재잘재잘 떠들며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하는 삐삐머리의 두 소녀,
한손에는 강아지 줄을 들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는 도도한 아가씨.
그리고 한순간에, 이 삐삐머리 소녀들과 아가씨가 미쳐버린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물어뜯고, 괴성을 지르며,
어디선가 찢어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똑같이 미쳐버린다.
세상은 아비규환,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던 자는 그대로 좀비화 되어버리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쥔 자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물어보려 핸드폰을 쥔 자도,
다 핸드폰을 쥐고 좀비가 되어버리고,
상상도 못할 정도의 속도로 하루 아침에 세상이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리고 만다.
속칭 "펄스"라고 불뤼우는 핸드폰 바이러스.
핸드폰으로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포맷시켜버리고,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폭력성을 일깨우는 이 바이러스로,
세상은 살아남은 자들과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로 나뉘게 된다.
여기에, 주인공 만화가 클레이의 아들, 부모도 안가진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멀리사는 아들이
혹시나 펄스에 노출되어 좀비가 되었을까 걱정하며, 클레이는 아들과 전부인을 찾기위한
머나 멀고 험난하며, 비참한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닌 첫번째 이유는,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비처럼 걷고, 좀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다.
멍청한 눈, 여기저기 찢기고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
어딘지 비틀리게 걷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 겉모습은 좀비와 똑같으나,
그들은 금새 진화한다.
캐캐묵은 올드팝을 듣고, 점차 폭력성을 줄여가며, 그중에 지도자도 나타나고,
심지어는 좀비 주제에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 아닌 두번째 이유는, 이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관계있다.
이것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 이었던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또다른 존재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물갈이였던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 <셀>에서의 새로운 종의 기원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어쨌거나 인간은 진화하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존재- 추측은 할수 있으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기계가 없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는 우리들.
손에는 늘 핸드폰이 들려있고, 매일같이 이어폰이나 스피커, 또는 어디선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컴퓨터를 키고,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쬐며,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천재적인 누군가가 펄스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간 물갈이를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아주 손쉽게 한번에 바꿔버릴수 있는 이 세상-
너무나 익숙해진 편리함 뒤에 숨겨진 독을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인간은 기계로 편리함을 얻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해버린다.
아니라고 느낀다면, 핸드폰이 없는 세상, 컴퓨터도, TV도, 불빛도,
그 어떤 기계와 전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길.
얼마전에 문득 든 생각이지만, 당장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어느날 핸드폰이 불통이 되어버리면,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모두 잃어버리게된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섬뜩해졌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일일히 외우거나, 수첩에 차곡차곡 적어놓았을텐데,
나는 핸드폰을 전적으로 믿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외우려하지 않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적어놓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별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도태될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핸드폰에 중독되어있고, 나 자신의 기억력보다 이 손바닥만한 기계를 더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핸드폰이 참 섬뜩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은 초반부터 무척 잔혹하고 밀도높게 시작되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진행된다.
그래서 두권이나 되는 분량에도 빠르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븐킹의 가장 큰 장점이 치밀한 묘사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단점 역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티븐 킹의 치밀하다못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보여주려는 듯한 묘사는 뒤로 갈수록 사람을 지치게 든다.)
어찌된 일인지, <셀>은 그런 면에서는 무척 깔끔하다.
해야할 묘사말고 더이상 덧붙이지 않고, 그래서 끝까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술술 읽혀서,
바로 전에 읽은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와 같은 작가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스티븐킹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걸까.
번역자 후기에 적혀있듯이 스티븐킹의 소설이 영화화 되어버린 걸까.
잘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깔끔하고 의도를 파악하기에도 적합해서 마음에 든다.
 
 
나는 공포영화중에서는, 다른 학살극이나 귀신영화보다  좀비물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인간이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인간 종말을 앞둔 묵시록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모두 갖춘 좋은 소설-
재밌기도 하지만, 생각할 바도 던져주는 멋진 소설이었고,
미국 문화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피식피식할만한 유머도 곁들여져서
몹시 재밌었고, 올해 읽은 다섯개의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해본다.
(정말 좋아하는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캐리가 있기에, 감히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다...)


p.s 1. <호스텔>의 일라이 로스에 의해서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영화는 언제쯤 만날수 있을까.
또 을마나 잔인할지...재밌겠다...!!

p.s 2. 책을 다 읽고 잠을 잤는데 꿈에서 새 핸드폰을 사는 꿈을 꿨다.
미국 소설을 봐서인지, 핸드폰에 애플사 마크(벌레먹은 사과)가 살포시 박혀져 있더라.
좀비가 되도 좋으니, 새 핸드폰좀 샀으면..-_ㅠ 3년이나 막 굴려가며 써도 도무지 고장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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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11-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저는 원래 올빼미인간이라 아침에 잡니다..^^;;;

lg 2006-11-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인데 글씨가 너무 작아요~ 그리고 스포성 글도 좀 잇는듯..

Apple 2006-11-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스포일러를 굳이 얘기할필요 없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표시안했는데, 지금이라도 스포일러 주의 표시를 해야......^^;;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