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쇄살인범 파일
헤럴드 셰터 지음, 김진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빨간 모자와 늑대의 이야기.
인적이 드문 숲속에 숨어 잠복하고 있다가, 어린 소녀가 지나가면 잡아먹으려 기다리는 늑대.
옛날 사람들은 과연 이 늑대를 동물로써의 늑대를 얘기했던 것일까.
늑대를 조심하라 경고하는 빨간 모자의 어머니. 주로 어린 여자아이나 할머니를 노리는 늑대.
신문도 TV도 없던 시절, 마을에서 마을로 소식을 전하는 방법이라고는 소문을 통해 이야기될수 있는
이야기나 구전노래가 다 였던 시절에 전해진 이야기를 묶은 그림동화에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어느 마을 누군가가 살해된 이야기, 어느 마을 누군가가 계모에게 쫓겨난 이야기-
다소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해 뭉뚱그려 표현이 되긴 했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만 보았던 동화들은 무척 끔찍한 생각이 든다.
숲속에서 잠복해 빨간모자를 기다리고 있던 늑대는, 사실 연쇄살인범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쇄살인'이라는 말이 생겨난지는 1980년대에나 들어서이지만, 연쇄살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한때 잔다르크와 함께 행동하던 영웅이었으나, 후에 초엽기변태살인마가 되어버린 질드레의 이야기도 그렇고,
(질드레의 이야기는 동화 '푸른 수염'의 모티브가 된다.)
네로 황제 또한 자신안의 악마에 갖혀 간악한 짓을 저질렀다.
이렇게 역사속에 전해지는 사람들-대부분 귀족이었거나 기록할만한 사건으로
후세에도 전해진 살인마들뿐만이 아니라,
기록되어있지 않은 평범한 역사속의 연쇄살인범들은 대체 얼마나 많았다는 얘기인가.
연쇄살인의 역사부터 최근에 들어서 연쇄살인에 영감을 받은 예술까지 이야기하는 <연쇄살인범 파일>은
대량학살과 연쇄살인의 차이점부터 짚어나가고 시작한다.
최근 버지니아 공대사건같이, 한 개인이 정신적인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한번에 여러사람을 학살하고 자폭해버리는 것을 '대량학살'이라 부르고,
두번 이상의 살인 사건이 의미있는 기간동안 차례차례 이루어지는 것을 '연쇄살인'이라 부른다.
대량학살이 정신병에 기초가 있다면, 연쇄살인은 성범죄에 가깝다.
대부분의 연쇄살인자들은 살인을 섹시하다 여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삐뚤어진 욕망속에 자라났고, 죽은 사람에게 성욕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유년시절까지의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통해
자신을 받아들일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 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쇄살인범의 이미지- 20세에서 30세 사이의 백인남성이며,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는 이 책을 보는 내내 무참히 깨질것이다.
13세에 열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꼬마아이가 있는가 하면,
60세가 넘은 나이에 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사체를 훼손한 악마같은 남자도 있다.
백인이 있는가 하면 흑인도 있고 동양인도 있다.
연쇄살인범들중에 백인이 많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통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주로 영미권이기 때문이다.
숫자적으로 우세한 백인이 많은 지역에서, 백인 연쇄살인범들이 많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연쇄살인범들중에는 흑인이 많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여자들도 많다.
남성 연쇄살인범들처럼 시체를 훼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있긴 있다.)
가장 친한 사람을 독약으로 몇시간, 몇일에 걸쳐 서서히 죽여가면서 죽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여자 연쇄살인범들은 또 얼마나 간악하단 말인가.
언론에서 주목하듯 슬래셔 무비라던지, 메탈음악이 연쇄살인범의 폭력성을 일깨우는 것도 아니다.
연쇄살인범들이 가장 즐겨읽고 열광하는 책은 바로 성경이고,
그들은 성경에서 자신을 정당화 시킬수 있는 부분을 집어내서 교활하게 이용한다.
연쇄살인범들의 대부분은 사이코패스로 미친 것과 거리가 멀다.
보통사람들에게도 정신병은 있듯이, 그들에게도 정신병은 있으나,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을 정도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더 삐뚤어진 방법으로 표출이 되고,
인간으로써 저지를수 없는 끔찍한 짓을 저질러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미쳤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양심과 감정이 없는 것이다.
그들중에는 평균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꽤 되고,
정신병자와는 달리 계산적이고 판단력이 있으므로, 수사망을 잘도 피해간다.
대부분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학대받은 인생을 살았던 사이코패스들이 많지만,
더러는 아무 문제 없이 유복하고 행복하게 자라와 멀쩡한 직장과 명성을 가지고
연쇄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떤 연쇄살인자들은, 마을의 유지였고, 의사였으며, 간호사였고, 경찰이었고, 교사였다.
간혹, 그들은 주위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거나, 친절한 이웃이자 자애로운 지도자였지만
아무도 몰래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강간하고, 토막내고 먹는다.
책속에는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한다.
이렇게까지 많은줄 몰랐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또 아직도 감옥에서 살아있는 연쇄살인범들의 숫자도 꽤 된다.
더러는 스타 연쇄살인범 잭더리퍼처럼 잡히지 않고 사건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천재적인 수사관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들이 검거된 경우중 대부분은, 범인이 실수를 했거나,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 잡혔거나
(연쇄살인범이 속도위반으로 잡혔는데, 옆에 시체가 타고 있었다는 식..)
동조자의 배신내지는 밀고로 정체가 밝혀진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현실에는 소설이나 영화속의 영웅도 없고,
다정한 친구라 믿고 있던 사람이 어느날 내 목에 칼을 들이대기도 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너무나 많고, 그 인간이 모두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는 점-
그래서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해도 전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는 점이 참 무섭다.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모두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 인간의 뇌에는 무엇이 들어있길래, 악마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도 참 무섭다.
보는 내내 너무 무서워서 치를 떨면서 보긴 했지만, 참 재밌는 책이다.
케이스도 다양하게 보여주고, 풀이도 친절하며,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있어서
지금까지 읽었던 범죄심리학서중에서는 가장 재밌었다.
다만, 책을 다 보고나니 세상과 인간이 너무 무서워졌다.
여기에, 지옥이 있다. 인간이 만든 지옥.
상상초월의 욕망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한편에서는 선정적인 범죄 행각에 열광하며 그런 악마들을 찬양하는 보통 사람들이 있고,
또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악마들의 악행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아, 신이시여. 당신은 대체 뭘 만든 겁니까.
여기가 바로 지옥이고, 우리가 바로 악마입니다..
p.s. 그나저나 이 책을 낸 출판사, 은근히 웃기다.
번역자나 교정자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번역하고 교정보다가 지쳤나.
초반에는 오타가 거의 없다가, 중반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오타가 쏟아져나온다.
오타, 띄어쓰기 실수, 잘못된 조사 사용, 빠트린 글자- 이런 걸 적어도 50개쯤 본 것 같다.
작년 "용의자 X의 헌신" 이후로 최대 오타작!! 짝짝짝!!!!
오타도 리콜이 되나요.....?오타 좀 신경 써주세염....